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19가 바꾼 세계, 빅 퀘스천5] -공급망 위기 대응, 어떻게
-문범석 딜로이트안진 리스크자문본부 파트너
-“가시성 높여야 위기 대응 가능...글로벌 기업, 공급망 지도 만들고 수시 업데이트”
“코로나발 공급망 위기...기업 단위 넘는 산업별 '오픈 공급망' 준비해야”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충격이 심상치 않다.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일부 기업에만 단기적인 공급망 차질을 일으킬 것이라던 초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멈추는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완전히 무너졌고 공포가 확산되면서 소비 심리도 급속도로 악화돼 가고 있다. 코로나19는 향후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각국의 역학 관계와 전 세계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딜로이트안진은 지난 3월 ‘COVID19의 산업별·지역별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 등 각각의 산업별 변화를 세밀하게 짚어내며 주목 받았다. 딜로이트안진에서 리스크자문본부의 BCM/위기관리 서비스를 맡고 있는 문범석 파트너와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새롭게 짜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많은 부분이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이고 그 변화는 앞으로 점점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먼저 변할 부분은 글로벌 공급망일 겁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글로벌 공급망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죠.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달라졌습니다. 언제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진 겁니다. 기존에는 인건비가 가장 싼 곳에서 제품을 제조하고 소비자가 많은 곳에서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앞으로는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로컬 공급망’으로 전환될 겁니다. 시장에서 판매할 물건은 시장 가까운 곳에서 제품 생산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공급망이 새롭게 짜일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글로벌 공급망은 어떤 상황인가요.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된 것을 넘어 ‘공급망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공급망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글로벌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 대응 체계’가 잘 구축돼 있는 우량 기업에는 경쟁력 있는 회사들을 인수·합병(M&A)하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겁니다. 이를 활용해 제품의 생산 라인을 보다 안정적으로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위기 또한 언젠가는 정상화될 겁니다. 현재 위기가 새롭게 재편되는 시장을 미리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산업별로 코로나19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까요.

“반도체 부문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슈가 크게 부각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면서 트래픽이 폭증하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는 특히 완성차와 부품 제조 업체 간의 상호 의존성이 매우 높은 산업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세계적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전 세계 자동차 생산에 큰 타격을 주고 있어요. 특히 자동차는 전 산업에 걸친 도미노식 침체로 이어질 수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유통·여행·숙박 등은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죠. 코로나19의 특징은 ‘사람 간 접촉’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위기와 가장 크게 차별화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유통을 처음 사용해 본 소비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온라인 유통의 강세는 지속될 겁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한다면 오프라인 유통 업체의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정치·경제적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칠까요.

“글로벌 기업에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공급처’를 발굴하는 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요소들이 부각될 겁니다. 국가 간 정치·경제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다른 국가들과의 역학 관계가 중요해질 겁니다. 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방역 시스템 또한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위기에 봉착하겠지만 반대로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재평가되는 국가들이 나타날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북한 문제로 인해 지정학적 위험이 예전보다 더 부각될 겁니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기술 경쟁력을 비롯해 새롭게 재편되는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공급망의 가시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질 겁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의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위기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선형 방식의 공급망’을 갖고 있었죠. 앞으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공급망을 갖춰야 합니다. 디지털 공급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공급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해질 겁니다.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별로 ‘오픈 공급망’이 갖춰질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기업별로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경쟁력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언제 또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니 하나의 체계 안에 다 같이 공급망과 관련한 정보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공급망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확보해 나가자는 거죠. 국내에서는 법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시간에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런 논의와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중입니다.”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공급망의 위기관리 체계가 잘 구축된 곳이 있나요.

“시스코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스코는 공급망 위기관리팀을 따로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이 팀의 주요 역할은 자신들의 공급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각의 지역에 대한 위기를 예측하며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이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시스코는 커다란 지도 위에 각각의 공급망을 색깔별로 표시해 두고 정보를 해마다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공급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가시성을 확보하는 것이죠. 위기를 예측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공급망이 뻗어 있는 각각의 지역마다 최첨단 기술과 방대한 정보를 수집해 예상되는 위기를 예측합니다. 실제로 중국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약 2개월 전에 지진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대응하기도 했어요. 동일본 대지진 때도 시스코는 지진 발생 30분 만에 위기 경고 시스템이 바로 작동하면서 매우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어떤가요. 공급망 위기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인가요.

“반도체와 자동차 등 국내의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기업은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는 최근 한·일 갈등을 겪으면서 공급망 측면에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상황이죠. 코로나19 같은 위기 대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제적 대응’입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부터 위기 대응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 부분에 관심이 부족하죠. 코로나19가 국내 기업에 큰 전환점이 될 겁니다.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된 겁니다. 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시간 싸움’입니다. 기업은 어떤 경우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늘 상정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미리 준비하고 훈련해 두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으로 부각될 겁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