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벤디스 대표 “회사 커지며 리더십 고민…기획은 가볍게 의사결정은 무겁게”
[편집자 주]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가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소비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한편 노동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밀레니얼 세대는 주로 직장인 중심의 이슈로 다뤄져 왔다. 윗세대와 섞이지 못하는 튀는 세대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됐다.
하지만 이젠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조명해 볼 때다. 저성장 시대로 대표되는 지금 오늘의 상황에서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내는 밀레니얼 CEO들은 맨땅에서 부를 일군 1세대 기업가, 벤처 붐 열풍을 타고 급성장한 벤처 1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여행·커뮤니티·콘텐츠·오피스 푸드테크 등 각 분야에서 최근 주목 받는 창업 6년차 이상 밀레니얼 CEO 4인을 만났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아침 7시 30분, 오피스 푸드테크 기업 벤디스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이는 조정호 대표다. 매일 저녁 약속이 있다 보니 아침 일찍 나와 업무를 본다. 매주 월요일 아침 9시에는 주간 회의가 열린다.
회의에는 원칙이 있다. 미리 공유된 회의록의 Q&A로만 진행하며 회의 시간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업무의 자율성도 일의 진행 과정에 따라 다르게 보장된다. 기획은 가볍게 의사결정은 무겁게 이뤄진다. 조 대표는 식사시간을 네트워킹에 활용한다. 점심시간은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런치 미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저녁 시간은 B2B(기업 대 기업) 기업의 특성상 영업 기회로 활용한다.
◆모바일 혁신 주도한 밀레니얼 CEO
조정호(34) 벤디스 대표는 창업 7년 차 최고경영자(CEO)다. 2014년 종이 식권과 식대 장부, 법인 카드 등 아날로그 방식에 의존하고 있던 기업 식대 시장을 모바일로 옮겼다. 벤디스가 운영하는 모바일 식권 관리 대장 서비스 ‘식권대장’은 현재 360개 고객사를 두고 있다.
조 대표와 같은 19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CEO들은 국내 모바일 혁신의 중심에 서있다. 아이폰이 탄생한 2007년 대학 시절을 보냈고 카카오 등 모바일 벤처 붐이 일기 시작하던 2010년 이후 대학을 졸업했다.
1986년생인 조 대표에게도 벌써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동안 아무도 추산하려고 하지 않았고 추산되지 않았던 20조원 규모의 식대 관리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선배 창업가들의 도움도 이어졌다. 벤디스는 그동안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우아한형제들·네이버 등 거물급 투자사들에서 107억원을 투자받았다.
‘식권대장’의 경쟁력은 편리함에만 있지 않다. 고객사 중 한 기업은 식권대장을 도입한 이후 식대를 25% 정도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 사용 내역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모바일 식권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식권깡, 대리 사용 등에 따른 식대 누수가 근본적으로 차단됐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관리팀의 업무 생산성도 높아졌다. 전국에 근무지와 영업장이 흩어져 있던 한 고객사는 그동안 종이 식권 사용 시 관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관리가 가능해져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벤디스 창업 이전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창업 초기는 제일 신나는 단계입니다. 누구나 성공할 것 같거든요.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디스 역시 창업 이후 1년 동안 고객사가 단 2곳뿐이었다. “B2B 모바일 서비스는 B2C(기업 대소 비자)보다 진입 장벽이 높았습니다. B2C는 소비자가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지울 수 있어요. 하지만 B2B는 도입까지 굉장히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했죠.”
처음엔 벤디스의 영업을 거들떠보지 않던 기업들도 우아한형제들과 네이버 등의 투자가 이어지자 관심을 보였다.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창업 2년 차인 2016년 고객사가 50개로 늘었고 2018년 200개, 2019년 300개 기업이 식권대장을 도입했다.
기업의 몸집이 커지자 조 대표의 고민도 늘었다. 그는 최근 조직의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리더십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변했다’라는 말이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비춰지잖아요. 하지만 기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포지션이 변할 때마다 리더의 역할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환경이 변하는데 조직 체계나 리더십이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거든요.” ◆자율과 방임 사이
조 대표는 창업 초기엔 거의 모든 권한을 직원들에게 위임했다. 그는 창업 초반 조직 문화가 자유보다는 ‘방임’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이 갖춰야 하는 관리 체계와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조직이 작을 때는 고개만 돌리면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때는 방향이 틀어져도 대화로 풀어나가면 됐죠. 하지만 50명의 팀원이 생기면서 이제는 각자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조 대표의 경영 철학은 ‘진정성’이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 후발 주자들이 생겨나면서 시장 환경이 격해지고 있지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꾸밈보다 솔직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 대표는 리더의 역할이 ‘삼국지’의 유비와 같다고 말한다. “유비는 가장 뛰어난 장수도 아니고 가장 뛰어난 지략가도 아니에요. 하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그들이 모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리더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벤디스에서 일하는 50명의 직원은 밀레니얼 세대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생 직원이 30%에 달한다.
“제가 밀레니얼 세대여서 그런지, 다양성을 수용하는 조직 문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생과의 간극을 느낀 적이 없어요. 가끔 회의록 코멘트에 제가 모르는 신조어가 달릴 때는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이 일의 가치를 ‘성장’에 둔다고 말했다. 특히 ‘회사가 자신의 성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경력직으로 조인하는 이들은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을 해요. 첫째,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둘째,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대표가 이 질문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좋은 인재를 영입할 수 없고 회사는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들죠.”
조 대표가 조직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평가’와 ‘보상’이다. 조 대표는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과 직원을 평가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이 과자 먹지 마’라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그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거든요. 직원들에게도 명확한 평가와 보상을 통해 회사가 추구하는 바를 인지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레니얼 CEO인 조 대표가 원하는 인재상은 ‘성장’과 ‘자극’을 기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직원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동기부여로 가득 찬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조 대표 역시 ‘성장’을 위해 일한다. “어떤 일을 8년 동안 하면서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구나’를 느끼는 게 굉장히 힘들잖아요. 창업 기간을 되돌아보면 매년 버티기 벅찰 정도로 어려운 한 해였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히 매년 투자를 받아서가 아니에요. 앞서 나간 스타트업 선배들에게 직접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듣는다든지,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구축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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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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