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 미국 최대 포인트 보상 기업 인수·디지털 자산 관리 앱 출시하고 ‘막강 파트너’ 협업
[한경비즈니스 =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글로벌 전략팀 디지털 파트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세계 최대 증권 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보유한 ICE그룹은 2018년 스타벅스·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백트(Bakkt)라는 디지털 자산 전문 기업을 설립했다.

2019년 백트는 미국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아 기관용 비트코인 거래 및 수탁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경쟁사인 백트가 선보인 비트코인 선물 상품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선물 상품에 비해 거래량이 적어 시장 참여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백트의 비전을 과소평가해서는 곤란하다. 현재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하는 사업은 단순히 비트코인을 금융 자산화하고 거래량을 늘리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백트의 비전은 실생활에서 비트코인이 사용되게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ICE그룹은 어떤 방식으로 비트코인의 사용처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을까.
비트코인 사용처 확대하려는 ICE그룹의 광폭 행보
(사진) 뉴욕증권거래소를 보유한 ICE의 제프리 스프레처 회장
◆‘디지털 자산의 마켓 플레이스’로 가는 백트


2020년 2월 5일 ICE는 자회사 백트가 포인트 보상 기업 브리지2를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브리지2는 미국 최대의 포인트 보상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현재 관리하는 포인트 규모는 총 600억 달러(약 73조원)에 이른다.

ICE에 따르면 브리지2는 미국 내 10개 주요 금융회사 중 7개와 제휴하고 있고 다양한 산업에 걸쳐 4500여 개의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는 브리지2를 통해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둔 항공사 마일리지로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여행 호텔을 예약할 수도 있다. 국내로 치자면 오케이캐시백, 통신사 포인트 등을 한꺼번에 모아 관리하고 이 포인트를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브리지2의 인프라와 서비스는 백트가 2020년 출시할 소비자용 디지털 자산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될 예정이다.

백트는 또 2020년에 소비자용 디지털 자산 앱 출시를 예고했다. 백트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자산의 전체 가치는 약 1조2000억 달러(약 1400조원)에 달한다. 디지털 자산에는 암호화폐를 비롯해 디지털 보상, 선물 카드, 로열티 포인트, 게임 아이템 등이 포함돼 있다.

백트 앱은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자산을 모두 취급하는 마켓 플레이스가 되고자 한다. 백트 앱은 소비자로 하여금 디지털 자산과 법정화폐 간 환전을 매끄럽게 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백트는 자사의 비트코인 커스터디(보관) 인프라를 활용해 비트코인을 각종 디지털 자산과 법정 화폐 환전의 매개체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트가 기획하는 서비스를 국내로 비유하자면 리니지 게임을 해서 얻은 아이템을 스타벅스 포인트로 바꾸고 다시 이를 비트코인 혹은 원화로 바꾸는 식이다.

소비자는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둔 각종 포인트를 비롯한 디지털 자산의 사용처를 넓히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기업은 포인트를 현금화할 때 은행에 내는 수수료를 절감하고 이를 활용해 소비자를 모을 수 있다.

또 눈에 띄는 행보는 전자 상거래 사업이다.

2019년 2월 초 월스트리트저널은 백트의 모기업 ICE가 이베이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시장 참여자들은 전통 금융 비즈니스를 하는 거래소인 ICE가 전혀 분야가 다른 온라인 쇼핑 기업인 이베이 인수를 시도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결국 ICE의 주가는 하락했다.

그러자 ICE는 곧바로 성명서를 냈다. “잠재적인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이베이에 접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베이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베이 인수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

ICE는 이베이와 어떤 비즈니스를 논의했을까. 그 답은 백트가 출시할 소비자용 디지털 자산 앱에 있어 보인다.

생각해 보자. 백트의 앱을 통해 소비자가 항공 마일리지 혹은 비트코인으로 이베이에서 TV를 산다면 어떨까. 이베이는 백트와 수수료 절감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비자는 백트 앱을 통해 디지털 자산의 환전, 거래, 온라인 쇼핑 및 결제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베이는 페이스북 리브라협회의 회원으로 참여했다가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어떤 암호화폐를 어떻게 자사의 온라인 쇼핑 생태계에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베이가 리브라를 앞세운 페이스북과 손을 잡을지 혹은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ICE·백트와 손잡을 지 아니면 관련 회사인 페이팔과 자체적인 암호화폐 생태계를 구축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향후 암호화폐가 이베이의 온라인 쇼핑 결제 솔루션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에는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비트코인 사용처 확대하려는 ICE그룹의 광폭 행보
◆‘든든한 파트너’는 스타벅스·마이크로소프트


비록 이베이를 자사의 생태계에 포섭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백트에는 든든한 우군이 있다. 바로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다.

스타벅스는 백트 앱의 첫 리테일 파트너로 참여할 예정이다. 스타벅스 모바일 앱에는 조 단위 규모의 고객 돈이 다양한 통화 형태로 쌓여 있다. 스타벅스는 백트의 비트코인 솔루션을 통해 이 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스터벅스는 규제 받지 않는 글로벌 비트코인 은행이 되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8년 비트코인 사이드 체인에 탈중앙화 아이디(DID) 개발을 발표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가 인수한 게임사 모장이 운영하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에 비트코인 보물찾기 이벤트를 열었다. ‘사토시 퀘스트’라고 불리는 이 이벤트는 플레이어가 1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참가비로 내고 이벤트에 참여한다. 그 후 가장 먼저 보물을 발견하면 참가자 전원이 지불한 참가비 85%를 상금으로 획득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까지 운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마인크래프트를 비롯해 엑스박스 생태계에서 활용되는 게임 아이템과 게임 캐시는 백트와 연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 사용처 확대를 위해 애쓰는 ICE그룹의 비전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ICE를 이끌고 있는 제프리 스프레처 최고경영자(CEO)가 전자 금융 거래 시장을 혁신한 경험이 있는 선구자라는 점, 백트의 전 CEO이자 제프리 스프레처의 부인인 켈리 뢰플러가 미국 조지아 주 상원의원에 임명돼 암호화폐 관련 규제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 백트가 이미 스타벅스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쟁쟁한 우군들을 확보했다는 점은 비트코인의 사용처를 확대하려는 이들의 비전이 마냥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