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스타일·피스테크랩·락서스 등 서비스 대인기…대기업도 관련 플랫폼 M&A 개시 [도쿄(일본)=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축소 경제는 소비 스타일에 투영된다. 일례로 극단적 소유 욕구를 내려놓으려는 달라진 가치관이 소비 현장에서 목격된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지려는 양적 팽창의 소유 관념이 줄어든다. 앞날이 불확실해지자 현재는 인내하며 미래 행복을 치환하는 구조가 흔들린 셈이다.
이에 따라 당장의 행복 실현은 달라진 소비 지점을 창출한다. 사지 않고 빌리는 ‘소유→사용’으로의 소비 변화가 그렇다. 풍족한 시대답게 내구재도 교체 수요에 한정된다. 필수품이더라도 사용 빈도가 낮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특히 손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며 가볍고 즐겁게 살아가려는 디지털 세대에겐 소유가 전제된 경제 논리 자체가 희박하다. 사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사기가 힘든 저임금의 현실적인 장벽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소유를 기반으로 한 ‘매스 소비’는 종식된다. 그 대신 ‘공유 경제’가 뜬다. ‘고성장→저성장’ 경제 구조의 선행 국가인 일본에선 공유 소비가 갈수록 확대된다. 새로운 공유 대상과 달라진 공유 방식이 유력한 사업 모델로 부각된다.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이라는 폐색 경제를 풀어낼 디딤돌로 공유 경제를 지목했다. 공유 경제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유휴 자산의 재활용이 새로운 기회를 낳고 지역의 부활은 물론 일본만의 모델로 만들어 해외 수출까지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단기간에 방대한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어 고무적이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확장성도 좋다. 공간·이동·물건·사람·돈 등을 플랫폼에 모아 대차(빌려주거나 빌림)를 넘어 매매·교환할 수도 있다.
◆편의점 산업과 규모 비슷해진 일본 공유 경제
공유 경제는 성장세가 뚜렷하다. 2018년 시장 규모는 1조8874억 엔까지 불어났다. 제도가 뒷받침해 주면 2030년 11조1275억 엔까지 추정된다. 이 정도면 편의점과 맞먹는다. 일본공유경제협회의 지난해 자료를 보면 범주별로는 애플리케이션(앱)과 렌털을 통한 물건 공유가 5201억 엔으로 제일 많다. 민박·주차장 등 공간 공유도 5039억 엔으로 비슷하다. 크라우드 펀딩처럼 금전 공유는 4587억 엔, 자동차 등 이동 공유도 1935억 엔까지 커졌다. 가사·육아 등 숙련 기술 공유 시장도 2111억 엔에 달한다.
기존 산업과 이해 조정이 불가피한 법률 개정 등 제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커진 결과다. 보수적 추정치로도 2015년 398억 엔에서 2018년 752억 엔, 2021년 1071억 엔까지 확대된다. 계산에서 빠진 연관된 파급 효과까지 넣으면 규모는 더 크다. 풍족함이 넘쳐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다운 대안 모델이다.
요즘 일본에선 ‘아리스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공유 서비스가 화제다. 스마트폰 앱인데 개인·기업 간 물건을 빌려주고 빌리는 플랫폼으로 유명하다. 1월엔 관광지 레저 용품 대여 서비스를 새롭게 추가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짐 없는 여행의 실현이다. 그 덕분에 2018년 사업을 시작한 이 신생 벤처 회사는 2021년 5월까지 1억5000만 엔의 매출을 기대한다. 물건 공유로 평등한 체험을 이뤄 준다는 사업 모델이 먹혀든 덕분이다.
매일 쓰지 않는데 공간을 잡아먹거나 샀는데 잘 안 쓰는 물건을 사지 않고 써 보거나 갖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연결해 주는 구조다. 소유자는 추가 소득을, 임차인은 최소 비용과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고객도 많다. 렌털 예약, 의견 교환, 발송 연결 등 모두 앱에서 완결된다. 렌털 기간에 발생할 사고 등 트러블을 막을 보상 제도는 물론 배송 전용 포장 박스까지 완비했다.
피스테크랩(Peaceteclab)은 미용 기기와 주방 가전 등 도합 4000개의 아이템을 공유·중개해 준다. 회사가 소유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 소유다. 여성 물품으로 시작해 여성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키친·뷰티, 오디오비디오(AV)·정보기술(IT), 피트니스, 홈, 취미, 아기·유아 용품 등 6대 품목을 취급한다. 앱 다운로드 수는 18만 건이 훌쩍 넘는다.
공유 구조는 단순하다. 출품자가 맡긴 아이템을 이용자가 클릭 후 발송한다. 사용한 이후엔 다시 익명 배송으로 완결된다. 출품·배송까지 대행해 주면(대행 위탁형) 수수료가 50%까지 늘어난다. 요금 설정은 출품자가 하되 거래 성사액의 15%는 회사 몫(수수료)이다. 출품 물건의 40%는 기업이다. 시범 사용을 통해 잠재 고객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엔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파나소닉은 2019년 신제품인 고급 미용 가전을 1주일간 무료로 렌털하는 캠페인을 앱에 출품해 성황을 이뤘다. ◆기업 간 ‘공유 협업’ 통해 새 고객 확보 나서다
단순한 저비용 마케팅을 넘어 기업과는 다양한 공유 협업이 펼쳐진다. 소유욕이 감소한 고객들을 선점해 둔 덕분이다. 가령 부동산 회사와 협업해 주민 전용 렌털 서비스를 2019년 12월부터 개시했다. 물건 배송에 따르는 비용 절감이 목적이다. 대규모 아파트와 일괄 계약 후 단지 내부에 전용 로커를 만들어 보관·전달하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특정 단지와 지역 주민끼리 임대·임차하는 커뮤니티 서비스까지 고려한다. 임대료에 공유 서비스 이용료를 넣어 매월 정액의 렌털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물건을 갖지 않고도 필요할 때 쓰는 무소유 라이프스타일의 실현인 셈이다. 필요품을 최저화하는 가벼운 생활을 지향한다면 안성맞춤이다. 필요할 때만 쓰는 저비용·편리성의 부가 가치에의 공감이다.
공유 서비스로 입소문이 난 또 다른 키워드는 명품 브랜드 가방 공유다. 명품 소비가 잦은 일본다운 인기 트렌드다. 선두 주자는 락서스(Laxus)다. 57가지 브랜드의 총액 500만 엔이 넘는 고가 가방을 1개월간 6800엔에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총 3만 가지의 명품 가방 중 선호하는 것을 빌릴 수 있다. 질리면 언제든 무제한 교환된다. 1회까지는 무료, 2회부터는 수수료 1000엔을 내야 한다.
40일간 무료 시착 서비스도 있다. 세탁·보증은 기본이다. 대여 품목 중 3분의 1은 회사 소유가 아닌 고객 물건이다. 본인 소유의 명품 브랜드를 다른 회원이 빌리면 대략 월 2000엔의 별도 수입이 생긴다. 10만 엔짜리라면 1년만 빌려줘도 2만4000엔이 발생한다. 연율 24%짜리 고금리 상품과 같다.
회사는 급성장했다. 71명의 직원이 2019년 연매출 15억 엔을 창출해 냈다. 인기 품목은 대기 고객만 100여 명에 달한다. 투자 목적으로 인기 브랜드를 대량으로 사 빌려주는 회원도 생겨난다. 회사에 따르면 한 해 371만 엔까지 벌어간 회원도 있다. 회원은 2019년 기준으로 2만 명을 웃돈다.
2019년 10월엔 거대 패션 통판 회사 ‘월드’가 락서스의 62.5% 지분(43억4200만 엔)을 취득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공유 모델로 친환경 산업의 중핵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100억 엔의 성장 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월드가 보유한 600만 회원을 활용해 2022년 80억 엔, 2024년 150억 엔의 매출 목표를 제시했다.
독자적으로 입수해 축적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급성장의 비결이다. 가령 특정 가방의 대여 건수와 기간은 물론 선호 고객까지 분석해 빅데이터화함으로써 적재적소의 사업 진행이 가능해진다. 사전에 허용해 준 고객의 위치 정보까지 더해지면 막강한 사업 기반으로 기능한다. 행동반경이 넓으면 구찌를 좋아하고 백화점보다 쇼핑몰에 익숙하면 루이비통이 먹혀든다는 식의 설득이 수월해져서다.
당연히 고객별 맞춤 제안은 정밀·고도화하고 그만큼 만족도는 높아진다. 회원에게 최적의 물품을 제안하니 지속 사용률이 95%가 넘는다. 현재까지 40만 건 이상의 대여·행동 이력이 축적된 상태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기회를 얻는 법이다. 빌려줄 고가 물품의 라인업을 완비해 두는 것은 어지간한 자본 능력 없이는 힘들다. 회사는 재고로 남아 폐기될 명품 브랜드에 주목했다. 브랜드 측에 연락해 유효 활용의 가능성을 설득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때 힘을 발휘한 것이 독자 축적의 빅데이터다. 대여 서비스를 경험한 자사 회원 중 41%가 점포를 방문해 구매했고 90%는 브랜드에 흥미를 갖는다는 통계가 먹혀들었다.
직접 사용해 본 후 잠재 고객이 구매 고객으로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브랜드도 우호적이다. 고객 이탈과 재고 처분 등으로 골치 아픈 브랜드는 공유 서비스와의 협업이 돌파구일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으로 공유 무대에서 데뷔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도 유리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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