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코로나19·전자투표·사외이사 교체·대주주 사내이사 선임·국민연금 움직임 ‘주목’
2020 기업 주주총회 뒤흔들 관전 포인트 5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바야흐로 국내 주요 상장 기업들의 정기 주주 총회가 몰려 있는 3월 ‘주총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도 2000개가 넘는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 가운데 479개사가 3월 18~30일 사이에 주주 총회를 진행한다. 이 중 ‘슈퍼 주총 데이’인 3월 24일 주주 총회를 진행하는 곳만 305개 안팎이다. 이날을 전후해 3월 23~27일까지 매일 각각 100여 개가 넘는 회사들의 기업 주총이 줄줄이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3월 18일, 현대차는 3월 19일, 2020년 주총 시즌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한진칼은 3월 27일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주총도 대부분 3월 중하순에 집중돼 있다.


‘주주 총회’는 주주들이 기업의 주요 안건에 대해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주식회사 체계에서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인 만큼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주주로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총수 일가를 비롯한 대주주들의 의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게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이와 같은 풍경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과 행동주의 펀드의 증가 등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의 ‘주주권 행사’ 기능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전자투표제의 활성화 등 소액 주주들이 본격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 오너 경영인들의 사내이사 재선임 등 기업의 주요 안건에 소액 주주들의 ‘표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2020년 주총 시즌의 5대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관전 포인트 1- 의결정족수 미달될까…기업들, ‘감사·사외이사 대란’ 우려

올해 주주 총회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주총장을 찾는 주주들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상장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줄줄이 안건이 부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총에서 300여 개 상장사가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상정된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장 기업들이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데 소액 주주들의 한 표 한 표가 이렇게 중요해진 배경에는 한국예탁결제원의 ‘섀도 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섀도 보팅은 주주 총회에 나오지 않는 주주의 권리를 예탁원이 대신 행사하는 제도다. 주주 총회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투표를 한 것처럼 간주하고 주주권을 적용했다. 중립을 지키기 위한 제도였지만 사실상 대주주의 뜻에 휘둘린다는 비평을 받으며 소액 주주들의 주주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2017년 말 폐지됐다. 하지만 섀도 보팅 제도 폐지 이후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안건이 부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2017년 기준 이 제도를 이용한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33.3%에 달한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감사 선임 등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는 76곳이었다. 이와 비교해 2018년 같은 이유로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는 188곳으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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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법 규정에 따르면 상장사의 주총 결의 요건은 크게 ‘보통 결의’와 ‘특별 결의’로 나눌 수 있다. 보통 결의 기준은 전체 주주의 4분의 1 이상과 출석 주주의 과반의 찬성이다. 재무제표 승인 등 간단한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도 전체 주주의 25%에 해당하는 찬성표가 필요한 것이다. 사내이사 선임이나 해임 등과 같은 특별 결의는 전체 주주의 3분의 1 이상,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중요한 감사 선임 등의 안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장사들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이른바 ‘3% 룰’ 때문이다. 3% 룰은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지분에 상관없이 최대 3%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경영진을 견제하는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대주주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취지에서 1962년부터 도입된 법이지만 나머지 의결 정족수를 소액 주주들로 채워야 하는 상장사들에는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최대 주주 측 지분율이 높지 않은 상장사들은 고심이 깊다. 코스닥협회는 지난해 12월 코스닥 상장사 1298곳 중 41.9%인 544곳이 이번 주주 총회에서 감사와 감사위원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3% 룰로 인해 감사 선임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해외 사례 등을 고려해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관전 포인트 2- ‘대주주 잔치’는 옛말, 전자투표제로 소액주주 표심 잡기 ‘올인’

이 같은 상황에서 ‘주총 대란’을 해결해 줄 대안으로 ‘전자투표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들이 주주 총회장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 전자 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소액 주주들이 의결권 행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정부 또한 전자투표제의 활성화를 독려 중이다. 이를 통해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며 주주 총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 전자투표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10년 5월이다. 올해로 도입한 지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사실상 사용률은 저조했다. 도입 당시만 하더라도 주주 총회에 소액 주주들의 참여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섀도 보팅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섀도 보팅이 폐지된 2017년 이후 느리지만 서서히 주주 총회에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2018년 예탁원을 통해 전자투표제를 실행한 회사는 517개, 2019년엔 581개로 나타났다. 다만 도입 기업들의 수에 비해 여전히 실제 의결권을 행사율(총 발행 주식 수 대비)은 저조한 편이라는 지적이다. 2017년 1.80%, 2018년 3.92%, 2019년 5.04%로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분위기는 올해를 기점으로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 주주들의 주주권 강화 등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강해진 영향도 있지만 코로나19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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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전자투표 도입을 확정했다. 삼성물산도 올해부터 전자투표를 시행한다. SK그룹은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은 주총 공고를 통해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에 대한 활용을 당부하고 나섰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는 각각 2018년·2019년부터 전자투표를 실시 중이다. 현대차그룹 또한 이미 3개 계열사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했고 현대차를 비롯한 나머지 9개 계열사도 올해부터 전자투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롯데·두산·한화·신세계·CJ그룹 등도 이미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현재까지 전체 상장사(2354곳)의 63.1%인 1486곳이 한국예탁결제원 등과 전자투표 계약을 체결했다.


전자투표 방법 또한 작년보다 쉬워졌다. 본인 확인을 위해 공인인증서가 반드시 필요했던 지난해와 달리 지문 인증과 간편 비밀번호 등으로도 간편하게 본인 인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됨에 따라 주주의 휴대전화와 e메일을 통한 전자투표 일정 알림 서비스도 제공된다. 기업들에는 전자투표 플랫폼의 선택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예탁결제원과 미래에셋대우만 전자투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올해부터는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새롭게 뛰어들었다. 삼성증권은 연초 ‘온라인 주총장’ 서비스를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고 신한금융투자 또한 조만간 전자투표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다.

◆관전 포인트 3-상장사 사외이사 718명 교체, “힘 있는 새 얼굴 모십니다”

의결 정족수 미달에 대한 우려가 ‘발등의 불’이 된 이유는 또 있다. 지난 1월 상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상장사 사외이사의 임기가 최대 6년(계열사 합산 9년)으로 제한되면서 당장 임기 제한을 넘긴 사외이사들을 새롭게 교체해야 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대기업집단 264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853명 가운데 8.9%인 76명은 이미 장기 재임으로 6년·9년을 채웠다. 다시 말해 재선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삼성그룹 6명, SK그룹 6명, LG그룹 5명 등이다. 이 중 삼성SDI는 당장 4명의 사외이사를 모두 바꿔야 하고 셀트리온 또한 사외이사 6명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집계한 결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포함한 556개 상장사가 총 718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시장 233개 상장사와 코스닥시장 333개 상장사가 각각 311명, 407명씩이다.
당초 법무부에서는 사외이사 장기 재직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의 시행 시기를 1년 늦추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난 1월 이를 올해 주주 총회 때부터 바로 적용하기로 확정했다. 상법에서는 상장사의 경우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자산 총액 2조원이 넘는 기업은 이사 총수의 과반(최소 3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기업들이 사외이사 선임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무엇보다 사외이사를 새롭게 선임하지 못하면 관리 종목에 지정되기 때문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준비 시간이 부족해 새로운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것도 문제지만 새 인물을 구하는 데도 비상이 걸렸다. 비슷한 시기에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하는 기업들이 많아 구인난이 더욱 가중된다. 사외이사는 ‘기업의 얼굴’인 만큼 경력과 함께 신뢰감을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기업들이 찾는 인재 풀 또한 겹치는 곳이 많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기업들이 교수 등 학계 인사들을 주로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려온 이유다.


최근 기업 영입 1순위로 손꼽히는 이들은 국세청 고위직 출신들이다. 신세계건설은 최진구 전 대전지방국세청 청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겠다고 공시했다. 오리온홀딩스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김영기 세무법인 T&P 대표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현대홈쇼핑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재웅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이 밖에 검찰·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관세청까지 정부 기관 출신들의 영입도 늘고 있는 추세다. 풍산은 황희철 전 법무부 차관을, 만도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전직 삼성맨들도 인기몰이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 협력사가 많은 코스닥시장에서 삼성 출신 인사들의 선호도가 높다. 풀무원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장을 지낸 심수옥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카카오는 윤석 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 관전 포인트 4- 대기업 총수 일가 사내이사 23명 재선임, 한진가 관심 집중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데 가장 결정적일 수 있는 사내이사 재선임이 주요 안건으로 걸려 있는 기업들도 상당하다. 특히 30대 대기업의 총수 일가 중 23명이 올해 주주 총회에서 재선임 관문을 넘어서야 한다. 의결권 자문사인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2월 10일 ‘2020년 주주 총회, 주요 그룹 지배 주주 등의 재선임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30대 주요 대기업집단 중 17개 그룹의 상장 기업 지배 주주 가운데 동일인 및 동일인의 자녀·형제·친인척에 해당하는 23명이 올해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현대백화점 3월 20일 임기 만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월 24일 임기 만료),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3월 31일 임기 만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도 2월 27일 이들 가운데 이번 주총에서 향후 기업의 경영권 승계 구도를 두고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되는 10개 기업을 꼽고 각 기업별 쟁점 사항을 정리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스틴베스트가 지목한 기업은 대림산업·롯데쇼핑·셀트리온·만도·대한항공·한진칼·현대백화점·삼성전기·신한지주·에스엠이다.
2020 기업 주주총회 뒤흔들 관전 포인트 5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부당 내부 거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은 바 있어 3월 27일 주주 총회를 앞두고 주주들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림의 총수 일가는 최대 주주인 이 회장과 특수 관계인이 대림코퍼레이션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며 이미 경영권 승계를 완료했다. 이 회장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52%를 보유 중이다. 하지만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대림산업은 대림코퍼레이션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 보유 지분이 23.1%에 불과하다. 이 회장의 재선임을 두고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결과를 알 수 없는 표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다.

3월 25일 주주 총회를 앞두고 있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현재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각각 17.09%, 12.7% 보유하고 있어 이해 상충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월 27일 주주 총회가 열리는 셀트리온은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의 재선임과 관련해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던 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주총 시즌을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표 대결’은 한진칼이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전 회장의 사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영권 분쟁이 달아오르면서 ‘남매 전쟁’이 한창이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3월 27일 주주 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을 다루게 된다. 조 회장의 임기는 3월 23일 만료될 예정이다. 조 회장의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반도건설과 손잡고 이른바 ‘반(反)조원태 3자 연합’을 구축하며 현 경영 체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현재 3자 연합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진칼 지분은 31.98%로 조 회장 측의 우호 지분 33.45%와 비교해 불과 1.47%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주 적은 표차로도 승부가 갈릴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양측 모두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 회장 측의 ‘백기사’로 꼽히는 델타항공이 최근 지속적으로 한진칼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 있고 3자 연합 측도 잇달아 주식을 매입하며 지분율을 높여 가고 있어 경영권 분쟁의 결말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관전 포인트 5-입김 세진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이 격렬해 지는 가운데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국민연금’이다. 한진그룹만 보더라도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남매 전쟁’의 승자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진칼 주주 총회에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2.9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 회장 측과 조 전 부사장 측의 지분율 차이(1.47%)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주 총회에서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조양호 전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당시 조 전 회장은 지분율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반대로 인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국민연금은 이와 함께 지난해 한진칼에 대해서도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뒤 주주 총회 안건으로 ‘이사가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안건을 올리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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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막강한 영향력은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한국 증시에서만 122조원 정도를 굴리고 있는데 이 중 66조원 정도를 직접 운용한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 국민연금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국내 기업은 총 313곳에 달한다. 삼성전(10.69%)를 비롯해 현대차(10.46%)·SK(7.45%)·LG(7.64%)·CJ(8.48%)·한화(9.29%) 등 대기업들의 지분도 상당수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은 2월 7일 이들 중 56개사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하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예고하고 나섰다. 단독 주주권만 행사하는 ‘단순 투자’와 비교해 ‘일반 투자’는 경영권 영향의 목적은 없지만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조치는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5% 룰 완화 방안’이 지난 2월부터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5% 룰은 투자자가 특정 기업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면 보유 현황과 목적 등을 자세히 보고하도록 한 제도다.

국민연금이 ‘일반 투자’로 변경한 56개 기업은 대부분 시가 총액 상위 기업에 분포돼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현대차·LG화학·셀트리온 등이 모두 포함됐다. 시총 상위 30개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이 ‘일반 투자’로 돌리지 않은 상장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한국전력뿐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번 주주 총회에서 이들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김이 상당히 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은 “기업들로서는 국민연금의 투자 목적 변경 대상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부담이 클 것”이라며 “주총에 올라온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는 비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국민연금의 ‘2019년 11월 말 국민연금 기금 운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총 750회의 주주 총회에 참석해 622건(19.1%)에 반대 의견을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반대 비율은 2016년까지 10% 수준을 유지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2018년 이후 급격히 늘어 지난해 두 배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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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이후 입김이 세진 곳이 또 있다. 다름 아닌 기관투자가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의결권 자문사들이다. 의결권 자문사는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한 뒤 기관투자가에게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민간 회사를 말한다. 이들의 권고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의 표심이 쏠릴 수 있는 만큼 주주 총회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업지배구조원·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대신지배구조연구소·서스틴베스트와 외국계인 ISS·글래스루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의견권 자문사들은 올해도 주총 시즌을 맞아 600여 건에 달하는 상장사 의결권 자문 보고서 작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