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변호사의 법으로 읽는 부동산-실질적으로 계약과 다르지 않은 조합 규약…조합원에게 불리해도 구제 어려워
지역주택조합 규약도 약관규제법 적용 받아야
[이경호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라틴어 법언 중 하나다. 약속에 사법상 일정한 법률 효과의 부여를 목적하는 행위가 바로 계약이다.

계약의 자유는 자본주의 발달의 원동력이 됐다. 또 현대의 대량 생산, 소비 사회에서 계약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약관’이 등장했고 유용하게 기능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약관이 많은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우리 민법은 약관법을 제정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계약을 무효로 하고 있다.

약관은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의미한다.

약관은 미리 마련하는 쪽에 유리하게 작성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약관법은 이러한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규제, 불공정한 내용을 무효로 만드는 법이다.

구체적인 예로 약관규제법은 △약관에 의한 거래를 하고자 하는 자에게 약관의 명시·설명 의무를 부과하며 △법률적 책임을 부당하게 회피하는 조항 △부당한 손해배상액의 예정 조항 △계약의 해지·해제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조항 △당사자에게 불리한 소 제기 금지의 합의 조항 등을 금지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다수의 무주택자가 조합을 설립해 사업 부지를 확보하고 주택법령에 따라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후 시공자와 함께 주택 건설 사업을 시행하는 제도다.

그런데 조합 설립 단계 이전의 모습은 통상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라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정작 용역업체인 업무 대행사가 주축이 돼 무주택자들과의 조합 가입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합 가입 계약을 원하는 무주택자는 업무 대행사가 미리 마련한 계약서에 서명·날인함으로써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렇게 추진위와 업무 대행사가 미리 마련해 놓은 계약서는 깨알 같은 글씨로 수많은 조항들을 담고 있는데 대부분이 조합원들에게만 불리한 의무를 강제하는 조항들을 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대법원은 이러한 조합 가입 계약서의 불공정한 조항들에 대해 약관으로 인정해 무효로 보아 부당한 계약의 피해를 본 조합원들의 권리 구제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조합 규약을 약관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다. 규약은 본래 단체 구성원의 자치 법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할 목적으로 추진위가 규약을 제정하는 행위는 여러 당사자의 합동 행위에 해당하므로 계약이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살펴보면 마냥 수긍할 수 없다. 대부분의 지역주택조합 추진위는 미리 ‘규약(조합 가입 계약서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을 마련해 두고 가입자들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첨부 서류의 하나로 조합 규약을 넣어 가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즉 실질은 계약서와 다를 바 없지만 규약이라는 형식에 구속돼 약관성을 인정하는 판결은 보기 힘들다.

주택법은 부당한 계약에 따른 조합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수차례 개정됐다. 현행법은 조합에 탈퇴 의사를 알리고 탈퇴할 수 있게 됐다(주택법 제11조 제8항).

그런데 정작 탈퇴에 따른 비용의 환급과 시기에 대해서는 조합 규약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부담한 비용의 환급을 청구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주택법 제11조 제9항). 즉 탈퇴는 가능하지만 그 방법과 시기는 규약으로 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규약은 조합원들에게 불리하게 규정돼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환불 시기와 관련해 ‘신규 조합원과 일반 분양자로 대체돼 입금이 완료됐을 때 환불하기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규약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환급 시기를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의 성부에 의존하게 하고 오로지 조합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해 조합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이렇게 형식은 규약이나 실질은 계약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고려해 조합 규약 역시 약관으로 판단하는 사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고 불공정한 내용이 담겨 있는 규약을 무효화해 건전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하루빨리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