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경비즈니스 창간 25주년 특별기획 ‘뉴 밀레니엄 20년’ ]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국가 이기주의·민족주의가 신자유주의 밀어내고 득세 할 것
[뉴 밀레니엄 20년] “인구 감소·AI 혁명 후폭풍...‘공급과잉의 시대’가 시작됐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해마다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온라인 사전 사이트인 딕셔너리닷컴이 최근 ‘실존적인(Existential)’을 2019년을 상징하는 단어로 선정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주로 ‘실존적 위험’과 같이 어떤 존재가 위태로운 상태에 놓인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인다.

전 세계적으로 격화되는 정치적·경제적 갈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등 인류는 지금 ‘실존적 위기’ 앞에 놓여있다. 2020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10년은 이와 같은 위기에 맞서 인류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질문이 필요한 ‘대전환의 시기(Age of Transition)’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불리는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로부터 새롭게 맞이하는 10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지에 대해 물어봤다.

-2020년대가 새롭게 시작됐습니다. 이 ‘새로운 10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2020년대는 인류 역사상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고점을 찍고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둘째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겁니다. 수많은 기술 발전 중에서도 인공지능(AI)과 바이오가 큰 두 축이 될 것입니다. 셋째 환경 문제입니다. 인류의 서식 환경이 최악이 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환경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인류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거대한 트렌드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0대는 역사에 있어서 ‘대전환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인구변화, 기술발전, 환경위기 세 가지를 거대한 변화로 꼽아주셨는데요. 인구변화만 하더라도 2020년대에 새롭게 나타나는 변화는 아닙니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죠. 하지만 2020년대는 역사상 최초로 가장 중요한 인구학적 변동이 나타나게 될 겁니다. OECD 선진국 국가들의 경우 예외 없이 인구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죠. 2020년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는 해가 될 겁니다. 반만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동남아나 중국도 시간의 문제지 10년 내에 이와 같은 인구구조로 바뀌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사회 인구구조는 피라미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항아리에서 역피라미드 형태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류를 지탱해 오던 모든 시스템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는 AI와 바이오 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핵심은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등장입니다. 석기 시대 이후로 인류가 사용한 모든 기계는 인류가 직접 조작을 해야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힘을 줘서 망치를 내리치는 것과 같이 말이죠. 그런데 기계가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인간의 ‘인풋’없이 기계가 스스로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2020년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조작이 필요없는 기계가 상용화될 겁니다. 그리고 그 기계가 많은 부분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능가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게 근본적인 4차 산업혁명의 의미가 되겠죠. 바이오 기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진화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그게 바로 진화론이잖아요. 그런데 바이오 기술의 진전으로 인류 스스로 진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외부의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라 인류가 바이오 기술을 이용해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결정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것 또한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는 향후 10년 동안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경위기와 관련해서는 환경에 대한 인류의 투자비용을 언급하셨습니다.

“기후변화라든지 환경보호와 같은 거대 담론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애기가 되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최악이 된 인류의 서식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이상 ‘경각심’을 갖는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시기가 온 겁니다. 그걸 모두가 느끼기 시작했고요. 아마 이를 치유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 갈 겁니다. 신재생에너지,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이 모든 것들이 다 환경과 관련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 세 가지 거대한 트렌드가 경제적 관점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공급과잉’입니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전 세계가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숫자는 줄어드는 데 그에 비해서 모든 것이 다 공급과잉입니다. 그렇다고 인구를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 와중에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로봇이 상업화됩니다. 일례로 간단한 식당 서빙조차 로봇이 대체합니다. 공급과잉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고 봅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인해 이미 지난 20년간 세계 경제는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지속돼오던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가 온 겁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가 부채를 늘려서 지금껏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을 자꾸만 뒤로 미뤄왔다는 겁니다. 향후 10년 동안은 이 부채를 어느 정도는 털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030년대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더 큰 위험이 올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해내기 어려울 테니까요. 향후 10년 내에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한계를 맞았다면 이에 대처할 방법이 있나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신자유주의’에서 새로운 ‘국가 이기주의 · 민족주의’로 대체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했던 1980년대부터 트럼프 대통령 전까지 30년간 경제를 가동시키는 ‘기반’으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신자유주의란 크게 ‘상품·서비스·인력·자본’ 네 가지가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미 미중 간의 무역전쟁으로 ‘상품’ 부문의 자유로운 이동은 깨졌습니다. 서비스 부문에서 보면 당장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2020년 1월1일부터 디지털 세를 시행한다고 하죠. 이미 미국 기업들이 중국 직원들을 해고하고 중국에서도 미국 직원들을 해고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마지막 자본규제는 미국이 벌써 중국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는 걸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가 간 이기주의로 인한 미중 패권전쟁은 앞으로 10년 내에 끝나기 어려울까요.

“ ‘신자유주의’가 ‘국가 이기주의’로 대체되는 이유는 쉽게 말해 ‘먹고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주로 나타나는 것이 민족주의 성향을 가미한 포퓰리즘입니다. 트럼프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의 브렉시트도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현상이죠.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볼 때 답은 해외 시장에서 자신의 파이를 챙기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미중간의 패권전쟁도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면 그만큼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이 싸움에서 미국에 지면 중국이 망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20년간 국제 질서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의 패권 다툼이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들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경제적 양극화’가 필연적으로 더 심각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얘기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부분은 주로 ‘단순반복형 업무’입니다. 오히려 ‘단순노동형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이 부분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단순노동형 일자리는 대체로 저임금에 파트타임 형태의 일자리가 많다는 겁니다. 기계가 중간층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인간의 일자리는 매우 고임금을 받는 전문직이나 아니면 저임금의 단순노동형 일자리만 남게 됩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닙니다. 알다시피 미국은 양극화가 심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 지출을 늘려서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대는 국내외 모두 사회적으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전환기에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는 시기일 테니까요.”

-한국이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대전환 혹은 대개혁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교육이 가장 먼저입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경제 구조의 변화, 일자리 구조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되는 세상에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현재 고등학교 한 반의 학생이 스무명 정도인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 더 줄어들 겁니다. 조금 더 학생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토론 위주의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해지는 환경이 될 거라는 얘깁니다.”

-최근 규제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더 완화해야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데요.

“규제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는 데 중요한 건 맞죠. 하지만 새로운 산업이라고 무조건 육성할 게 아니라 산업별로 이를 잘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국가고 실제로 제조업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조업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제조업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스타트업도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기반 한 산업들을 육성해야 합니다. 이런 산업들은 기술 개발의 속도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 기술력을 무기로 해외 시장 진출이 가능하고 세계 1위도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최근 규제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업종들을 보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O2O서비스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버와 같은 사업은 결국 ‘쪽수’의 게임입니다. 우리가 해외시장으로 갔을 때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합니다. 또한 택시기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업종에 혁신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이런 업종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천천히 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 앞에 닥친 많은 위기를 얘기했습디다만 사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한국의 상황은 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10년은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속에서 그마나 여력이 있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얼마나 잘 버텨내도록 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은 정부 재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이만하면 탄탄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면서 미래에 대한 투자를 무엇보다 꾸준히 해야겠죠. 무엇보다 가장 큰 강점은 국민들이 아직 열정적이고 역동적입니다. 무기력하지 않고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여전히 많다는 거죠. 교육열도 높고요. 이와 같은 높은 성취욕구와 다이나믹한 열정이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희망적인 미래가 가능합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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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