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우리은행 본점 등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8월 27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 박스를 들고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우리은행 본점 등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8월 27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 박스를 들고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회사가 사실상 멈췄어요. 뒤숭숭한 분위기에 다들 눈치보기 바빠요.”
“본사에 큰일이 터지니 (자회사) 실적이 좋아도 홍보하기 꺼려져요.”

우리금융지주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8월 금융감독원이 공식적으로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안을 제기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이 기간 손 전 회장의 처남을 비롯해 부당대출 사태에 관련된 우리은행 전직 직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손 전 회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지만 구속은 피했다.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지주를 이끌고 있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처지가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면서 압박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현 경영진의 리더십이 위기에 빠지며 종합금융그룹을 향해 달리던 우리금융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이 정기검사 기간 연장 등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우리금융의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 절차가 사실상 중단됐다. 인수하지 못하면 계약금만 날리게 된다. 10년 만에 재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은 투자매매업 본인가 신청이 미뤄지면서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4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부당대출 사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우리금융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벌금형 200만원인데…” 회장실 압수수색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법인과 개인사업자 차주에게 내준 616억원 중 350억원이 특혜성 부당대출이라고 판단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통보한 내용 이외 100억원대 부당대출을 추가로 포착했다. 현재까지 부당대출로 의심되는 액수는 총 450억원이다.

검찰은 올해 8월과 10월 손 전 회장 자택을 비롯해 우리은행 본점과 전현직 관계자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11월에는 우리금융지주를 압수수색 대상에 추가했다. 특히 임 회장의 집무실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했다.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12조다. 12조는 ‘금융회사의 장은 회사 임직원이 직무에 관해 이 법에 규정된 죄를 알았을 때는 지체 없이 수사기관에 알려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어기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벌금형을 위해 회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임 회장의 거취 표명을 압박하는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임 회장은 아직 참고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안정된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 의지를 피력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 조병규 행장은 결국 11월 26일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자회사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은행장 후보 1차 후보군(롱리스트)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후임 은행장을 선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 행장은 부당대출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으나 최근 부당대출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12조 위반 혐의)되면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연임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임 회장과 조 행장이 부당대출 보고를 받은 시점이 올해 3월이며 내부 확인을 이유로 4~5개월가량 금감원 보고를 미뤄왔다. 금감원은 올해 5월 제보를 받고 우리은행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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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ABL’ 인수 올스톱?
우리금융과 관련해 금감원이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 경영진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으며 검찰 수사에 필요한 자료도 신속하게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도 보였다.

압박 수위도 높이고 있다. 금감원은 올해 6월부터 부당대출 관련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 대한 수시검사에 돌입했다. 지난 10월 정기검사로 전환하면서 6개월째 상시검사를 진행 중이다. 정기검사는 내년으로 예정돼 있었다. 이례적으로 1년을 앞당긴 것으로 전례 없는 조치다. 최근에는 이 기간을 일주일씩 총 2번 연장했다. “자본비율과 자산건전성 등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뒷정리를 하는 데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삼엄한 감시에 보험사 인수 작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우리금융은 올해 8월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동양·ABL생명의 패키지 인수 계약을 맺었다. 금융당국의 자회사 편입승인 심사를 거쳐 올해 안에 인수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금감원의 정기검사로 편입 인가 신청서 제출이 미뤄졌다. 우리금융이 자회사 편입을 신청하면 금감원이 심사를 하고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인가 여부를 검토·승인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이번 정기검사에서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 이하로 나오면 자회사 편입 승인을 받기 어려워진다. 다만 지금까지 금융지주가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 이하로 떨어진 사례는 없었다.

문제는 우리금융이 편입 신청을 해도 당국의 심사가 미뤄져 내년 8월까지 인수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면 인수 가격(1조5500억원)의 10%에 해당하는 1550억원의 계약금을 날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수계약서에 12개월(9개월+3개월) 안에 인수를 완료하기로 한 단서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 원장은 올해 9월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와 관련해 “(인수 과정에)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소통하면 좋았겠지만 그런 소통 노력이 없었다”며 “이런 리스크가 있어서 (정기검사) 3년이 되는 시점보다 먼저 평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기검사를 앞당긴 이유가 사실상 보험사 인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우리투자증권 난항
올해 8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으로 10년 만에 재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은 투자매매업 본인가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 증권사 투자매매업 인가의 경우 해당 증권사의 자격요건뿐 아니라 대주주 적격성도 심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당국의 조사가 부담이란 얘기다. 투자매매업 승인이 없으면 투자은행(IB)과 기업공개(IPO)와 같은 업무를 할 수 없다. 우리투자증권의 3분기 순이익은 60억원, 누적 순이익은 90억원에 그쳤다. 우리종금 때와 비교하면 누적 순이익이 50%나 감소했다.

업계에선 정기검사 결과에 따라 제재 조치가 나오게 되면 우리은행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의 인터넷은행 인가에도 불똥이 튈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제재가 곧바로 결격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를 더욱 엄격하게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리딩뱅크 외쳤지만 꼴찌
우리금융은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2조6591억원을 거뒀다. 내부적으로는 양호한 실적이지만 타사와 비교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금융그룹 실적은 KB금융 4조3953억원, 신한금융 3조9856억원, 하나금융 3조2254억원 순으로 2조원대인 우리금융을 큰 폭으로 웃돌고 있다.

상반기만 해도 3위인 하나금융과 2813억원 정도 차이가 났다면 3분기 들어선 5663억원으로 차이가 벌어졌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2%대 밑으로 내려왔다. 전분기 대비 0.08%포인트 하락한 11.96%를 기록했다. KB·신한·하나·우리·농협금융 등 5대 금융 중에서 우리금융만 CET1 비율이 13% 아래다. 범위를 넓혀 전국 8개 은행지주(DGB·BNK·JB 포함)와 비교해도 CET 비율이 12% 밑돈 곳은 DGB지주(11.77%)와 우리금융뿐이다.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위해서는 CET1 비율이 13%를 초과해야 한다. 지표가 악화되면서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 우리금융은 밸류업 정책(기업가치 제고)의 일환으로 올해 말까지 CET1을 12.2%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CET1 하락은 우리금융이 보험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이 자본 적정성 관리가 미흡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관치의 그림자
임 회장은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지금은 조직의 안정 그리고 내부 통제 강화에 집중할 때”라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면서 자회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임 회장의 사과와 쇄신안 발표 등으로 거취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였으나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흐름이 전환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손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 사태에 대해 “엄중한 인식하에 필요한 조치가 있을 경우 엄정하게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검찰과 금감원에 이어 금융당국 수장까지 우리금융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셈이다.

일각에선 이번 부당대출 문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배경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누군가의 제보로 갑자기, 느닷없이 터졌다는 것이다.

무형의 압박에 이사회에서 선임된 지주회장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재의 지배구조로는 관치의 파워를 막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