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국책은행 1조원 긴급 자금 수혈…탈원전·탈석탄 흐름 속 구조 변화 실패가 치명타
두산중공업은 어떻게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됐나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두산그룹의 ‘허리’ 역할을 하는 두산중공업이 세계 발전 시장 침체와 탈원전·탈석탄 흐름 속에서 유례없는 경영 위기에 봉착했다. 그동안 두산중공업은 계열사의 부실을 막아주는 ‘재무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두산중공업은 경영난을 겪는 두산건설에 유상증자·현물출자·상환전환우선주 정산을 통해 총 1조7000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말 상장 폐지된 두산건설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했다.

◆ 두산건설 지원하며 재무 여력 떨어져

두산건설의 그룹 내 지위는 각별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005년부터 그룹 회장에 오른 2016년까지 근무한 회사로 평소 애착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은 지주사 회장을 맡은 이후에도 두산건설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두산건설은 일산 위브더제니스 미분양 사태와 1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으로 기업 부실이 시작됐다. 지배 구조상 중간 지주사 격이자 사업 수익이 좋던 두산중공업이 이에 대한 지원을 도맡았다.

2007년 인수한 두산밥캣도 두산중공업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켰다. 물론 지금은 두산밥캣이 두산그룹의 캐시카우가 됐지만 인수 당시에는 인수 금액 4조5000억원의 80%를 차입금으로 한 방식 때문에 두산중공업이 재무 리스크를 안기도 했다.

문제는 두산중공업이 처한 현재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계열사 지원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를 하지 못한 두산중공업은 세계 에너지 정책이 변화되자 치명타를 맞았다. 먼저 주력 사업인 원자력 발전 등에서 수주가 급감하면서 대차대조표가 악화됐다. 2016년 3조원대 수준이었던 차입금은 2019년 말 7조4143억원으로 불었다. 올해 부채비율은 지난해 247.9%에서 275.4%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이 악화되면서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11일 휴업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두산중공업의 일부 휴업 검토 소식에 이날 주가는 2004년 2월 20일 3357원에 거래된 이후 16년 내 최저가 수준인 3500원대를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의 실적 악화는 지주회사 (주)두산 등을 포함해 그룹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두산중공업의 최대 주주는 44.85%의 지분을 보유한 그룹 지주사 (주)두산이다. 두산중공업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지주사인 두산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두산중공업은 어떻게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됐나
심원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중공업은 그룹 내 사실상 중간 지주사인데 탈원전 정책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당분간 실적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의 이익이 두산중공업에 귀속되지만 두산중공업 자체의 재무 부담 때문에 자금이 두산으로 흘러가지 못한다는 점이 두산 지배 구조의 약점”이라고 분석했다.

두산중공업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신용 평가사들은 두산중공업의 신용 등급을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별도 기준 차입금은 4조9000억원, 사업 자회사들을 포함한 조정 연결 기준 차입금은 5조9000억원이다. 이는 약화한 수익 창출력 대비 별도 기준 14.5배, 조정 연결 기준 12.2배에 달하는 과중한 규모라는 분석이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6000억원 규모의 외화 채권 만기가 4월 말과 5월 초로 예정돼 있었다. 여기에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 사채(BW)도 대부분 투자자가 풋옵션을 행사할 예정이어서 최소 1조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했다.

급기야 정부가 두산중공업 살리기에 나섰다. 3월 26일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는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국책 은행 지원으로 두산중공업은 당장 급한 불은 끄게 됐다. 대출 금액은 두 은행이 각각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산은과 수은이 두산중공업에 한도 여신(크레디트 라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산중공업 대주주인 (주)두산은 두산중공업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다. 두산중공업은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주)두산에서 두산메카텍 주식을 현물 출자 받아 자본을 확충하고 고정비 절감을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받는 등 자구 노력을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돼 은행 대출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유동성 확보 계획에 대해 “올해 상반기 중동·동남아 등 해외에서 2조원 이상의 신규 수주가 예상되며 이를 포함한 기존 수주 건에 대한 매출 발생 등 꾸준한 현금 유입도 있을 것”이라며 “단기 차입금 약 4조원 가운데 3조원 정도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거래하던 국내외 은행과 맺은 차입 건으로, 대부분 롤 오버(만기 상환 연장)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어떻게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됐나

◆ 풍력·가스터빈 등 신사업 찾기 골몰


두산중공업의 위기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그 원인을 탈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의 정책으로 분석한다. 반면 두산중공업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멜리사 브라운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아시아 담당이사는 국내 언론 기고를 통해 “두산중공업이 매출 하락이 시작된 2013년 이후 단 한 번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지 못하며 적자와 주가 하락에 허덕인 이유는 사실상 새로운 시장의 변화 흐름을 읽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석탄과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함께 신사업 발굴 실패에서도 원인을 찾고 있다. 브라운 이사는 “신사업 발굴에 실패해 인도네시아 JAWA 9, 10호기 석탄 화력발전소를 포함해 여전히 정부 보조금에 기반한 연구·개발(R&D), 수출 금융 지원에 기댄 해외 프로젝트 등 정책 금융에 의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두산중공업이 국내 화력·원자력 사업에 치중해 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국내 사업은 두산중공업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구조가 아니고 정부가 수립하는 전력 수급 계획에 발맞춰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글로벌 발전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최근 풍력·가스터빈·수소 등 신기술·신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2006년 사업에 진출한 풍력 사업 부문은 높은 성장성을 보고 그동안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기업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수익성 문제로 사업을 포기한 사업이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꾸준한 고용과 투자를 이어 가며 세계적인 풍력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국내 최초 해상 풍력인 탐라해상풍력 발전기와 건설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 두산중공업은 2013년부터 독자 개발을 추진해 세계 다섯째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개발했다. 그간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개발에 약 1조원을 투자해 왔다. 실증 과정을 거처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은 2023년 이후로 예상된다. 실증 플랜트, 기존 발전소 유지·보수 사업 분야에서도 일정 부분 매출 성과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수소 경제에도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발맞춰 창원시와 국내 첫 수소 액화 및 저장 장치를 개발하는 실증 사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수소 관련 사업에 나서고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