-모호한 정체성·애매한 가격이 실패 요인…‘900억 적자’ 전문점 사업 원점 재검토
‘삐에로쑈핑'은 왜 문을 닫을까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야심작’으로 내세웠던 전문점 사업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마트는 삐에로쑈핑·부츠(Boots)·일렉트로마트 등 연간 900억원 정도의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전문점 사업에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구조 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브랜드는 만물 잡화점을 표방하는 ‘삐에로쑈핑’이다. 현재 운영 중인 7개 점포(코엑스점·두타몰점 등)가 모두 순차적으로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은 2018년 7월 정 부회장이 “1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정 부회장이 애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주도했던 삐에로쑈핑의 패착은 무엇일까. ‘오프라인 돌파구’라는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삐에로쑈핑의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재밌고 유쾌하지만 뭘 사고 싶진 않다”

시도는 좋았다. 소비의 주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 가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 경험과 브랜드 가치에 집중한 플랫폼으로 바뀌어 왔다. 정 부회장이 오프라인 전문점을 ‘체험’과 ‘재미’ 위주로 꾸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삐에로쑈핑이 ‘재미’는 잡았어도 ‘핵심’이 빠졌다고 진단했다. B급 감성을 내세웠지만 정체성과 타깃이 모호했다. 특히 잡화점의 핵심인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게 가장 큰 실패 원인이었다.

노은정 숙명여대 산학협력 교수는 “삐에로쑈핑이 벤치마킹한 돈키호테의 가장 큰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라며 “삐에로쑈핑은 소비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돈키호테가 자체 브랜드(PB) 상품 등으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한 것과 달리 다른 오프라인 채널과 비교할 때 저렴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소비자들의 반복적인 구매가 이뤄지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삐에로쑈핑은 세상의 모든 물건을 판다며 ‘만물상’ 콘셉트를 내세웠다. 이에 걸맞게 500원짜리 잡화부터 다른 유통 채널에서 보기 힘든 성인 용품, 수백만원짜리 명품까지 카테고리가 다양했다.

또 바닥부터 천장까지 물건을 가득 채워 넣는 돈키호테의 ‘압축 진열’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쇼핑하는 즐거움’을 내세웠다. 식품·가전제품·서클렌즈·화장품·주류·리빙 코너부터 명품 코너까지 4만여 가지 상품을 빼곡하게 진열했다.

원하는 제품을 쉽게 찾기 어렵다는 게 콘셉트였다. 직원들조차 ‘그게 어디 있는지 저도 모릅니다’는 문구가 적힌 티를 입고 있을 정도였다. 고객 동선 역시 미로처럼 배치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삐에로쑈핑 매장은 진열대 간 거리가 0.9m, 메인 동선 역시 1.8m를 넘지 않는다. 보통 대형마트에선 주동선 4m에 진열대 간 거리는 2.5m 정도다. 이런 매장을 ‘보물을 찾기 하듯 탐험하며 쇼핑을 하라’는 것이 삐에로쑈핑이 벤치마킹한 ‘돈키호테’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은 일본보다 한국의 온라인 쇼핑이 발달돼 있다는 것을 놓쳤다. 소비자들은 네이버쇼핑을 통해 최저가를 찾고 있고 쿠팡을 통한 로켓배송이 일상화돼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모든 물건을 한 공간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힘든 이유다.
‘삐에로쑈핑'은 왜 문을 닫을까
‘무엇이든 다 있다’는 정체성도 오히려 구매 목적이 뚜렷한 소비자를 끌어들이거나 계획 구매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를 만들었다. 명품이 필요한 사람도, 식품이 필요한 사람도, 서클렌즈나 화장품이 필요한 사람도 구매 계획 단계에서 삐에로쑈핑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생활 잡화점’이지만 핵심 상권이나 대형 쇼핑몰 위주로 자리 잡은 입점 전략 또한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노 교수는 “생활 잡화점에 가깝지만 소비자들의 생활 반경과는 먼 쇼핑몰이나 명동·판교 등 임대료가 높은 핵심 상권에 자리 잡아 투자 수익률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며 “다이소와 올리브영 등 비슷한 성격의 다른 채널들이 저마다의 뚜렷한 차별성과 정체성을 내세우며 소비자들의 생활 반경 가까이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삐에로쑈핑을 재방문해야 하는 동인이나 유인책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패착 요인은 바로 가격 경쟁력이다. 삐에로쑈핑은 오픈 초기부터 다른 오프라인 채널에 비해 비싸다는 평을 들어왔다.

다이소 역시 삐에로쑈핑과 비슷하게 생활 잡화점을 표방하지만 가격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하다.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이 1000~3000원 사이로 책정돼 있다. 5000원짜리 제품도 비싼 편에 속한다.

500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다양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삐에로쑈핑과는 차별화되는 전략이다. 마트나 H&B스토어와 비교해 봐도 삐에로쑈핑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마트업계는 최저가 경쟁을 하느라 바쁘다. 다양한 할인과 적립금을 내세우는 H&B스토어와 비교할 때 가격 경쟁력이 삐에로쑈핑 방문의 동인이 되기는 어려웠다.

삐에로쑈핑은 재고 상품이나 유통 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선보였다. 하지만 그 외 물건은 인터넷이나 H&B스토어·마트가 더 저렴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본에서 파는 복숭아 맛 물은 현지보다 2배 비싼 가격에 판매됐다. 2019년 12월 기준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서 할인가 500원에 판매한 일본 탄산음료는 삐에로쑈핑에서 1500원에 팔렸다. 발에 붙이는 패치 역시 다른 H&B스토어에 비해 500~1000원 비싼 가격에 선보이고 있었다.
‘삐에로쑈핑'은 왜 문을 닫을까
◆결국 칼 빼든 이마트

이마트는 삐에로쑈핑과 함께 다른 전문점 사업 역시 손을 볼 계획이다. 2019년 7월 18개 점포를 철수한 H&B스토어 부츠는 부진 점포 효율화를 이어 갈 방침이다.

영국의 H&B스토어를 그대로 들여온 부츠는 한국인의 감성에 맞지 않고 프리미엄을 지향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을 받아 왔다.

전자제품 전문점 일렉트로마트는 임차료가 높거나 상권이 중복되는 매장을 위주로 폐점을 계획하고 있다. 2019년 12월에는 죽전점과 상권이 겹치는 판교점 영업을 종료했고 2020년 초 대구점도 문을 닫을 계획이다.

이마트는 전문점 사업을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하는 한편 이마트 기존 점포의 30% 이상을 리뉴얼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이마트의 체질 개선이 2019년 취임한 강희석 이마트 대표의 결단으로 보고 있다. 강 대표는 이마트 역사상 첫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강 대표 취임 직후 부진한 사업을 과감히 접는 등 수익성 중심으로 개선 작업에 들어가자 증권업계에서는 2020년 이마트의 실적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문점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이 이어지면서 2020년부터 관련 적자가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노브랜드처럼 성공 사례로 평가되는 사업은 여전히 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조 삐에로쑈핑’ 돈키호테도 위기감
삐에로쑈핑이 콘셉트와 제품 진열 방식, 경영 방식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일본의 돈키호테 역시 최근 들어 고민이 커지고 있다. 돈키호테는 지난해(2019년 6월 결산) 목표 매출 1조 엔(10조6000억원)을 돌파했다.

2017년 싱가포르에 이어 태국과 홍콩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승승장구하는 실적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젊은 소비자들에게서 멀어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돈키호테를 운영하는 팬퍼시픽인터내셔널홀딩스(PPIH)는 2019년 8월 결산 발표 기자 회견에서 “돈키호테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올드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일본 역시 젊은 소비자들이 쇼핑을 위해 온라인과 SNS로 발길을 돌렸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돈키호테는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한 외국인 관광객이나 나이든 사람들, 억척스러운 살림꾼이 가는 브랜드로 인식된다.

일본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사카·후쿠오카 등 돈키호테 주요 매장 매출의 5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나오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온라인 쇼핑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젊은 소비자들이 주로 도큐핸즈 등 드러그스토어나 다이소를 이용하지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돈키호테를 찾는 이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