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질 반세계화 흐름·제로금리와 거대부채 시대 개막…사회·문화도 모두 달라진다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구촌 사람들을 질곡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4월 초까지 각국의 사망자가 10만 명에 육박하고 미국에서만 1만5000명을 넘었다.
하지만 그런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는 싹트고 있다. 미국 인구의 96%(4월 6일 기준)가 집에 머무르라는 ‘자택 대기’ 명령이 내려지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택근무와 원격 교육이 확산되고 전자 상거래가 뜨고 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용품과 운동 기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이런 거래는 대부분 인터넷 플랫폼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는 주요 지수가 20~30% 폭락한 가운데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 화상 회의 플랫폼인 줌 등은 주가가 오히려 올랐다.
이런 생활 습관의 변화는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가도 여파를 남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전 의장은 4월 7일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웨비나(웹+세미나)에서 “일시적 변화가 영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이런 종류의 불황은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와 경제의 많은 측면에서 ‘뉴 노멀(new normal)’이 형성될 것이란 얘기다.
최태원 SK 회장은 4월 8일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커다란 흐름과 변화를 읽지 못하면 생존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향후 사회적 조류가 될 변화 흐름을 잡기 위한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이를 정리한다.
①강해지는 반세계화 흐름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세계화 흐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때 출현한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인들의 심리마저 바꾸고 있다.
1986년 솅겐조약으로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유럽연합(EU)은 코로나19가 창궐하자 35년 만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독일 정부는 의료용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다. 독일은 그간 ‘국경 없는 경제’를 찬양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을 경계해 온 EU의 중심 국가다.
세계화의 첨병이던 글로벌 공급망도 붕괴되고 있다. 기업들은 공급망의 복잡성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뛰고 있다. 무역은 침체됐다. 정부는 공중 보건 문제를 내세워 무역·여행·이주를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이 안전을 앞세우면서 자본은 각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무역과 여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업·산업·국가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②제로 금리, 거대 부채 시대 도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규모 재정·통화 정책을 내놓았다.
미국도 제로 금리를 택했다. 게다가 위기 속에 가계는 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가계 부채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저축이 증가하면 낮은 금리는 지속될 수 있다.
그러면 채권은 투자 대안이 되기 어렵다. 초과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릴 수 있다. 현재로선 인플레이션 위험은 크지 않지만 인플레가 나타나면 커다란 경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③원격 교육과 재택근무 확산
코로나19의 여파로 각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원격 교육 시대가 열렸다. 온라인에선 학생들이 어떤 지역(학군)에 속해 있든 최고의 교사에게 얼마든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유용한 학습 도구도 많다.
이는 원격 인턴십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 직장에서도 원격 근무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1주일에 사흘 출근하고 이틀 재택근무하는 형태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퇴근 정체가 줄어들고 기차와 버스엔 빈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④각광받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오프라인 대인 만남보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와 원격 교육이 자리 잡으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들은 사용자와 사용 시간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⑤디지털 인프라 투자 확대
원격 교육과 재택근무 등의 확산은 클라우드·모바일·웹 등 인터넷·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은 사용량이 늘면서 화질을 일부러 낮춰야 할 판이다. 디지털 인프라를 클라우드 기반의 플랫폼으로 바꾸고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도입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선 국가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야 한다.
⑥생명공학 혁명 가속화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모두가 깨닫고 있다. 투자는 늘어날 것이고 더 많은 신약과 생명공학 기술이 연구될 것이다. 걸림돌로 작용했던 각국 의료 당국의 규제는 검사와 치료제 개발을 위해 완화되고 있다.
⑦원격 의료 본격 부상
기술과 규제 장벽 속에 갇혀 있던 원격 의료가 부상하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환자는 입원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래야 심각한 환자가 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다.
원격 의료를 받으려면 평소 모바일 헬스케어 기기 등을 통해 맥박·체온 등을 측정해 이를 정기적으로 병원에 보내게 된다. 이는 개인 정보 보호와 상충되면서 강한 규제를 받아 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다.
중국 등에선 코로나19 확진자의 활동 가능 여부를 알려주고 경찰과 확진자의 위치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써 코로나19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⑧중앙 정부 역할 확대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는 중앙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법이다. 각 지방 정부들이 서로 경쟁하며 마스크·인공호흡기 쟁탈전을 벌이도록 하면 안 된다. 코로나19가 국경을 넘어 전파되는지 감시하는 업무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중앙 정부 기관들의 몫이다. 지방 정부는 대규모 관련 연구 지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⑨MICE 산업이 바뀐다
기업 회의(Meeting), 포상 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 등 네 분야를 일컫는 MICE는 세계화 시대 성장의 상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각종 모터쇼와 정보기술(IT) 전시회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산업 생태계마저 무너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고 대인 만남은 온라인 공간에서 회의로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다. 사람들 간 물리적 장애를 해결해 줄 미팅 테크놀로지가 확산될 수 있다.
⑩대규모 관중 모이는 공연·예술·스포츠 변화 불가피
공연 예술과 스포츠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분야다. 세계 공연의 중심 뉴욕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모든 쇼가 한 달째 중단됐다. 한창 시즌 중이던 미국프로농구(NBA), 개막을 앞둔 메이저리그 야구 등도 취소됐다. 공연 예술이나 스포츠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관중이 한곳에 모여 감상하는 방식은 바뀔 수 있다.
⑪여행·음식 문화 변화
코로나19 이전 해외여행은 국내 여행처럼 쉬웠다. 국경은 거의 없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각국은 점점 공중 보건을 내세워 통행과 여행을 규제하고 있고 이런 조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크루즈·항공사 등은 승객에게 안전과 건강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운영 방식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내 중간 좌석은 비워 놓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레스토랑 등 음식료업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있다. 종전엔 음식을 나눠 먹자는 제의를 거절하면 무례한 행동으로 보였다. 이제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게 터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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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2호(2020.04.13 ~ 2020.04.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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