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연령 31세의 밀레니얼 주식 시장 몰려…투기적 행태로 ‘좀비 랠리’ 우려되기도
뉴욕 증시를 휩쓰는 ‘로빈후드’ 투자자들 [글로벌 현장]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월가의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은 지난 5월 22일 렌터카 회사 허츠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뒤 보유하던 지분 39%를 주당 평균 72센트에 처분했다. 17억 달러(약 2조300억원)가 넘는 손실을 봤다. 허츠의 주가는 0.44달러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시애틀에 사는 29세의 전기 기사 코리 거버 씨는 그 직후 허츠 주식을 무료 주식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로빈후드를 통해 매수했다. “허츠의 브랜드는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허츠의 주가는 6월 8일 115% 급등해 주당 5.53달러까지 올랐다. 칼 아이칸이 빠져나간 뒤 481% 급등했다. 파산을 신청한 직후부터 따지면 6배 올랐다. 거버 씨는 수천 달러를 벌었다. 이렇게 지난주부터 로빈후드 앱을 이용해 허츠 주식을 사들인 사람만 9만6000명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의 베테랑들이 겁낼 때 개인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모험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술주 선호하는 로빈후드 투자자들

나스닥지수는 6월 10일 사상 처음으로 1만 선을 돌파해 1만20.35로 거래를 마감했다. 1971년 나스닥이 생긴 지 49년 만의 일이다. 지난 3월 23일 바닥을 찍은 뒤 약 45% 상승했다. 이런 미 증시의 상승 배경으로 미 중앙은행(Fed)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먼저 꼽힌다.

하지만 새로 증시에 유입된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출생) 개인 투자자들의 가세도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주가가 폭락하자 대거 매수에 나선 한국의 ‘동학개미’와 비슷하다. 이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투자자들은 주로 로빈후드 앱을 통해 주식을 거래한다고 해서 ‘로빈후드 투자자들’이라고 불린다.

나스닥은 이번 반등장에서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테슬라 등 기술주들의 상승세를 바탕으로 다우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보다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올랐다. 애플 등 기술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애플 아이폰으로 구글 검색을 하고 아마존을 통해 온라인 쇼핑을 해온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주식이다. 이들 기술주와 테슬라·비욘드미트·줌 등을 ‘밀레니얼 주식’이라고도 한다. 제너럴모터스(GM)·제너럴일렉트릭(GE)·보잉 등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 (1946~1965년)가 좋아하는 ‘베이비부머 주식’과 차별화해 부르는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증시 유입은 올 들어 미 증권사에 신설된 계좌 수에서 잘 나타난다. 로빈후드는 지난 1분기 무려 300만 개가 개설됐다. 현재 1000만 명이 넘는 이 앱 사용자의 평균 연령은 31세에 불과하다. 피델리티는 지난 3~5월 3개월 동안 전년 동기보다 77% 증가한 120만 개 계좌가 만들어졌다. TD아메리트레이드는 3월 한 달간 42만6000명이 새로 계좌를 열었다. 이 회사는 신규 고객의 대부분이 35세 이하라고 밝혔다.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젊은 만큼 무모해 보일 정도로 위험 선호 경향이 짙다. 허츠뿐만이 아니다. 역시 지난 5월 파산을 신청한 백화점 체인 JC페니도 파산 전보다 167% 급등했고 셰일 업체 파이팅페트롤리엄은 835%나 폭등했다. 또 파산설이 나돌고 있는 셰일 업체 체사피크에너지는 6월 4일 14.05달러에서 6월 8일 69.92달러로 급등했다. 시가총액 수억 달러 수준인 이 회사는 빚이 90억 달러(약 10조8000억원)가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바닥을 기던 항공사, 크루즈 등 여행 관련 주식의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또 한화가 투자해 유명해진 수소 트럭 개발 업체 니콜라도 로빈후드 투자자들의 매수로 폭등한 주식이다.

6월 4일 상장한 니콜라는 상장 당일에 이어 6월 8일에도 100%가 넘게 폭등했고 6월 9일에는 시가총액이 330억 달러(약 39조원)에 달했다. 이는 포드(288억 달러)와 피아트크라이슬러(205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트럭을 아직 한 대도 팔지 못한 회사가 한 해 수백만 대를 판매하는 전통 자동차 기업의 시총을 넘어선 것이다.
뉴욕 증시를 휩쓰는 ‘로빈후드’ 투자자들 [글로벌 현장]
◆밀레니얼, ‘주식도 게임처럼’ 즐긴다

밀레니얼 세대가 갑자기 증시에 몰려든 배경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꼽힌다.
먼저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폭락을 인생의 매수 기회로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상승장에 매수 기회를 찾지 못했다가 단기간에 40% 하락하자 대거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크 오루크 수석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과 최근의 유사점은 개인 투자자들이 이번 장을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젊은이들은 대부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주가 폭락을 경험하지 못했다. 2010년 이후 뉴욕 증시가 10년간 지속적으로 오른 것만 기억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는 미 연방 정부가 1인당 1200달러씩 투자 자금도 나눠줬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뿌린 ‘헬리콥터 머니’다. 실업자에게는 실업급여로 각 주가 지급하는 주당 300~700달러 외에 연방 정부가 주당 600달러씩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이들 헬리콥터 머니 상당수가 증시에 유입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온라인 게임과 스포츠 도박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주식 투자는 게임과 같다. 거버 씨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훨씬 즐겁게 해주는 주식 시장에 있기 때문에 스포츠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로빈후드가 지속적으로 고객을 흡수한 여파로 지난해 10월 찰스스왑·TD아메리트레이드·이트레이드 등 미 증권사들이 주식 거래 수수료를 모두 무료로 전환한 것도 이들 젊은 신규 고객들이 대거 증시에 유입된 계기로 평가된다. 무료로 온라인 주식 거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의 ‘위험한’ 투자는 월가에서 우려하고 있다. 경제나 기업의 펀더멘털을 감안하지 않고 게임처럼 투자한다는 것이다. 마켓인사이더에 따르면 이들은 트위터에서 ‘데이 트레이더 데이비’로 알려져 있는 바스툴 스포츠의 도박사 데이비드 포트노이 씨 등을 추종한다. 그의 투자 쇼는 트위터에서 한 번에 수십만 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포트노이 씨는 지난 5월 초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항공주를 손절매했다고 발표한 직후 항공주 매수를 권했다.

현재까지 수익률을 보면 로빈후드 투자자들의 압승이다. 항공주가 폭등하자 일찌감치 항공주를 팔아 치운 버핏 회장은 “감이 떨어졌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큰 폭의 조정을 예상했던 유명 헤지펀드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 뒤켄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은 6월 8일 “최근 몇 주 동안의 랠리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반성했다.

이들의 가세로 이른바 ‘마가(MAGA)’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구글(알파벳)·애플 등이 폭등하면서 나스닥이 1만 선에 오르는 동력이 됐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6월 10일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196조원)를 돌파하면서 이들 모두가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로빈후드 투자자들의 증시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주로 거래하는 주식들을 좇는 로빈트택(robintrack.net)이라는 사이트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들의 지나친 투기적 행태는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산한 허츠·파이팅페트롤리엄·JP페니 등의 주식이 폭등한 것을 들어 ‘좀비 랠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산법 11조 신청은 주식 소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며 “좀비 팬들은 이 주식들이 당분간 증시에 머무를 것으로 기대하지만 통상 좀비는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90년대 후반 소액 투자자들은 닷컴 이름이 붙은 주식을 쫓아갔고 2000년 봄 나스닥 시장은 무너졌다”고 썼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1호(2020.06.13 ~ 2020.06.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