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는 ‘화장품 부수는 ASMR(청각 중심으로 뇌를 자극하는 영상)’을 내놓고 방산 회사는 ‘K9 자주포 새벽 배송’을 영상으로 담았다. 유튜브가 플랫폼 시대 절대 강자로 떠오르며 기업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튜브 잡기에 나섰다. 빨간 버튼 안에서 모든 게 이뤄지는 지금, 유튜브 문법 파악에 성공한 기업들을 만났다.
◆'배운변태'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부수자 조회수 1400만
아모레퍼시픽의 유튜브 채널 ‘뷰티포인트’는 화장품 회사의 유튜브 공식을 완전히 파괴했다. 화장품을 광고하거나 써보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메이크업하는 법이나 스킨케어 과정 등 화장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비누로 컬링을 하고 아이섀도 10개를 한꺼번에 밀대로 밀어버린다. 거품을 얼렸다가 꺼내 사박사박 소리를 내고 화장품으로 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뷰티포인트 채널의 핵심은 화장품을 창의적으로 망가뜨리는 ‘ASMR’ 영상이다. 또 이를 뮤직비디오급의 고화질 영상으로 담아낸다. 화장품을 부수면서도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화장품이 망가지는 다양한 소리와 질감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대신 아모레퍼시픽에 얼마나 다양한 질감과 다양한 색상의 화장품이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단 7개뿐이지만 총 조회 수는 1400만 회를 넘는다. ‘짧은 영상이 통한다’는 유튜브 공식을 깨고 1시간이 넘는 영상 역시 조회 수 186만 회를 기록했다. 뷰티포인트 채널 영상을 모방하며 재생산된 일반 크리에이터들 영상 역시 327만 회, 217만 회 등 폭발적인 조회 수를 보여준다.
아모레퍼시픽의 뷰티포인트 채널은 ‘배운변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배운변태는 보통 자기 업에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함을 추구하고 남다른 감각으로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봉준호 감독, 방탄소년단(BTS)을 탄생시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배운변태 별명을 획득한 대표 주자다.
뷰티포인트 채널이 배운변태 소리를 듣는 이유는 영상의 퀄리티와 콘텐츠 소재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영상에서는 화장품을 막무가내로 망가뜨리지 않는다. 창의적이고 감각적으로 화장품을 가지고 논다.
어떤 제품을 어떻게 망가뜨려야 시청각적으로 쾌감을 자극할 수 있을지 고민한 티가 난다. 화장품 분야의 다른 콘텐츠들과는 크게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다.
뷰티포인트 채널을 운영하는 주인공은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업 동력을 발굴하는 ‘아모레퍼시픽 NGI 디비전 린 스타트업 8 TF팀(이하 린 스타트업 8팀)’이다. 이 팀은 조직 내에서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디지털 콘텐츠 전담 팀이다.
채널에서 화장품 부수는 ASMR 시리즈는 '힐링타임즈'라는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다. 힐링타임즈 시리즈는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지 않아도 영상으로 그 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팀원의 의견에서 시작됐다.
린 스타트업 8팀은 “애초에 그 본래의 용도로 쓰이지 않을 도구와 화장품을 조합해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주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의 대부분 시간이 아이디어 구성에 쓰인다. 제품의 질감과 물성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아모레퍼시픽이 유튜브를 관통하는 거대한 키워드인 'ASMR'을 노린 것도 신의 한수였다. 사람들이 ASMR에 열광하는 이유는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ASMR 콘텐츠와 뇌파 변화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김래현 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박사는 사람들이 ASMR을 볼 때 나타나는 뇌파의 변화를 연구했다.
김래현 박사는 "ASMR 영상을 접했을 때 뇌파의 반응을 보면 졸릴 때나 명상에 빠졌을 때처럼 '델타파'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며 "이는 흥분도가 감소하고, 목덜미를 손으로 살살 자극하거나 귀를 파주는 것처럼 졸리고 나른한 쾌감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뷰티포인트 채널 이전에도 화장품을 부수는 영상이나 ASMR이라는 콘텐츠 영역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합쳐 높은 퀄리티로 제공한 것이 새로운 시도였다.
린 스타트업 8팀은 “제품을 직접 홍보하고 노출하는 브랜드 영상도 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다른 것을 만들기 원했다”며 “‘소비자들이 정말 재미있고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해외 구독자 비율도 높다. 국내 구독자가 40%, 해외 구독자가 60%다. 연령은 10~30대 초반 구독자가 87%에 달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하지 않지만 아모레퍼시픽이 타깃으로 하는 글로벌 ‘MZ(밀레니얼+Z) 세대’에게 정확히 먹혀든 셈이다.
뷰티포인트 채널은 성장 초반에 검색과 구독을 통해 유입됐다. ‘ASMR’, ‘화장품’ 등 유튜브 이용자들 사이에서 호응이 높은 키워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조회 수가 높아지자 어느 시점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각종 추천 영상 리스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을 중심으로 확산됐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자 전 세계 구독자들이 모였다.
◆한화TV, ‘계리사 브이로그’가 조회 수 40만 돌파 유튜브에서 반드시 흥미성 콘텐츠만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한화그룹의 유튜브 채널 ‘한화TV’는 한화 계열사들의 비즈니스를 전달하고 직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한화TV는 대기업 유튜브 중 가장 먼저 ‘브이로그(VLOG : 일상 기록 영상)’ 형식 영상 제작에 나섰다. 채널 테스트를 위해 2018년 11월 제작한 ‘보험 계리사 브이로그’는 원래 한화생명의 ‘잡 오프(계리사 시험 4주 전부터 직원들이 업무 대신 시험공부만 하는 제도)’ 제도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이었다. 이를 1990년대생 채널 운영자들이 브이로그’ 형식으로 기획했고 4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처음엔 채널 운영자들도 ‘사람들이 과연 계리사의 일상을 궁금해 할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금융업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키워드나 섬네일을 활용했다. 계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인원은 1년에 1만 명 내외에 불과하다.
하지만 금융권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취업 준비생 카페, 공무원 준비 취업 카페 등은 널려 있다. 이들에게 영상이 퍼지자 조회 수가 40만 회까지 올랐다. 지금 한화 계열사 직원들의 하루 일과를 담은 ‘한화 브이로그’ 시리즈는 올렸다 하면 조회 수 10만 회를 훌쩍 넘는다.
한화TV 채널을 보면 한화그룹 계열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와 접점을 이루고 있는 금융 계열사나 한화 갤러리아·호텔앤리조트뿐만 아니라 한화이글스 야구단, 수족관인 아쿠아플라넷, B2B 비즈니스를 하는 방산 계열사 까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유튜브 문법에 맞게 녹여 냈다. 기업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인데도 호응을 얻자 다른 기업들도 한화TV를 벤치마킹 했다.
한화TV도 성공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계열사마다 각 팀 팀장급을 설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브이로그가 뭔지’, ‘왜 업무 시간에 카메라를 켜고 있어야 하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첫 브이로그가 방영되자 계열사에서 먼저 브이로그 촬영을 요청해 왔다. 출연자 섭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채널을 운영하는 오원택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차장은 “요즘 사원과 대리급 직원이 대부분 MZ세대”라며 “이들 중 자기 얼굴을 알리고 본인을 브랜딩하는 게 익숙한 ‘숨은 관종(관심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의 유튜브 채널은 무려 10년 전에 탄생했다. 10년 전에는 일단 계정을 만들어 놓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유튜브 채널을 광고 영상을 저장하는 용도로만 사용해 왔다.
하지만 2017년부터 유튜브가 대세 채널로 떠오르면서 한화그룹은 유튜브 안에서 주로 소비되는 다양한 영상을 시청하며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화그룹이 내린 결론은 ‘진정성 있게 보여줘야 신뢰한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영상은 ‘K9 자주포 새벽 배송 리뷰’다. ‘한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탄생한 콘텐츠다. K9이 창원 사업장에서 철원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납품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냈다.
이후 1990년대생 막내 직원이 K9 자주포는 새벽에만 운송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해 온라인상에서 인기 키워드였던 ‘새벽 배송’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이 영상을 누가 볼까’ 싶지만 K9은 국내외 ‘밀덕(밀리터리 마니아)’들의 관심이 높은 장비다.
하지만 K9에 대한 밀덕의 관심에 비해 최신 영상은 없었다. 이 영상이 공개되자 군사 장비에 관심이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국내 새벽 배송 클라스’라는 게시물 등으로 확산되며 시청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그 결과 두 편의 K9 자주포 새벽 배송 영상은 총 조회 수 140만 회를 기록했다.
◆‘투게더’ 만드는 과정 공개하자 조회수 폭발
식품 기업 유튜브 중에서는 ‘빙그레TV’의 질주가 돋보인다. 빙그레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의 ‘제조 공정’을 담은 ‘초홀릭공장’ 시리즈로 조회 수를 폭발시켰다. 아이스크림 ‘투게더’의 제조 과정 영상은 광고 없이 147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끌레도르 제조 과정 영상은 55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빙그레가 제조 공정을 공개한 이유는 제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예전부터 진행해 왔던 오프라인 공장 견학을 온라인 버전으로 기획했다. 깨끗한 제조 공정을 공개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제조 공정 영상은 빙그레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홀릭공장이라는 네이밍과 행진곡 같은 귀여운 BGM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아이스크림과 어우러져 ‘놀이동산에 온 것 같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 밖에 이용자들의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차별화에 나섰다. ‘더위 사냥 똑같이 나눌 수 있을까’, ‘투게더는 한 통에 몇 숟가락일까’처럼 회사가 알려주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궁금증을 빙그레가 직접 나서 해결해 주는 ‘궁금한 이야기B’ 시리즈도 존재한다.
채널을 운영하는 유화진 빙그레 미디어전략팀 사원은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궁금해 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고 이를 골자로 재미있는 살을 덧붙여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며 “제품을 원래 알고 있던 고객에겐 공감을, 새롭게 접하는 고객에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빙그레TV는 기업 유튜브가 아닌 개인 유튜버를 경쟁 채널로 삼고 있다. 콘텐츠 전략도 이에 맞춰 새로 짜기 시작했다. 3월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빙카소작업실’ 역시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빙카소작업실은 크레용으로 ‘초소형 1cm 꽃게랑 만들기’ 등 빙그레 제품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고퀄리티 작품 만들기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지난 3월 공개된 ‘바나나우유 소리로 아리랑을 만들어봤다’ 영상은 바나나우유를 부딪쳐 비트를 만들고 바나나우유 곽을 불어 휘파람처럼 아리랑 음을 냈다. 글로 써도, 영상으로 봐도 조금 어이없는 내용이지만 31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빙그레TV 역시 광고 아카이빙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다가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돌입했다.
유화진 사원은 “기업 유튜브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심에 빠지기 쉽다”며 “채널 타깃인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빠른 호흡의 편집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중요한 설명이더라도 과감하게 잘라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스페셜리포트 : '조회수 폭발' 기업 유튜브 성공공식]
-①아모레가 화장품 부수고, 한화가 'K9' 새벽배송 나선 이유
-②직원만 본다? 기업 유튜브 성공 공식 5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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