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사람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항해하는 배… 공간 활용성·성능 안전성 높고 경제성도 갖춰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하는 기계의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글로벌 물류의 중추인 해운을 담당하는 선박의 무인화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래 해상운송의 주역 될 자율운항선박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운송 수단이 개발되고 있다. 지상에 자율주행차가 있고 공중에 무인 항공기가 있다면 해상에는 무인 선박이 있다. 무인 선박은 파도 높이, 조수 간만의 차이, 태풍과 같은 기상 환경과 주변 선박의 위치와 운항 정보, 이동 상황 등을 감지해 스스로 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하는 배를 일컫는다.

무인 선박의 명칭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다. 수중이 아닌 수상에서 활동한다는 점에 주목해 무인 수상함(USV : Unmanned Surface Vehicle)이라고 불린다. 또 스스로 알아서 움직일 만큼 똑똑하다고 해서 스마트 선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단기적 개발 목표인 인간의 원격 조종을 받는 무인 선박에 한해 원격 제어 선박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상 교통에 관련된 국제적 표준 규범을 수립하는 국제해사기구(IMO)는 인간과의 상호작용 없이 다양한 자동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을 통틀어 자율 운항 선박(MASS :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s)이라고 규정했다. 이 밖에 국제적 선급 기관인 프랑스선급(IBV), 영국선급(LR), 노르웨이 자율운항선박포럼(HFAS) 등도 자신들의 관점에 맞춰 무인 선박의 개념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IMO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발표한 다양한 개념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인 선박의 특징은 자율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이다. 무인 선박도 드론이나 자율주행차처럼 자율화의 수준에 따라 약 4~5개 등급으로 나눠 분류한다. IMO의 자율화 등급을 예로 들면 가장 낮은 1등급은 일부 자동화돼 있을 뿐 인간 선원의 판단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가장 높은 4등급의 자율 운항 선박은 특별한 경우에만 인간 선원이 개입할 뿐 항해의 거의 모든 과정은 선박 스스로 경로를 만들고 운항할 수 있다.

단 자동화된 선박은 자율 운항 선박과 다르다. 자동화된 선박은 인간이 사전에 정해준 규칙과 방향에 맞춰 움직일 뿐 현재의 위치가 정확한지 아닌지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기상 조건이나 근처에서 항해 중인 선박의 이동 상황 등 주변 환경의 변화나 돌발 상황에 대처해 능동적으로 경로를 재설정하지도 못한다. 인간 선원이 항상 모니터링하고 경로를 재설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자율 운항 선박의 다양한 용도
이처럼 자율 운항 능력을 갖춘 선박은 자동화된 선박이나 일반 선박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장점이 많다.

첫째, 선박의 공간 활용성이 향상된다. 인간 탑승자가 적거나 아예 타지 않으므로 선원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침실·주방·휴게실·화장실 등의 주거 공간과 선원이 선박을 조종하는 선교 등 인간을 위한 공간을 줄이고 짐이나 연료를 더 실을 수 있게 된다.

둘째, 선박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 탑승자의 안전과 편안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므로 선박의 디자인이나 구조 등을 항해에 최적화된 형태로 설계할 수 있으므로 운항 속도 향상이나 연료 절감 등 선박의 전반적인 성능을 높일 여지가 많아진다.

셋째, 인간의 안전성도 개선된다. 인간이 배에 탑승하지 않으면 인명과 직결된 안전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진다. 또 위험한 해역에서 해적과 마주치더라도 인질 발생 가능성이 없어 인명 피해의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그래서 자율 운항 선박은 기존 선박처럼 사람과 화물을 수송하는 여객선·화물선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처럼 식사하거나 쉴 필요가 없어 조업 감시, 어군 탐지, 해양 조사, 오염 방제, 해양 청소, 해난 구조 등 장시간 해상에 머물러야 하는 임무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 선박을 자율 운항 선박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자율 운항과 관련된 기술들이 필요하다. 주요 기술들 중 일부는 자율주행차의 기술들과 유사하다. 자율주행차처럼 자율 운항 선박에도 카메라와 레이더 등 다중 센서를 이용해 주변의 다른 배나 암초 등 각종 장애물을 감지하고 파도·풍향 등 기상 여건을 탐지해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 자율주행차가 도로 정체 상황에 따라 경로를 재설정하듯 상황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항로를 재설정하는 자율 제어 기술도 있다.

물론 자율 운항 선박에만 적용되는 기술들도 있다. 위치 파악, 항로 설정 등과 관련된 해상 항법 장비나 선박 전용의 해상 위성 통신 시스템 기술, 육지보다 훨씬 광활한 해상에서 항해 중인 선박과 항구·정박지 간에 항로 관련 정보나 안전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데이터 통신 기술, 선박을 원격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원격 관제 기술 등은 모두 선박에만 적용되는 기술이다.
공해 등 일부 광활한 해역만 생각하면 해상이 도로보다 훨씬 넓고 장애물도 적으므로 자율 운항 선박 개발이 자율주행차 개발보다 더 쉽다고 보기는 힘들다. 많은 선박들이 오가는 특정 항로나 항구 내외의 공간은 도로보다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해상에는 도로의 차로처럼 공간을 구분하는 표지도 없다. 실제로 선박 충돌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2017년에는 한국 동해, 일본 근해, 싱가포르 근해 등에서 최첨단 레이더와 통신 기술을 갖추고 전문 인력들이 승선한 미국의 첨단 이지스 구축함과 어선·유조선·컨테이너선 등 민간 선박이 충돌하는 사고가 3건이나 발생하기도 했다.

자율 운항 선박의 개발과 상용화는 경제성보다 임무 수행 능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방산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 해군이 기뢰 제거 작업에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도입된 이후 지금은 미국·영국·프랑스·노르웨이·중국·터키 등 다수의 국가들이 기뢰 제거, 사격 연습용, 정찰용 등으로 소형 자율 운항 선박을 사용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대형 자율운항선박 상용화 계획
민간 분야에서는 대형 자율 운항 선박의 실증 시험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2017년 글로벌 엔진 제조 업체인 롤스로이스가 발표해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던 대형 자율 운항 선박의 개발 로드맵은 2018년 롤스로이스의 해양 사업을 인수한 노르웨이의 콩스버그 그루펜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콩스버그는 세계적인 비료 기업 야라 인터내셔널과 함께 2035년까지 최고 수준의 자율성을 갖춘 대형 자율 운항 선박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스웨덴의 ABB, 핀란드의 조선 해양 업체 바르질라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머스크, 일본의 NYK 등 해운사도 자율 운항 플랫폼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2019년 NYK는 열흘간 중국 광둥성 신사, 일본 나고야, 요코하마 연안에서 약 8만 톤급의 자동차 운반선이 스스로 최적 항로를 설정하고 경제속도에 맞춰 항해하는 실증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형 자율 운항 선박 개발 프로젝트 중 가장 주목 받는 것은 비료 운반선 야라 버크랜드다. 길이 80m, 120TEU급의 컨테이너선인 야라 버크랜드는 콩스버그의 자율 운항 기술, 조선사 바드의 건조 능력, 비료 기업 야라의 발주와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이 결합된 공동 프로젝트다. 2020년 완성 예정인 야라 버크랜드는 2022년께 진수될 예정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