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고 투명하게 정보 전달해야
-리더 집단이 ‘한목소리’ 내는 게 중요해 [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필자가 외국계 기업에 몸담고 있던 몇 해 전 겨울에 일어난 일이다. 모두가 들뜬 크리스마스 시즌에 글로벌 본사에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본사의 사업 전략 변경에 따라 한국 현지 연구개발팀 운영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연말 안에 이 팀을 해체하고 전원 정리하라는 지침이었다. 정리, 쉽게 말해 전원 해고하고 집으로 보내라는 뜻이다.
태평양 건너편 한국 시장을 잘 모르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이야 무덤덤하고 냉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십 명 당사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는 때로는 죽기보다 하기 싫은 고역이다.
회상해 보면 일일이 그들과 대면하며 위기와 혼돈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냈는지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떠나는 임직원들의 상처를 어찌 다 보듬어 줄 수 있을까. 다만 서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했고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커리어의 길도 상당 부분 열어 주면서 무난히 사태를 마무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국내외 경기가 위축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위기 속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다시 한 번 화두로 떠오른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전 국민을 포함한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와 소통해야 한다. 기업 역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임직원·주주·고객을 대상으로 소통해야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연출한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늘 기쁜 소식만 전할 수는 없다.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사·조직 관리 측면에서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을 넘어 우울하면서도 ‘멘털 붕괴’를 일으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할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원칙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금 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이다.
한국만이라도 비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원들의 대규모 무급 휴직과 휴가, 보상 프로그램의 축소 변경, 구조 조정 및 정리 해고, 조직 개편, 인력 충원 동결, 리더십 교체, 더 엄격해진 성과 관리, 새롭게 일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비즈니스 모델 변경 그리고 노사 갈등 등의 상황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선 오해와 충돌이 야기되지 않도록 정제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당연히 몇 가지 원칙과 놓치지 말아야 할 체크포인트를 되짚어야 할 시점이다.
첫째는 일관성과 투명성이다. 진정성이라는 어휘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는 위기 상황의 커뮤니케이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 아닐까 싶다.
이런 원칙하에 정보가 섞이지 않고 정확하고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말을 바꾸거나 ‘숨겨진 의제(hidden agenda)’를 둔다면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로 인해 구성원들에게 외면 당하고 비난 받을 것이다.
둘째, 혼자서는 결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다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리더는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을 수립하고 그 과정을 리드하고 최종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서 다할 수 없고 다해서도 안 된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주면서 다른 리더들과 공조해 역할을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위기 상황 속에서 모든 리더들이 한 이슈에 대한 동일한 이해 수준을 갖고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기업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리더들이 도와 줬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필자는 임직원들의 질문과 비난 앞에서도 동일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셋째, 임직원들의 정서와 스트레스 관리를 위기관리의 한 영역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회사의 위기관리 메시지가 건강하고 일관되게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회사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대사(大使)’가 되고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조직에는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기술적인 문제들
사소하게 보이지만 유념해야 할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일수록 사전에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수립한 후 그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좋다.
즉흥적으로 말하거나 e메일을 쓰지 말라는 의미다. 대상자가 누구인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지, 어떤 수단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그들이 메시지 전달자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지에 대한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 직원이나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 내용이나 전달 방식에 대해 사전 피드백을 받거나 리허설을 해보는 것도 좋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적시에 커뮤니케이션해 궁금증을 풀고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보나 지식을 나누는 것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이 빠진 상태’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메시지가 해당 리더의 입을 통해 전해지지 않고 외부의 소문이나 제삼자에 의해 이상하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 민감하고 좋지 않은 소식일수록 뜸들이지 말고 정공법으로 요점과 결론을 먼저 전달하고 유감스럽지만 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논리와 사실 관계를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당사자들과의 감정적인 논쟁은 어떻게 해서라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가슴이 뜨거운 것은 좋지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머리가 차가운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훨씬 낫다.
끝으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리더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진리가 있다. 여기에는 항상 예상하지 못한 도덕적·법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조심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실언으로 치명적인 구설에 오르는 리더들이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생각이 자유롭고 지적이며 날카로운 시각을 갖춘 그리고 모든 사회 연결망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선현들이 알려준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라”는 ‘신독(愼獨)’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이유다.
자신이 쓰는 e메일에 익명의 숨은 참조가 달려 있고 자기 몸에 도청 장치가 돼 있다는 마음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고 실행하라고 조언한다면 너무 지나친 겸손일까.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변화와 위기는 이제 막 시작이라고…. 불청객 같은 변화와 위기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도 그들을 관리하기 시작해야 한다.
목표는 조직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위기 상황의 모든 측면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결국은 조직이 장기적인 성공의 길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중심에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진리를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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