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정치인]
‘영원한 증권맨’서 정치인 변신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10년 뒤 연금·건보 등 우리사회가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는 데도 손 놓고 있어 답답해 정치 나서”

“의원들 툭하면 호통치던데 요즘 기업도 그렇게 안해
계층 이동 막는 유리바닥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
보수 · 진보 중 좋은것 뽑아 ‘핀셋 이데올로기’ 만들어야
소득주도성장 정책, 방향은 맞으나 속도 조절은 필요
벤처기업가 증여세 부담 완화하는 특례제 필요
개성공단 · 금강산 관광 풀어줘 北경제 굴러가게 해야”
홍성국 “국회의원 되면 ‘똥폼’ 잡기 싫어…격식 모두 없앨 것”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조미현 한국경제 기자 ]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세종갑 지역구에 출마해 승리한 홍성국 당선자는 ‘영원한 증권맨’으로 불린다. 198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미래에셋대우 사장에 오르는 등 30여 년간 증권사에서 일했다. 그런 그가 미래에셋대우 사장에서 물러난 뒤 ‘수축사회’ 책을 내면서 ‘여의도의 미래 학자’라는 별칭도 얻었다. 인구 감소와 공급 과잉으로 인류가 맞게 될 수축 사회에 대비한 해법도 제시해 호평 받았다. 그런 그가 정치권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했다. “정말 큰일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훤히 내다보인다. 책을 쓰고 강연을 숱하게 하면서 아무리 경각심을 불어넣어도 별 효과가 없더라. 그래서 국회에 들어가기로 했다.”

▶30년 넘게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선거 현장을 뛰어보니 어떻습니까.
“선거를 할 때 캠프 참모들에게 뭘 해도 재미있게 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재미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자발적 참여에 의한 조직 구성원들과 뜻을 모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선거 과정은 재미있었습니다. 아내는 전업주부였는데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해보지 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더니 소리 지르고 사람들과 눈도 맞추고 그러더군요. 기업이나 웬만한 조직은 명령이 내려지면 일사불란한데 정당은 조직 문화가 굉장히 다르고 수평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리는 예상했습니까.
“시민들의 눈빛을 보면 느낌이 옵니다. 선거를 많이 해 본 분들은 악수를 해보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선거 초반에는 유권자들이 느슨하게 잡다가 나중에는 꽉 잡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지의 표시죠.”

▶미래통합당의 패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번 선거의 본질은 진보-보수 대결이 아닙니다. 30년 전과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됐어요. 이 싸움에서 통합당은 30년 전 전략과 전술을 그냥 썼고 민주당은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변화한 세상에 맞는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염원들이 알게 모르게 시민들의 무의식에 잠재돼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통합당은 옛날로 가자고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다른 정치적 이슈를 덮었기 때문에 여당이 덕을 본 것 아닙니까.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유권자들은 정치권에 새판을 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정치가 국민에게 비치는 시각은 기득권 싸움, 권력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정 개혁 과제를 낸 게 뭐가 있느냐는 거죠. 한국의 양극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입니다. 소득이 낮은 분들을 도와준다고 하면 포퓰리즘이라고 하니 국민들 마음이 많이 상해 있어요. 한국은 개발 독재 시대 때 소득이 가운데로 몰렸지만 지금은 계층 이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데다 소득 양극화가 더 심해졌어요.‘글라스 보텀(유리 바닥)’이라고 하죠. 내가 정치에 나선 이유는 이런 유리 바닥을 없애자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를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유리 바닥이 있으니 이것을 제거해 줘야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 있지 않습니까. 양극화가 심할수록 계층 간 이동이 어렵습니다. 선거를 치러 보니 이런 현상에 대한 좌절감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합당이 아닌 민주당을 택한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 있다고 봐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유리 바닥에 대한 인식조차 안 된 쪽과 그것은 인식하고 있는 쪽 중 선택한 거죠.”

▶'수축사회’에서 우리 정치권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돼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바꿀 자신이 있습니까.
“차근차근 해 나가야죠. 정치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것은 맞는데 지금은 생존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나만큼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정말 이대로 가면 큰일 나요. 보수는 성장 중심과 낙수 효과를 주장하며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는 복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외쳐 왔죠. 양쪽 다 아닙니다. 내가 핀셋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썼는데 보수와 진보의 주장 중 좋으면 뽑아 우리 생존에 맞는 새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실 정치에서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융합될 수밖에 없어요. 공산당 선언이 1848년 나왔는데 150년 지났는데도 그 이데올로기를 아직 쓰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당선자는 여러 면에서 민주당과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의 방침과 어긋난다고 생각될 땐 어떻게 할 겁니까.
“당론이 만들어지기 전에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고 당론이 결정되면 따라야죠. 결정된 뒤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나 자신이 100% 다 잘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만 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그건 이래서 된다, 안 된다를 분명히 얘기할 겁니다.”

▶‘수축사회’에서 ‘법이나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썼는데, 어떤 것을 바꾸고 싶습니까.
“그 책이 꽤 팔렸고 강의를 많이 해도 세상이 안 바뀝니다. 사람들이 ‘이대로 안 된다’는 것을 뼛속깊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빤히 나와 있죠. 10년 후 연금과 건강보험이 어떻게 될지 눈에 훤히 보이는 데도 대응하지 않아요. 국회에 들어가 얘기하는 게 책 한 줄 쓰고 강의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당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규제 완화 얘기는 많이 하고 있지만 서비스산업발전법·원격의료법 등 규제 완화법이 국회에서 막혀 있습니다. 타다는 법원에서 허용했는데 국회에서는 반대로 가 사업을 접게 됐습니다. 우버는 철수했습니다.
“국회가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기득권 문제입니다. 향후 20년 동안 기득권이 해체되는 시기라고 봐요. 개인택시 면허도 하나의 기득권이죠. 그런 것들이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 국가가 개입해 막아 줘야 합니다.”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없다는 게 맞겠죠. 지금은 경제학 이론이 통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경제학의 기본 과정이 무너졌습니다. 정부가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는 것도 어디에서 보지 못했죠. 소득 주도 성장도 마찬가지 개념에서 봐야 합니다. 양극화가 오죽 심했으면 그럴까 하는 겁니다. 외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급속도로 사회 전 분야에 퍼지면서 불균형 성장을 간과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임금이 적당히 같이 올라가야 하는데 한쪽은 너무 많이, 다른 한쪽은 오르지 않으니 오르지 않은 부분을 올리자는 겁니다. 하지만 속도를 너무 빨리 했죠. 일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속도가 너무 빨라 적응 시간을 놓쳤습니다. 소득 주도 성장이 방향은 맞지만 속도 조절은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뉴딜’이라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새로운 정보기술(IT) 분야에 투자가 많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필연은 우연을 매개체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게 돼 있었는데 잘 가지 않다가 우연히 어떤 일이 발생하면서 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거죠.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는 것을 보세요.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 4차 산업혁명 중심으로 가고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의 투자 방향은 금방 나옵니다.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바로 이런 혁신 성장과 관련한 투자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여권은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공정거래법 처리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재계는 반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법개정안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과 한국 기관투자가들은 웬만하면 인수·합병(M&A)을 못 해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고 하는데 나중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합니다. 또 기업 3세들의 경영에 대해 너무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영 능력이 있으면 당연히 밀어주겠다는 거죠. 문제는 경영 능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보호해 주는 게 맞느냐는 겁니다. 주주 분산이 잘돼 있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봐요. 오히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벤처기업들이 갑자기 큰 회사가 된 경우죠. 일정 부분 증여하고 싶은데 세금이 너무 많아 할 방법이 없어요. 벤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특례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여당의 이른바 ‘개혁 법안’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홍 당선인이 재계와 소통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재계와 스킨십을 자주 하려고 합니다. 기업인들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30년 전 생각으로 경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에요.”
홍성국 “국회의원 되면 ‘똥폼’ 잡기 싫어…격식 모두 없앨 것”
홍성국 당선자 약력 : 1963년 세종시 출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동국대 행정대학원 졸업.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홀세일사업부장(전무). KDB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장·대표이사 사장.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사장. 혜안리서치 대표. 더불어민주당 경제담당 대변인(현).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넘는 특권을 누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까.
“똥폼 잡기 싫습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보텀업(상향식)’이라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하고 얘기할 겁니다. 장관이 다 잘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일을 빨리, 잘하기 위해 격식을 없애야 합니다. 의원들이 질문할 때 호통치고 하던데 요즘 기업에서도 그렇게 안 해요.”

▶수축 사회의 한 특징으로 이기주의를 꼽고 이타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기주의는 인간의 본능인데 너무 이상적이 아닌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타주의·공리주의나 많은 이데올로기라는 게 파이가 커지던 팽창 사회에서 만든 겁니다. 하지만 파이가 적어지면 이기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그걸 개인주의로 포장했어요.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또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는 거죠. 반면 이기주의는 자기 하나만의 이익을 위한 겁니다. 파이가 커지는 사회에서는 이기주의가 있어도 그럭저럭 됐는데 파이가 줄어들다 보니 마이너스섬 게임 형태로 갑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사회 연대성에 대해 가르쳐 줬어요. 자기가 잘한다고 걸리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를 배워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고용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요.
“긱 이코노미와 공유 경제 확산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평생 고용하던 일본도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프리터, 아르바이트족이 늘고 있죠. 하지만 고용 유연화 문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다른 나라를 무조건 따라갈 게 아니라 한국적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상당 기간은 경쟁에서 탈락한 분들을 도와 줘야죠.”

▶여당에서 추진하는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이 현 상태에서 붕괴하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자립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는 빨리 풀어줘 북한 경제가 스스로 굴러가게 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이 붕괴되지 않는 것은 장마당 경제 때문입니다. 북한에 시장 경제를 싹트게 하기 위해 간접 지원하는 것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입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시장 경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통일하는 게 우리에게 훨씬 더 큰 이익이고 비용이 적게 들어갑니다. 관계의 끈을 너무 오래 끌면 떠오르던 북한의 시장 경제가 사라질 수 있어요. 북한이 시장 경제·자본주의·민주주의를 배워 가게 되면 극단적 선택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게 21세기 햇볕 정책입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