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기술 발전할수록 리더의 역할 더 중요해져…모든 과정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 필요
‘시스템 아키텍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모습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인류의 발전사를 보면 오랜 농경 사회를 탈피해 산업 사회로, 그 이후 지금의 정보화 사회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4차 산업혁명 사회는 ‘지능(intelligence)’이 더해진 지능 정보화 사회다. 핵심 키워드는 ‘융합’과 ‘연결’이다. 여러 기술이 융합되면서 산업과 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만큼 커다란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5G(5세대 이동통신)·클라우드 기술 등이 있다. 이 기술들이 어떻게 융합되고 변화를 주도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리 산업이나 사회를 예측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연결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기술(IT)이 사람·프로세스·데이터·사물을 서로 연결해 지능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혁신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가오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술 역량만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참나무 한 그루를 쓸 만하게 키우는 데도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핵심 기술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 기술들을 묶어 새로운 응용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융합형 리더가 있어야 한다.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각 기술을 최적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을 시스템 아키텍트(system architect)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아키텍트’는 건축가를 뜻해
본래 아키텍트는 우리말로 건축가를 뜻한다. 건축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창의성·실용성을 고려해 훌륭한 건축물로 설계한다. 실제로는 건축주와 소통하면서 설계·시공·감리 등 초기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총괄하면서 프로젝트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전자·전기 기술 분야에서 시스템 아키텍트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시장과 고객을 이해해야 한다. 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을 최적화하며 함께 일하는 많은 인력들과 좋은 팀워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철저하고 완벽함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늘 새로움을 갈망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끈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상품화까지 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 혁신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를 진행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최고 전문가다.

그동안 한국은 추격형 성장 모델로 경제 성장을 이뤄 오면서 이러한 인력을 키우지 못했다. 한국 기업은 해외의 앞서 있던 기업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 하기에 바빴다. 학교는 암기식 교육 위주였다. 한국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뭘 배웠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유대인 부모들은 다르다.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답도 중요하지만 질문은 아이들이 배운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한국 기업이나 학교나 남들이 ‘왜(why)’를 알려주면 ‘어떻게(how)’에 찾는 데 집중했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어떤 능력을 가져야 할까.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곧 ‘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깊은 생각과 통찰을 하지 않는 사람은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IoT 기술을 홈에 활용한다면 ‘IoT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의 해결 방안을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이 때문에 시스템 아키텍트는 기술과 인문의 융합형 인재여야 한다. 그는 인간의 가치와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 즉 비판적 사유를 해야 한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심하고 전혀 새롭게 질문도 해야 한다. 인문학적 고민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 즉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어느 기업과 함께 개발해 상용 서비스까지 진행했던 사업화 사례를 들어 본다. 박물관에 가면 관람객은 유물이나 그림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기존에는 돈을 내고 별도의 기기를 빌려 활용했다. 물론 큐레이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효율적이긴 하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돈을 내는 것이나 빌리는 것도 귀찮다. 그러니 내 스마트폰으로 유물이나 그림의 자세한 설명을 알 수 없을까”라는 식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을 비콘이라는 가까운 거리 통신이 가능한 작은 블루투스 모듈을 이용해 해결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는 큐레이팅 서비스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문학적인 고민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서비스를 발굴해야만 고객은 감동하고 시장은 확대된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스스로 키우고 확보해야
기업도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할 때 ‘왜’에서 출발한다. 소비자는 왜 구매할까. 그것은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들까. 이 제품은 어느 시장에 적합할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만들어진 제품은 시장에서 인정받게 된다.

소프트웨어(software)라는 용어는 하드웨어(hardware), 즉 컴퓨터 시스템을 이루는 물리적 구성 요소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드웨어에 주어진 어떤 과제를 실행하도록 지시하는 일련의 명령을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램과 절차 및 컴퓨터 시스템의 운영에 관계하는 루틴으로 구성돼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은 전체 구조 설계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architect)와 세부 구현을 맡는 프로그래머(programmer)로 나눌 수 있다

전자·전기 엔지니어링 영역에서 시스템 아키텍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전체 시스템을 상상하고 상위 수준의 개념 설계를 한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글을 쓰는 작가와 같다.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은 문학작품 또는 글을 쓰는 과정과 너무나도 똑같다. 설계할 때 표현 도구로서 언어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목적과 형태에 따라 쓰인다. 이렇듯 일련의 엔지니어링 일들은 글을 쓰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들을 언어를 기반으로 표현하고 이를 글로 남겨 공유하게 된다. 즉 문학 작품 또는 글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언어의 문법과 표현 양식에 따라 표현되지만 그 자체는 인간 사고의 결정체다.

한국은 철강·자동차·조선 등 중화학공업 중심 산업으로 선진국을 추격했다. 또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전기·전자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면서 성공을 거둔 느낌이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한국이 벤치마크로 삼을 만한 대상이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더더욱 남보다 먼저 ‘왜’를 찾아야 한다. 깊은 사유와 통찰만이 질문을 찾을 수 있다.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도해야 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기술이 부족하면 외부에서 사올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아키텍트는 반드시 우리 스스로 키우고 확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의 퍼스트 무브를 이끌어 나갈 핵심 인재가 필요한 시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7호(2020.05.16 ~ 2020.05.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