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자기만족이나 필요없는 불안 벗어나 꼼꼼한 과정 분석 필요
협상에서 ‘교훈’ 얻으면 ‘절반의 성공’이다
[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해서 협상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원하는 기업을 인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실패한 협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면 협상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즈니스 협상이든 아니든 협상의 성공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씩 풀어 보자. 거래가 성사됐다. 당신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보다 상대가 거래를 절실히 원했기 때문에 협상이 성사됐거나 혹은 목표가 낮아 성사됐을 수도 있다.

협상이 타결됐으니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하다. 또한 결렬됐으니 실패했다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협상의 성공과 실패를 구분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거래 성사됐어도 조건이 안 좋다면 ‘실패’


반도체 검사 장비 납품 계약을 눈앞에 둔 A사와 B사. 10여 개의 경쟁사가 입찰했지만 두 업체가 끝까지 살아남아 최종 후보가 됐다. 계약을 따내기 위한 양 사의 노력은 한마디로 피눈물 나는 전쟁이었다.

연구·개발(R&D) 인력과 수주팀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사장까지 공장에서 밤을 새웠다. 두 회사 모두 이번 계약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었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이 계약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최종 계약 업체가 발표되는 날 A사 최 모 사장과 B사 김 모 전무는 각각 다른 시간대에 불려갔다. 둘 중 한 사람은 거대한 반도체 회사의 계약서를 손에 쥐게 된다. 마침내 최종 발표를 듣고 난 뒤 회사 정문을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표정은 엇갈렸다.

A사 최 사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B사 김 전무는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어깨까지 축 처져 있었다.

여기 이 장면을 보고 누가 계약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할까. 만약 울상이 된 B사 김 전무 손에 계약서가 들어 있다면 이들이 보인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론을 얘기하면 A사 최 사장은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모든 역량을 쏟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최 사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최선을 다했고 협상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아서다.

그는 큰 대기업을 상대로 수차례 협상을 벌이다 보니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얻었다. 고객이 원하는 기술 수준을 파악했고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

비록 후발 주자이지만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동종 업체들의 애로 사항과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을 보강해야 경쟁력이 생길지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물론 결과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양보하기만 했다면 계약을 따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계약 실패 소식에 실망할 직원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기술 제일주의’였다.

기술로 승부를 해야지 돈으로 승부하지 말자는 것이다. 최 사장은 가격을 깎아 달라고 해서 응해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전례가 돼 향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정밀 기계의 핵심은 ‘기술’이지 ‘가격’이 아니라는 것이 엔지니어 출신이기도 한 최 사장의 확고한 원칙이었다. 그는 정문을 나서며 비록 계약은 놓쳤지만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는 날씨도 좋으니 그동안 미뤘던 섬 낚시라도 갈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반면 거래를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B사 김 전무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김 전무는 거래를 성사시킨 후 방금 계약한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한 달을 넘긴 협상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특히 최종 협상 자리에서 가격과 애프터서비스 조건을 두고 상대는 이것저것 트집을 잡았다.

비웃는 표정으로 경쟁사의 조건을 들이대며 자신을 압박했다. 그럴 때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하게 주장하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어차피 계약을 위해선 양보는 피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조건을 수정해 제시하면 상대는 확실히 흡족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미 계약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도록 압박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좀 더 버텨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어쨌든 계약을 따내지 않았는가. 인내심을 발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돌아가 사장과 동료들 앞에서 계약 조건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한다. 조금 무리하게 잡은 납기 일정과 빡빡한 가격 조건이 마음에 걸린다.

“수주하는데 고생하셨네요. 하지만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와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의 기준 만드는 ‘지족형 vs 안달형’


김 전무는 협상 대표로서 자사의 이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계약을 눈앞에 두고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계약 성사에 대한 보상이 기껏 동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위의 사례를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계약을 따낸 김 전무는 협상에 성공했고 계약을 놓친 최 사장은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최 사장도 협상에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새로운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갖고 결과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거래가 끝난 협상이 성공적이었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협상 당사자의 성격과 태도다. 결과에 순응하며 만족하는 성격, 소위 ‘지족형(知足形)’이 있는가 하면 결과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매달리는 ‘안달형’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성격 유형이 있을 수 있다.

A사 최 사장은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거래를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며 행복해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배운 것이 많았다고 하지만 제대로 배운 것인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그가 협상 테이블에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회를 혹시 놓친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상대가 보내는 몇 가지 신호를 미련한 곰처럼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눈치 빠르게 그 낌새를 포착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 사장은 자신에게만 몰입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어떤 신호를 보내건 자신이 세운 원칙만 고수했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최 사장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기만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낙천주의’와 ‘낙관주의’다. 낙천주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바로 그 현실에서 출발하는 태도다. 최 사장은 낙천주의가 아니라 낙관주의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 반응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다면 다른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B사 김 전무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걱정 많은 그의 성격 덕분일 수도 있다. 그는 매사에 초조해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한다. 분명 A사 최 사장과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협상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자신의 선택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얼마나 고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김 전무가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을 다독였기에 계약서를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놓친 것은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런 성격적인 특성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덜 행복하다.

남들 보기엔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냈으면 마땅히 행복해야 함에도 그는 그렇지 않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극대화자(maximizer)’라고 할 수 있다. 극대화자는 늘 ‘이것이 최선인가’라고 묻는다.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결정을 위해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한다.

A사 최 사장과 B사 김 전무의 성격이나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답은 없다.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평정심을 지키면서도 협상에서 승리하는 둘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김 전무처럼 극대화자가 되는 것이 좋고 테이블에서 일어선 다음에는 지족자가 돼 다음 거래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나 조직을 대표해 혼자 협상에 나설 수도 있고 팀으로 나설 수도 있다. 이때 사람들은 준비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협상이 끝난 뒤 그 경험을 분석하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개인이나 조직에 큰 손해다.

필자는 최근 차를 교체하기 위해 몇 년 전 차를 구입했던 자동차 영업소를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거래했던 직원은 이미 은퇴한 상태라 새로운 영업 직원이 상담을 진행했다.

◆반복되는 실수는 자신과 조직에 손해


그런데 그 친구의 태도가 눈에 조금 거슬렸다. 흥정 끝에 꽤 괜찮은 가격을 이끌어 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조금 더 생각해 보고요, 내일 전화 드리지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영업 직원은 노려보면서 “이 가격으론 어디 가셔도 살 수 없을 겁니다. 빨리 결정하세요”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음 날 다시 영업소를 방문해 조금 더 가격을 낮추거나 엔진오일 무상 티켓 두세 장을 받아내는 선에서 계약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문득 그 직원이 얼마나 불쾌하게 굴었는지 자꾸 떠올랐다.

차도 마음에 들고 가격도 괜찮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직원과 거래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다른 영업점에서 똑같은 가격에 같은 모델을 구입했고 이후 그 영업점에는 발길을 끊었다. 그 영업 직원은 필자와의 거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마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부류의 고객을 수없이 상대해 왔으니까 말이다. 살 생각도 없으면서 가격이나 찔러보는 그저 그런 고객 중 한 명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몇 마디 투덜대다가 별생각 없이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계약 한 건을 놓쳤다. 놓친 계약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똑같은 영업 방식을 내일 또다시 반복할 것이다. 사실 누구라도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의 협상 스타일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했던 협상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지나간 협상에서 배우지 못하면 다음에도 실수는 반복된다. 반복되는 실수는 자신과 조직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