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금융 위기 돌파한 능력 있는 경제 관료 출신
-‘혁신 금융’과 ‘바른 경영’이 미래 키워드
‘변화’ 예고한 윤종원 행장…기업은행, 수익성·공공성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우여곡절 끝에 1월 29일 취임식을 가졌다. 1월 3일 임기를 시작한 지 27일 만이다. 2013년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의 14일 기록을 넘어서는 금융권 최장 출근 저지 기록이다. ‘낙하산 논란’으로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을 샀던 윤 행장은 설 연휴 기간 내내 노조와 물밑 협상을 이어 간 끝에 설 연휴 마지막 날 극적인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윤 행장은 1월 29일 그를 저지하기 위해 설치됐던 천막과 텐트 대신 ‘은행장님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직원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첫 출근할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노조와의 갈등’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어 어렵사리 첫 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지만 당장 그의 눈앞에 산적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위기에 강한 관료’에서 기업은행 수장으로

윤 행장은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 출신 인사다. 재무부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의 요직을 맡으며 거시경제, 국내·국제금융 등 경제 정책 전반을 두루 담당해 왔다. 기재부가 매달 발간하는 경제 동향 분석 자료인 ‘그린북’을 처음 발간한 것도 윤 행장이다.

무엇보다 그는 ‘위기에 강한 관료’로도 알려져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2년 7개월 동안 기재부 경제 정책을 총괄하며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노조가 윤 행장이 금융 실무 경력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그의 ‘능력’ 만큼은 의문을 품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윤 행장의 취임을 반대한 데는 ‘외부 출신 행장’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윤 행장은 10년 만의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외부 출신 수장이다. 2010년 첫 내부 공채 출신인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김도진 행장까지 3연속 내부 출신 인사가 수장을 맡아 왔다. 국책은행(KDB산업·수출입·기업은행) 중에서는 유일하게 10년 동안 지켜 온 ‘내부 출신 행장’의 관행이 깨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전임 행장들이 기업은행을 맡아 이끄는 동안 경영 성과도 좋았다. 김 전 행장 체제였던 2018년에는 1조764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고 ‘동반자 금융’을 강조하며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해 중소기업 대출 160조원을 돌파하는 등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윤 행장은 이와 같은 전임 행장들의 경영 성과를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윤 행장은 최근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수익성’뿐만 아니라 국책은행으로서의 ‘공공성’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부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익성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이를 위해 윤 행장이 앞세우는 것은 두 가지다. ‘혁신 금융’과 ‘바른 경영’이다. 윤 행장은 취임식에서 “기업은행의 지난 60년만큼 향후 60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며 “기업은행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과 자회사 간의 시너지를 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지주사 체제 전환에 대해 검토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혁신 금융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그는 이를 위해 ‘신뢰·실력·사람·시스템’ 등 네 가지를 강조했다. ‘초일류’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조직 혁신이 필수다. 윤 행장은 인적 자원의 적극적인 양성에 더해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의 개혁도 함께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경영 관리 측면에서의 혁신도 강조하고 있다.

윤 행장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혁신 기구’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기존 금융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혁신금융추진위원회와는 다른 성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험 자본 투자 등 금융 혁신은 물론 내부적인 업무 프로세스 혁신까지 아우를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이를 위해 이미 유럽의 HSBC와 산탄데르 등 글로벌 은행들의 사례에 대한 수집을 마쳤다.

공공성 강화 측면에서도 윤 행장은 적극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취임 직후 그의 첫 공식 일정은 ‘IBK창공 구로’와 IBK창공 구로의 1기 육성 기업인 ‘올트’의 스마트 공장 방문이었다. IBK창공은 혁신 기업에 사무 공간, 투·융자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기업은행의 창업 육성 플랫폼이다. 윤 행장은 기존 창업 지원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기 위해 ‘IBK창공’과 거래 기업인 ‘올트’를 취임 첫 일정으로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윤 행장은 “향후 기술금융, 인수·합병(M&A), 인수금융 등 다양한 모험 자본 공급 경로를 확대,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 체계를 갖추기 위해 기업은행의 신용 평가 시스템을 기술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직원 소통 강화해 은행 경쟁력 높인다

장기적으로는 ‘초일류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추진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조직을 안정시키고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윤 행장은 임명 직후 20~21대 기업은행장을 지낸 고 강권석 전 행장의 묘소를 참배했다. 강 전 행장은 윤 행장과 마찬가지로 재정경제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등을 거친 정부 관료 출신 인사다. 하지만 기업은행장을 맡은 후 ‘자산 100조원 돌파’와 ‘은행권 첫 차세대 전산 시스템 구축’ 등의 큰 성과를 이끌어 낸 인물이다. 강 전 행장을 상기시킴으로써 ‘관료 출신 행장도 기업은행의 성장을 이끌며 좋은 사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노조와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윤 행장은 설 연휴 기간 동안에만 5차례의 면담을 진행했을 만큼 소통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도출된 기업은행의 노사 공동 선언에는 6가지 내용이 포함됐다.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 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한다는 내용과 함께 희망퇴직 문제 조기 해결, 정규직 일관 전환 직원의 정원 통합, 노조 동의 없는 직무급제 도입 등 입금 체계 개편 금지, 임원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개선, 인병 휴직(휴가) 확대 등이다.

이 중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은 ‘노조추천이사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회 사외이사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윤 행장은 “노조와의 합의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노조추천이사제를 직원들과 경영진의 ‘소통 창구’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하고 결국 은행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은행이 주주 이익에만 너무 치우치면 직원들의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 행장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노조추천이사제가 필요하다”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은행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