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세지는 ‘을’의 힘…과거의 방식으로는 효율적인 인재 육성 어려워
‘신 권력 이동의 시대’…조직 관리 방법도 변해야 [한준기의 경영전략]
[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굴지의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임원이 자신의 사업본부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팀장에게 에이전시들을 좀 더 꼼꼼하게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팀장은 대뜸 자신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뭐냐면서 해당 임원에게 항변했다.

예상 밖의 ‘저항’에 화가 난 임원은 옆에 놓인 다이어리를 땅바닥에 내치면서 분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임원은 곧바로 그 팀장에 의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됐다. 그 결과 인사위원회에서 직위가 해제되고 대기 발령에 놓이게 됐다.

사건의 본질과 둘의 잘잘못은 차치하더라도 과거에는 쉽게 목격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렇듯 모든 구직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서 경영진과 임원이 직원의 반응에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요즘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이런 일이 어떻게 이제는 가능해졌을까.

당연한 현실이지만 노동자의 인권 신장, 노동자 친화적인 노동 시장이 도래했기 때문일까.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고 싶다.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이제 ‘힘’이 생긴 것이다. 선뜻 와 닿지 않고 비약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권력이 그들 쪽으로 이동 중인 모습이다.

◆유념해야 할 조직 관리의 세 가지 포인트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역작 ‘권력이동(Power Shift)’에서 주장한 내용을 잠시 인용해 보자. 인류 역사의 태동 이후 권력은 ‘힘 있는 자(물리력)’로부터 ‘돈 있는 자(부)’에게로 이동했다. 그리고 권력은 미래로 갈수록 지식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원래 물리력과 부는 모두 강자와 부자의 소유물이지만 지식은 약자와 가난한 자도 소유할 수 있고 이것은 지식이 갖는 가장 혁명적인 특징이다.

지식은 강자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한다. 한편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21세기에는 소유한 자가 아닌 다양한 정보와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오늘날 이 두 거장의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차별화된 전문적인 지식과 네트워크 역량을 모두 갖춘 노동자들이 점증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인재 전쟁’의 표적이 된 핵심 인재이기도 한다. 여기 조직 내 인구 비율이 현격하게 높아지고 각종 사회 연결망에서 무시하지 못할 발언권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밀레니얼 세대까지 가세하고 있어 기업은 이전처럼 마냥 어깨에 힘주고 ‘갑(甲)’의 자리에만 앉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제는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 더 이상 ‘을(乙)’의 존재가 아닌 그들을 유연하게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과거와 달리 기업의 경영진은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조직 관리 차원에서는 의외로 포인트를 놓치는 경향이 종종 있어 보인다. 세 가지 관점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기를 당부한다.

첫째, 인력 선발의 의사 결정 지표를 더 날카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항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들만의 타협 없는 절대 기준을 갖고 인력을 선발하는 기업을 찾아내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무엇보다 선발하고자 하는 사람과 새로운 직무와의 ‘적합도’, 조직 문화와 직속 관리자를 포함한 비즈니스 이해관계 당사자 간의 ‘케미(chemistry)’는 꼭 확실히 사전에 재차 체크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왜 하필 이 두 가지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서로 나중에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이 맞아떨어질 때 구성원의 몰입도가 높아지고 성과도 높아진다. 그리고 행복감이 높아져 직무 만족도도 향상되고 자신의 커리어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생길 수도 있다. 당연히 이것은 기업 성장이라는 혜택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내부 인력이건 외부 인력이건 확신이 서지 않음에도 직원을 선발한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금전적·시간적으로 재투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근무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일하는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고 인력 구성이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기업은 유연한 사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하는 공간의 확장성과 일하는 방식의 유연성이 가속화됐다. 또한 다양한 인력의 구성원 대부분들은 확장되고 유연해진 옵션을 선호하고 있다.

공간을 초월해 따로 또 같이 일하고 원하는 시간을 정해 일하는 현실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정답’이 여러 개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하나의 정답을 강조하는 순간 기업은 ‘꼰대’가 될 수 있고 ‘인재’를 놓칠 수도 있고 결국 경쟁에서 고배를 마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구성원들의 능력을 더 업그레이드하고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줘야 한다. 구성원들의 역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기존의 기업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개인들의 브랜드 가치를 고양시켜 준다는 발상은 참으로 낯설고도 역설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더 강해질 수 있고 더 우수한 인력이 유입될 수 있다. 외부의 인재들이 찾아오는 기업이 될 수 있다.

‘고분고분하게 내 말 잘 들으면 먹고살게는 해 줄게’라는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

‘전력의 하향평준화’만 부추길 뿐이다. 우리 기업의 인력 육성 접근 방법에도 이제 변혁이 요구된다. 키워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권력의 균형이 이뤄질 것이다.

◆잘 이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해


마지막으로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만날 때보다 더 잘 헤어져야만 하는 것은 꼭 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기업과 구성원 간의 관계 역시 그렇다.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구분을 떠나 퇴사라는 사건은 이제 너무도 흔히 접하게 되는 직장 생활의 한 단면이 됐다.

그렇게 타협할 수 없는 선발 지표를 통해 신중하게 인력을 고용했고 유연한 근무의 패러다임을 수용해 일의 효율성 못지않게 직원들의 정신적·신체적 만족도 헤아려 줬고 역량을 개발시켜 주며 개인의 커리어 완성에 도움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언젠가는 기업을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서로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죄인의 감정을 갖지 않도록, 떠날 때 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남은 자들을 더 몰입하게 하고 결속시킬 것이다. 또한 시장에서 진정한 강자로서 해당 기업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기업의 우군이 될 것이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재회할 수도 있다.

정치인이 민심의 이반을 두려워하듯 경영자 역시 구성원의 동요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비록 기업과 노동자는 여전히 갑과 을의 고용 형태로 맺어진 관계다.

하지만 조직 내 구성원들의 정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기본적 경영 지표까지는 달성할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성장과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는 요원할 것이다. 그것이 이 이상한 ‘신(新) 권력 이동’ 시대에 우리들이 끌어안아야만 할 현실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2호(2020.06.20 ~ 2020.06.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