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실감나는 디지털 영상으로 세계적 화제…9월 제주에 상설 전시관 ‘아르떼 뮤지엄’ 오픈
박리다매 아닌 예술적 완성도로 승부…‘삼성역 파도’ 만든 디스트릭트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실감 나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로 외신 등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기업이 있다. 최근 삼성동 ‘파도(WAVE)’로 유명세를 탄 디스트릭트(d’strict)다.

디자인(Design)과 엄격하게(Strictly)의 합성어인 디스트릭트(d’strict)의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엄격하게 디자인하는 철학을 뿌리 깊게 공유하는 곳이다.

이성호 디스트릭트 대표는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국내외 기업과 현대 미술계에서까지 협업 제안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의 핵심 역량인 크리에이터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도심 속 파도, ‘코로나 블루’를 씻다
WAVE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광장 앞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매 시각 정시와 30분이 되면 약 1분간 파도가 몰아친다. 이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해외로 퍼졌고 CNN·워싱턴포스트·로이터 등은 “화면 표면에 충돌하기 직전에 2차원으로 감싼 디스플레이가 마치 탱크처럼 보인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고 호평했다.

도심 속 파도는 ‘코로나 블루’와 무더위로 지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가로 81m, 세로 20m 크기(농구장 4개 면적)의 대형 전광판에 8K 초고해상도로 펼쳐진다. 입방체 유리통처럼 보이지만 이 전광판은 ‘ㄴ’자 평면이다. 디스트릭트는 가상의 파도가 현실 공간과 만나 평범한 일상에 놀라움을 주는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아나몰픽 기법’을 사용했다.

아나몰픽은 ‘일그러져 보이는 상’이라는 뜻으로,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입체감을 구현하는 표현 기법이다. 어떤 시점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하나의 방향으로 홀쭉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평면으로 펼쳐 그린 주사위 그림이 방향을 돌렸을 때 실제 주사위처럼 보이는 착시 미술을 떠올릴 수 있다. 디스트릭트는 이 원리를 이용해 두 면 안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파도가 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제작 기간은 4개월, 총 4명의 인력이 투입된 작업이었다. 아마몰픽 기법은 특정 시점에서 봤을 때에는 입체감이 뛰어나지만 그 외에는 콘텐츠가 왜곡돼 보이는 한계를 갖는다. 지희정 디스트릭트 팀장은 “콘텐츠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천장 구조를 단순화해 파도에 집중하게 했고 가상의 유리벽(유리 그리드)을 만들어 파도 움직임에 따라 벽면이 젖는 효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 진짜 같은 파도를 위해 벽에 부딪치는 빈도나 강도 등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디스트릭트는 특히 작업의 완성도에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결과물을 내놓지 말라’는 디자인 철학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는 회사를 창업한 고(故) 최은석 대표게서 유래된 것이다. 2004년 국내를 대표하는 1세대 웹디자이너 세 명이 만든 디스트릭트는 ‘디자이너라면 미치도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마음(감성)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철학을 곧 디스트릭트의 정체성으로 확립했다.
박리다매 아닌 예술적 완성도로 승부…‘삼성역 파도’ 만든 디스트릭트

세계 최초 4D 테마파크 ‘라이브파크’ 만들어
WAVE를 통해 알려지기 전에도 디스트릭트는 세계 최초의 시도들을 해왔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발맞춘 시도들이었다. 이곳은 2004년 설립 이후 2008년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웹사이트와 모바일 서비스를 제작을 담당하는 ‘웹에이전시’였다. 이후 2009년부터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출현에 따라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로 사업 영역을 개척해 왔다.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프로젝션 매핑 등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마케팅 서비스를 선보였다.

2012년 세계 최초 디지털 테마파크는 ‘라이브파크’는 그중 손꼽히는 프로젝트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이 각광 받기 한참 전 당시 150억원을 투자해 4D 엔터테인먼트 장르를 국내에 최초로 선보였다. 비록 흥행에 참패하고 이 때문에 당시 대표가 과로사하는 등 회사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핵심 인력과 혁신 기술은 남아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디스트릭트는 라이브파크 이후 ‘공간 기반 디지털 경험 디자인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 전시관·체험관·테마파크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대상으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결합해 사용자 경험을 연출한다. 서울 강서구 마곡에 신축된 넥센타이어의 연구·개발(R&D)센터 ‘넥센 유니버시티(Nexen UniverCity)’ 내 1층 로비에 ‘더 인피니티 월’을 구축한 게 대표적이다. 올해 세계 가전 전시회(CES)에서는 SK그룹과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핵심 기술 전시 부스에 LED 파사드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디스트릭트는 오는 9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에 국내 최대 규모의 상설 미디어 전시관인 ‘아르떼 뮤지엄’을 오픈할 계획이다. 2012년 라이브파크의 실패 이후 8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다.

또한 WAVE에 이어 도심 속에서 관람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올해 중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초현실주의 콘셉트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소프트 보디(Soft Body)’, 거대한 고래가 스크린을 유영하는 ‘웨일(Whale)’ 등 디지털 미디어와 만났을 때 ‘이질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자연’ 소재의 콘텐츠들을 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에이스트릭트(a’strict)라는 이름으로 미술 시장에도 진출한다. 현재 국제갤러리와 함께 WAVE를 미술관에 전시하고 유통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에이스트릭트 서브 브랜드로 미디어아트 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디스트릭트는 세상에 없던 디지털 콘텐츠를 늘려 나가고 있다.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 콘텐츠를 확보해 라이선싱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 대표는 “대부분의 콘텐츠 제작사들은 박리다매 방식으로 염가의 프로젝트를 여러 개 수주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 같은 방식에선 예술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자부심을 키울 수 없다”며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경영을 다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리다매 아닌 예술적 완성도로 승부…‘삼성역 파도’ 만든 디스트릭트
박리다매 아닌 예술적 완성도로 승부…‘삼성역 파도’ 만든 디스트릭트
박리다매 아닌 예술적 완성도로 승부…‘삼성역 파도’ 만든 디스트릭트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