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허윤의 경제돋보기] ‘베트남 환상’의 세 가지 덫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 유망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적인 인건비 상승과 내수 부진에 미·중 무역 전쟁까지 겹쳐 중국의 사업 여건이 악화한 데다 노동법과 환경법이 강화되면서 폐업마저 어렵게 되자 많은 기업이 중국을 대체할 지역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왜 그럴까.
첫째, ‘언어와 인건비 문제’다. 베트남 현지 인력을 6성 언어인 베트남어로 교육할 수 있는 중간 매니저급 한국 직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한국어를 잘하는 베트남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의사소통의 실패로 사업이 망했다’는 하소연이 현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강력한 임금 인상 정책으로 베트남 외자 기업의 임금 상승률이 2010년 이후 연 11.4%에 이르고 월평균 임금 또한 400달러를 넘어섰다.

둘째, ‘후진적 시스템’이라는 덫이다. 법적 요건을 충족했지만 허가서가 나오지 않아 사업을 접는 곳이 허다하다. 상위법과 하위법(시행령 등)이 어긋나도 법원에서는 문구의 해석만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이 제소를 통해 보상받을 길이 막혀 있다. 부동산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부동산 경매·공매 제도가 개선되지 않아 해결이 난망하다. 사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자니 늘어나는 대관 업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셋째, ‘상호 신뢰 원칙의 폐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 정부 혹은 국영기업이 대금 결제를 지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호찌민 지하철 공사를 맡은 일본 건설업체들이 아직도 발주처로부터 약속된 기성금(공사 과정에서 현재까지 완성된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공사 금액)을 받지 못했다. 정부의 투자 허가서에 기재돼 있는 관세나 부가세 환급 등도 막상 신청하면 받아내기가 까다롭다.

1986년 도이머이(개혁정책) 이후 베트남의 경제 발전은 눈부시다. 매년 6%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하노이와 호찌민은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가 눈에 띈다. 우선 기술력을 가진 토착 기업이 전무하다. 시가총액 1위인 빈그룹(Vingroup)은 부동산 개발 업체다.

병원·백화점·학교·슈퍼마켓에 이어 최근에는 자동차(빈패스트)와 스마트폰(빈스마트) 제조에도 뛰어들었지만 기술력은 걸음마 단계다. 2위인 마산그룹(Masangroup)은 식음료 업체다. 자산 규모 최상위도 모두 은행들이다. 외자 기업들이 국내총생산의 약 20%, 수출의 72%를 담당하고 있지만 토착 베트남 기업과의 기술이전이나 협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럴 만한 베트남 제조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 자체가 실종된 채 농업에서 서비스로 경제 중심축이 이행된 나라, 기술 사다리 타기를 포기한 경제, 그것이 바로 베트남 경제의 현주소다. 베트남은 지금 2049년 기술력 세계 1위를 꿈꾸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의 잠재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베트남 기업에 대한 각종 재무 정보나 정부 통계도 믿기 어렵다.

유능하고 믿을 만한 현지 사업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우선 재무적으로 투자하고 상황을 관찰하면서 투자 비율을 조정하거나 직접 투자로의 전환을 꾀하는 단계적 전략이 유효하다. 진흙 연못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는 베트남의 국화(國花) 연꽃처럼 힘든 여건 속에서도 베트남 성공 신화를 써나갈 우리 기업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