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뷰티 시장은 결코 공략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은 데 비해 시장 규모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CJ올리브영으로 대표되는 헬스&뷰티(H&B) 스토어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관광객 매출 증가를 기대하거나 추가 출점도 어렵게 됐다. 난관을 이겨낼 시코르와 세포라의 전략을 분석했다. ◆K뷰티 상품 vs 해외 유명 브랜드로 ‘맞대결’
국내에서 화장품 편집숍의 시동을 건 것은 신세계백화점의 ‘시코르(CHICOR)’다. 2016년 12월 대구점을 시작으로 3년 사이 전국 주요 지역에 매장을 늘려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홍대 인근에 매장을 열어 전국에 30개의 매장을 두게 됐다. 홍대 매장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20대 남성들의 셀프 바, 테마별로 바뀌는 브랜드 팝업존 등 2030세대를 겨냥했다. 지난해 오픈한 가로수길과 명동점은 글로벌 밀레니얼 세대의 ‘뷰티 쇼핑 데스티네이션(종착역)’으로 떠올랐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가 소유한 세포라가 지난해 10월 국내에 처음으로 매장을 오픈했다. 글로벌 화장품 편집숍의 원조라고 불리는 세포라는 유럽·미국·중국 등 34개국에 26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 진출한 중국을 비롯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호주·인도네시아·인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만 350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세포라는 한국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벤저민 뷔쇼 세포라 아시아 사장은 작년 10월 국내 첫 매장 오픈식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뷰티에 높은 이해도를 가진 고객 중심의 시장이기 때문에 세포라의 한국 시장 진출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세포라는 국내에서 1호점 파르나스몰을 시작으로 2호점 명동 롯데 영플라자, 3호점 신촌 현대 유플렉스, 4호점 잠실 롯데월드몰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까지 총 14개의 스토어를 운영할 계획이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 굴지의 유통 기업이 내놓은 화장품 편집숍의 맞대결은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시장 조사 기관 유러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화장품·생활용품 시장 규모는 14조8000억원으로 전 세계 9위 규모에 해당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이에 따라 시코르와 세포라는 ‘각자 잘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워 화장품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시코르의 강점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K뷰티 브랜드다. 파뮤클레이스·디어달리아·라곰·헉슬리 등 그동안 시코르는 K뷰티 브랜드를 발굴하고 오프라인에 소개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왔다. 시코르에 입점한 브랜드 중 50%를 K뷰티 브랜드로 채워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의도다.
K뷰티가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깨끗한 피부 표현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피부 화장법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시코르는 K뷰티 브랜드 중 4분의 1을 스킨케어 특화 제품으로 채움으로써 외국인들이 K뷰티에 바라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 시코르 관계자는 “한국에서 K뷰티 쇼핑을 하려면 반드시 시코르에 간다는 글로벌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인증 게시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체험형 매장’ 통해 써 보는 화장품 마련
세포라의 국내 진출은 직구를 해야 했던 다양한 해외 브랜드들을 직접 체험해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세포라는 지난해 10월 오픈식에서 해외 독점 브랜드, 국내 독점 브랜드, 니치 향수 컬렉션, 세포라 컬렉션을 포함한 100여 개의 브랜드 라인업을 공개했다.
타르트, 후다 뷰티, 아나스탸사 베벌리힐스, 조이바 등 직구로만 구매할 수 있었던 해외 브랜드 44개를 입점시켰다. 활명·어뮤즈·탬버린즈 등 국내 독점 브랜드 3개를 더해 47개의 브랜드를 세포라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또 국내 화장품 편집숍의 약점으로 여겨지는 향수 라인업도 강화했다. 메종 마르지엘라, 아틀리에 코롱, 로에베, 부쉐론, 반 클리프 아펠 등의 향수 라인을 유치했다.
양 사 모두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다양한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시코르는 체험과 공유 그리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시코르 사이클’을 구축했다. 시코르 명동점에서는 제품을 직접 써보고 소개할 수 있는 ‘유튜버·왕홍 방송존’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동영상을 촬영하기 좋도록 조명부터 테이블까지 준비해 인플루언서들이 손쉽게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다.
강남역점에는 SNS 인증 문화에 익숙한 고객들을 위해 물건을 파는 공간 대신 셀카를 찍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테스트할 수 있는 ‘메이크업 셀프바’와 ‘헤어 셀프바’도 시코르의 경쟁력이다. 소비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필요하면 전문 아티스트 30여 명에게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세포라 또한 체험을 강조했다. ‘체험형 뷰티 리테일러’를 표방하며 매장을 방문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세포라는 매장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피부 측정 기기를 통해 고객의 피부 상태를 진단하고 적절한 스킨케어 제품을 추천해 주는 ‘스킨 크레더블’ 서비스를 마련했다. 또 모든 입점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거친 ‘뷰티 어드바이저’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안하고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난 2월 21일 세포라가 오픈한 잠실 롯데월드몰 스토어에는 ‘온라인 익스클루시브 존’, 베니피트 브로우바, 스킨케어 싱크를 설치했다. 온라인 익스클루시브 존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날 수 없었던 온라인 단독 브랜드의 제품들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스킨케어 싱크 존에서는 세척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 테스트하기 어려웠던 마스크와 스크럽 제품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화장품 오프라인 채널의 강자는 ‘올리브영’?
‘뷰티 강국’ 한국에서 맞대결을 벌이게 된 시코르와 세포라는 또 하나의 라이벌을 두고 있다. 바로 국내 H&B 스토어의 대표 주자 ‘CJ올리브영’이다.
CJ올리브영의 매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250여 개다. 공격적 출점을 지속해 온 올리브영은 대형 화장품 편집숍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접근성을 갖추고 있다. 화장품 편집숍이 현재 홍대·명동·잠실 등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위주로 출점을 진행 중이라면 올리브영은 이미 생활 반경 깊숙이 침투했다. 이 때문에 ‘올세권(올리브영+역세권)’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여기에 H&B 스토어의 정기 할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화장품 편집숍이 제공하는 혜택에 만족할지도 관건이다. 스킨케어나 중저가형 화장품은 H&B 스토어의 할인 기간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화장품 편집숍의 주요 제품인 고가의 색조 화장품은 백화점이나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만약 백화점·온라인 구매와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기존 유통 채널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화장품 편집숍들이 끌어오기 쉽지 않다.
화장품 편집숍들은 정기 세일보다 브랜드별 세일이나 이슈별 할인 행사에 치중하고 있다. 시코르 관계자는 “브랜드별로 할인 행사를 시행하거나 시코르 멤버십을 통해 포인트를 쌓으면 사은품을 주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 중”이라고 말했다. 세포라는 화이트·블랙·골드로 나눠진 글로벌 멤버십 기준에 따라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해 연말 실시한 ‘홀리데이 세일’처럼 시기에 따라 할인 행사를 열기도 한다.
따라서 화장품 편집숍은 H&B 스토어와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승산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스킨케어는 H&B 스토어가 이미 강세를 띠므로 색조 메이크업 제품 입점에 공을 들이는 방식이다. 손성민 리치24에이치(REACH24H) 코리아 책임연구원은 “국내 H&B 스토어가 스킨케어에 특화돼 있지만 시코르는 색조 메이크업 위주의 제품을 구성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며 “신세계그룹의 오프라인 채널과 연계해 입점한 매장들의 위치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포라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세포라는 한국 입점 전에도 해외 직구 등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매장이 생긴 후 소비자들이 ‘차별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외 직구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오려면 한국 세포라 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군의 라인업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가 유통가를 덮치면서 화장품업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시코르와 세포라가 강점으로 내세웠던 체험형 서비스에도 제동이 걸렸다. 세포라는 15분 동안 전문가의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는 ‘메이크 오버 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했다. 당초 3월까지만 운영을 멈추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단 기한을 늘렸다. 시코르도 체험형 서비스에 사용되는 도구 세척 주기를 늘리고 테스터 상품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 중이다.
침체된 소비 심리로 인해 화장품 편집숍들의 추가 출점 상황도 ‘안갯속’이다. 세포라는 지난 2월 문을 연 잠실 롯데월드점이 상반기 마지막 출점 매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코르는 지난해 12월 홍대점을 끝으로 출점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시코르 관계자는 “올해 출점 계획은 예정돼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2호(2020.04.13 ~ 2020.04.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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