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질적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최초로 주문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콜마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기술력이 곧 한국 화장품 산업의 명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은 한국콜마의 기술력이 집약된 ‘1급 비밀’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국콜마는 종합기술원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연구 인력들을 집결시켰다. 이는 단순히 근무의 편리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제약 기술을 화장품에, 화장품 기술을 건강기능식품에 적용하는 기술의 ‘크로스 오버’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6일 개원 후 줄곧 베일에 싸여 있던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을 방문해 K뷰티 기술의 비밀을 들여다봤다.
한국콜마의 특징은 화장품·제약·건강기능식품 등 3개의 사업부가 탄탄히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화장품 사업은 ‘기술의 집약체’다. 한국콜마는 전체 직원 중 연구 인력의 비율을 30% 넘게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 배합 기술을 오직 한 기업에만 제공하는 ‘1사 1처방’ 원칙을 통해 ODM 기업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2002년 5월 출발한 한국콜마 제약사업부는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을 위탁 제조하는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총 587개의 허가를 보유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한국콜마는 2004년 국내 최초 민·관 합작의 ‘콜마비앤에이치’를 설립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2015년 코스닥에 상장된 후 2018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애터미의 히트 제품인 헤모힘을 개발·제조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헤모힘 원료에서 다양한 기능을 확보하고 있고 개별 인정 원료로 등록돼 있다. ◆7개 연구소·2개 센터…연구 인력 ‘총집합’
세 개의 사업부로 사세를 확장한 한국콜마에 종합기술원 개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2019년 8월 문을 연 종합기술원은 대지 면적 8111㎡(약 2458평), 총면적 3만1689㎡(약 9603평)의 지상 6층 건물로 구성됐다.
새 건물과 함께 새롭게 단장한 종합기술원 연구소는 강학희 원장을 대표로 7개 연구소와 2개의 연구센터, 1개의 실로 운영되고 있다. 제품 연구로는 스킨케어연구소·메이크업연구소·제약기술연구소·식품과학연구소가 있고 기능 연구로는 핵심기술연구소·피부천연물연구소·융합기술연구소가 있다. 2개의 연구센터는 분석연구센터와 향료연구센터로 나눠져 있다. 1개의 실에는 연구전략팀과 연구경영팀이 속해있는데 이 부서는 연구의 방향성과 전략을 수립하고 연구원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종합기술원에는 333명의 연구 인력을 비롯해 영업·마케팅 등 570명의 상주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을 한곳에 모은 만큼 한국콜마는 직원들의 ‘소통’을 장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건물 설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내곡동 종합기술원은 각 연구소를 층마다 배치했는데 각 연구소는 계단을 통해 손쉽게 층간 이동이 가능하다. 중간중간 다수의 회의 공간과 휴게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활발한 협업과 브레인스토밍이 이뤄지게끔 설계했다.
다른 분야의 연구원들이 한곳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날 종합기술원의 전반적인 설명을 맡은 한상근 한국콜마 스킨케어 연구소장(이사)은 “종합기술원의 문을 연 것은 각 조직 간 시너지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연구직’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연구직은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장시간 근무할 때가 많다. 한 전무는 “주52시간 근무제의 도입으로 연구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종합기술원을 통해 연구직의 불필요한 동선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종합기술원의 특징 중 하나는 한 층에 사무 공간과 연구 공간을 함께 배치했다는 점이다. 연구원들의 동선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다. 책상마다 놓인 데스크톱은 여느 회사의 사무실과 다를 바 없지만 책상의 한쪽에는 다양한 실험 재료와 함께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여러 기구들이 놓여있다. 파티션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세대 간 이해와 소통을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조직장의 자리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콜마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제일 먼저 방문한 5층은 색조 화장품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색조 화장품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채로운 컬러다. 연구원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그 색’을 추출하기 위해 다양한 컬러를 블렌딩하고 있었다.
연구실에서는 화장품을 출시하기 전 거쳐야 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진다. 선케어 제품은 빛을 쐐 차단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다. 마이크로 단위까지 입자 구조를 살펴보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또 극고온·극저온의 환경을 재현해 화장품이 어떤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을 만든다. 이러한 실험은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에 대처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이뤄짐과 동시에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한다.
7개 연구소 중 융합기술연구소는 종합기술원의 개원 취지에 가장 걸맞은 곳이다. 융합기술연구소는 종합기술원이 문을 연 지난해 8월 출범한 신규 조직이다. 화장품·소재·제약·식품 등 각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함께 모여 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을 한곳에 모은 것은 융합을 통한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화장품을 연구하다 제약에 관한 신기술을 발견할 수도 있고 식품 생산의 노하우를 화장품 제조에 접목할 수도 있다.
연구 분야도 다양하다. 현재 융합기술연구소에선 융합 기술을 통해 의료 기기, 동결 건조, 건조 패치, 유전체 맞춤형 화장품 등을 연구 중이다. 또 전달체 기술로 탄성 리포좀 등 피부 흡수 촉진 시스템도 연구하고 있다. 염모제, 유기농 제품, 스틱 제형, 캡슐 제형 등 특화 제형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책 과제를 통한 C&D(Connect&Development) 개발로 신소재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한 전무는 “이전에는 각 연구소가 소재나 제형도 각자 연구했지만 융합연구센터는 기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종합기술원과 함께 탄생한 조직은 융합연구센터만 있는 게 아니다. 종합기술원 1층에 자리 잡은 임상센터는 한국콜마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제품 출시 전 의도했던 효과가 구현되는지 실험한다. 특히 임상센터는 ODM 업체 중에서는 가장 최신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보다 정확한 실험 결과를 낼 수 있다.
종합기술원 개원과 함께 한국콜마는 기술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연간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왔는데 종합기술원을 설립한 최근에는 6~7%로 투자액이 늘어났다. ◆스테디셀러의 비결은 끝없는 R&D 투자
그동안 한국콜마는 화장품 시장에서 꾸준히 ‘스테디셀러’를 발매해 왔다. 대표적 제품은 고객사인 카버코리아와 협업해 만든 ‘국민 아이크림’ ‘AHC 리얼 아이크림 포 페이스’다. 이 제품은 한국콜마의 기술력이 집약된 제품으로, 고농축 나노 콤플렉스 캡슐을 통해 수용성과 유용성을 가진다. 각각의 입자를 코팅해 수용성과 유용성 기능을 서로 잃지 않도록 보완했기 때문이다. 눈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에도 바를 수 있는 이 제품은 아이크림 단일 제품으로 전 세계 최대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허의 개수 또한 한국콜마의 기술력을 증명한다. 2019년 9월 기준으로 365개를 등록했고 666개를 출원한 상태다. 또 한국콜마는 2019년 9월 기준으로 미백, 주름 방지, 자외선 차단, 다중 기능성 등에서 총 6791건의 기능성 허가를 받았다.
이 같은 기술 경쟁력이 한국콜마가 화장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오를 수 있던 비결이다. 일례로 현재 국내 자외선 차단제 시장에서 50% 이상의 제품이 한국콜마가 제조한 제품이다. 이는 화장품 기술에 제약 기술을 융합해 우수한 품질의 자외선 차단제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콜마는 기존 제약 산업에서 활용되는 위장약 제제 기술을 자외선 차단제에 도입했다. 위장약 제제의 유효 물질을 고분자 속에 삽입하는 중간 삽입 기술을 활용했다. 또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안을 즉각 반영한 제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남녀노소 쉽게 바를 수 있는 선스틱을 개발했고 피부가 뻑뻑해진다는 의견을 청취한 후 수분을 함유한 에센스 자외선 차단제를 출시했다.
최근 한국콜마의 자외선 차단제 관련 기술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한국콜마는 자외선부터 블루라이트·근적외선까지 전 영역의 유해 광선을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지난해 12월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3월 17일에는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153개국에 동시 출원한 효과가 있는 PCT 특허(다자 간 특허)도 출원했다. 이 기술은 피부를 손상시키는 유해 파장 전 영역(290~1400나노미터)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기술과 차별화된다. 선케어 한 번으로 실내외에서 발생하는 블루라이트와 근적외선 등 다양한 유해 광선을 차단할 수 있다.
한국콜마는 이 기술을 토대로 다기능 멀티 선케어 시장에 적극적인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고강도 가시광선(HEV light) 차단 기술에 피부 톤 맞춤형 기술을 융합해 외부 유해 요인을 차단하면서 깔끔한 피부 톤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혁신 이끄는 ‘온리 원 제품’ 개발이 목표
연구원들에겐 일만큼 중요한 게 휴식이다. 이 때문에 한국콜마는 종합기술원을 설계하며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의 비율을 반반으로 설계했다. 각 층의 연구원을 잇는 계단 사이에 큰 나무들을 심어 연구원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로비에 있는 북카페, 지하 웨이트 운동장, 여사우 휴게실 등 다양한 휴식 공간도 마련했다.
‘자연 친화적 연구소’라는 것도 종합기술원의 큰 특징이다. 휴식 공간에서는 넓은 창을 통해 내곡동의 자연환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한국콜마는 직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6억원을 투자해 먼지를 빨아들이는 최신식 집진기를 설치했다. 이 설비는 먼지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공기정화기를 통해 종합기술원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가스를 99% 이상 제거하고 있다. 30년 전 신생 기업 한국콜마는 국내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스킨·로션·영양크림을 주문 받은 ‘그대로’ 제조해 주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였다. 만약 한국콜마가 OEM 회사에 만족했더라면 지금의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독자 기술이 있어야만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독자 연구소를 설립하고 ODM 방식을 도입했다. 브랜드와 마케팅만 빼고 제품 기획, 개발, 완제품 생산, 품질 관리까지 종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러한 한국콜마의 도전은 국내 화장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2월 한국콜마는 CJ그룹의 제약 계열사인 CJ헬스케어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톱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4월 1일 사명을 ‘HK이노엔(HK inno.N)’으로 바꾸고 전문 의약품과 건강 음료를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로 했다.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신사업 모델로 추진해 제약 회사의 전문성을 살린 코스메슈티컬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지난해 출시한 국내 30호 신약 위식도 역류 질환 약 ‘케이캡정’이 출시 1년 만에 연매출 359억원을 기록하며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충북 오송에는 연간 1억 개의 수액백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증설 중이다. 이를 통해 향후 한국콜마는 제약 부문을 화장품 부문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해 온 한국콜마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은 전과 다른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마스크를 온종일 착용하는 시대가 되면서 화장법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파운데이션을 찾고 립보다 아이 메이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콜마도 코로나19가 화장품 산업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마스크 착용 시 화장이 지워지는 현상을 최소화한 쿠션·선크림·팩트·립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들에는 유·수분을 튕겨내는 성질이 강한 코팅 파우더가 사용됐다. 코팅 파우더는 마스크 안에서 생기는 유·수분이 화장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 마스크에 화장품이 묻거나 화장이 무너지는 현상을 방지한다.
타사는 개발할 수 없는 ‘온리 원 제품’을 내놓는 것이 최근 한국콜마가 세운 새로운 목표다. 최고의 인재가 모여 최첨단 장비를 통한 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종합기술원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무대 역할을 맡게 됐다. 한 전무는 “다른 기업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온리 원’ 제품을 통해 제품 카테고리에서 혁신을 이끌면서 다가올 화장품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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