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 약화…‘업계 4·5위’ 장금상선·흥아해운 컨테이너 부문 통합
국내 3위 선사 ‘흥아라인’이 새로 출범한 속사정은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국내 해운업계 4위 장금상선과 5위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사업부를 통합한 신설 법인 ‘흥아라인’이 출범했다.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분할 법인과 장금상선의 동남아 항로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통합해 선복량 기준 국내 3위, 세계 19위의 중견 선사가 탄생했다.

흥아해운은 지난해 469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해운 경기의 불황과 함께 ‘인트라 아시아(한·중·일, 동남아 등 아시아 역내 항로만을 운영하는 해운 서비스 시장)’의 공급 과잉 때문이다.

흥아해운이 주력으로 서비스하던 이 시장은 2016년부터 선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운임이 떨어지는 등 시황이 좋지 않았다. 고민 끝에 흥아해운은 장금상선과 컨테이너 사업부문을 합병하고 자산 매각 등을 추진했다. 글로벌 선사들이 인트라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혼자서는 운항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후 탱커선 사업만 남은 잔존 법인 흥아해운은 3월 10일 KDB산업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채권 금융회사 워크아웃(기업 재무 구조 개선) 신청을 결의했다. 이는 재무 구조와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다. 하지만 정기선 사업부문은 미리 매각함으로써 위기를 피해 갈 수 있었다.
국내 3위 선사 ‘흥아라인’이 새로 출범한 속사정은
◆탱커선만 남은 흥아해운은 ‘워크아웃’ 돌입

한국 해운 산업에서 ‘한진해운 파산 사태’는 여전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세계 7위의 대형 선사가 하루아침에 도산하면서 한국 해운의 위상도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 국내 선사들은 선제적 구조 조정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시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해운연합(KSP)’을 결성했다. 참여 선사들은 이듬해인 2018년부터 한~일 항로, 한~태국 항로, 한~인도네시아 항로, 한~베트남 항로 등 인트라 아시아 내에서 3차례에 걸쳐 선박을 철수하는 구조 조정을 시행해 왔다. 구조 조정이 필요한 항로에는 선박 대형화 등을 통해 항로 합리화를 추진하고 제삼국 간 항로 등 신규 항로도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컨테이너 부문 합병도 KSP가 추진하는 구조 조정 방안의 하나다. 이들의 합병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지난해 4월 기본 합의서를 맺고 운영 협력을 시작했으며 통합 예정 선사의 재무 상태 등에 대해 회계법인 실사를 거치며 준비 작업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흥아해운은 컨테이너 사업 부문 분할을 위해 영업외 자산 매각, 주식 감자, 대주주 유상 증자 등을 실시하며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고 했다. 장금상선은 그 후 흥아해운 컨테이너 지분의 90%를 인수했다. 올해 연말까지 통합법인과 장금상선의 잔여 컨테이너 사업 간 통합을 추진한다.

양 사의 자율적인 합병 결정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원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통합 법인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단기 채무 상환, 연료비·인건비 등 자금 소요에 대한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를 반영해 최대 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당초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흥아해운(흥아해운 잔존법인)에 지원한 자금 400억원은 장금상선에 흥아해운컨테이너(주)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전액 상환했다. 정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향후 다른 선사가 자율적 구조 조정을 추진할 때 같은 기준에 따라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자체적인 구조 조정을 통해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양 사의 합병으로 한국의 인트라 아시아 컨테이너 시장은 흥아라인과 고려해운이라는 2대 중형 선사와 다수 소형 선사 체제로 개편됐다. 이에 따라 선사들은 화주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과당경쟁으로 무분별한 운임 하락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소 선사들이 주로 취항하는 인트라 아시아 시장은 선복 과잉으로 운임이 크게 하락하는 등 최근 몇 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덩치가 큰 글로벌 선사들이 인트라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선사들은 중소형 컨테이너선을 대거 발주함으로써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세계 선복량 1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2018년 10월 연근해 전문 자회사 3곳을 통합해 연근해 서비스를 강화했다. 또 대만의 컨테이너 선사인 양밍·완하이·에버그린 등 3사는 인트라 아시아에 주로 투입되는 3000TEU급 이하 선박을 대량으로 발주했다. 3사의 발주량은 총 46척인데 이는 2018년 이후 글로벌 발주량의 27%를 차지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해상법 교수는 “인트라 아시아 항로는 기본적으로 공급량이 많았는데 얼라이언스를 맺은 대형 정기 선사들이 진입한 것이 시장을 흔들었다”며 “특히 동남아 항로는 현대상선과 중소 선사들이 수익을 위해 진입하면서 공급 과잉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흥아라인·고려해운 ‘2강’ 운임 방어 가능

이러한 상황에서 두 선사의 합병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인트라 아시아 컨테이너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마치 일본의 세 정기 선사인 NYK· 케이라인·MOL이 자체 선사는 그대로 존속하면서 컨테이너 운항부문만 떼어내 신규 법인 ‘더 원’을 만든 것과 같다. 신설 법인은 기존의 강자인 고려해운과 함께 ‘2강 체제’를 형성하고 인트라 아시아 시장에 진입하려는 원양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됐다.

흥아해운의 회생 절차 전 합병을 이뤘다는 점도 의미 있다. 김 교수는 “만약 흥아해운이 컨테이너 법인을 소유한 채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면 한진해운 사태 때 봤던 물류 대란이 일어났을 것이고 한국 정기 선사에 대한 신용도 하락이 또다시 발생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인트라 아시아 시장에서 국내 중견 선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게 신설 법인 설립의 목적”이라며 “과거 재무 구조가 좋지 않았던 것과 현재 워크아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양사의 통합으로 인해 노선 합리화(중복 노선의 항차 감소), 계약 및 고객관리 일원화 등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신규 법인 출범 후, 중복 노선의 항차는 감소하고 수익노선의 항차는 증가했다. 하이퐁(4항차→2항차), 한중/한일(2항차→1항차) 노선은 감소했고 태국(1항차→6항차), 인도네시아(항차없음→2항차)는 증가했다.

현재 선사들은 자율적 구조 조정을 통해 물동량 확보에 나서며 코로나19가 해운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사들은 감속 항해와 계선(선박 대기)을 통해 공급량을 줄이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운영비와 고정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르게 된다.

김 교수는 “한국 선사들은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계약(BBCHP)으로 선박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외국 은행들이 개입된 경우 상환 유예 조치가 쉽지 않아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