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여 만에 금값 온스당 1800달러 돌파…월가 “더 오를 가능성 있어”
각국의 ‘머니 프린팅’ 속 급등하는 금값 [글로벌 현장]
[뉴욕(미국) = 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가 신음하는 사이 금값이 급등세를 타고 있다. 2011년 말 이후 8여년 만에 온스(31.1g)당 1800달러(약 216만원)를 돌파한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미국 등의 경기 회복세가 흔들리면서 안전 자산 수요가 커진 덕분이다.

또 경기 침체에 대응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통화를 찍어 내고 있는 것도 실물 자산인 금값을 부추기는 요소로 분석된다.

지난 6월 3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서 8월 인도분 금은 전날보다 온스당 1.1%(19.30달러) 오른 1800.5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이후 최고가이고 2011년 9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온스당 1920.70달러에 비해 약 6.2% 낮은 것이다. 이날 장중 한때 1801.30달러까지 올랐다. 금값은 올 들어 18.4%, 지난 1년간 26.6% 급등했다.
◆경제 위기 때마다 부각된 안전 자산

금은 2008~2011년 당시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QE)에 돌입하자 온스당 2000달러(약 240만원) 선을 위협했지만 이후 경기가 살아나자 길고 긴 조정을 받아 왔다. 2011년 이후 세 차례나 1800달러 저항선 돌파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거의 10년 만에 다시 급등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월가에서는 금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20일 향후 12개월 금값 예상치를 온스당 1800달러에서 온스당 2000달러로 높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며 “저항선인 1900달러를 넘으면 사상 최고치를 넘어 2114~2296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금 매수(롱) 포지션을 보면 요즘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투자자들은 왜 금에 돈을 묻고 있을까. 금은 경제 위기 때마다 몸값을 높여 온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다. 올 들어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단기간에 글로벌 경기가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특히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은 5월부터 소폭 낮아지던 감염률 추세가 6월 중순부터 다시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 1일 하루 신규 확진자는 사상 최대인 5만 명 선을 돌파했고 캘리포니아 주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등 19개 카운티에 대해 최소한 3주간 식당·술집·영화관 등 모든 실내 영업 활동을 중단하도록 명령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텍사스·플로리다·애리조나 등 4개 주는 경제 재개 조치를 되돌리고 있고 워싱턴·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 10개 주는 계획된 경제 재가동을 중단했다. 문제는 이들 주가 대부분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주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인구의 40% 이상이 다시 경제 가동 중단의 영향권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이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군사 등 곳곳에서 심화되고 있는 점,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모두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는 요소로 꼽힌다.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금과 미 달러화, 미 국채 등 안전 자산 가운데 금이 가장 마지막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침체에 대응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있는 것도 금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무제한 QE를 선언했다. 3월 초 4조2000억 달러(약 5040조원) 수준이던 자산은 6월 말 7조2000억 달러(약 864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급등했다.

특히 6월 중순부터는 금기로 여겨지던 개별 회사채 매입에까지 뛰어들었다. 지난 6월 15일부터 ‘세컨더리 마켓 기업신용기구(SMCCF)’를 통해 유통 시장에서 AT&T·월마트·필립모리스·코카콜라 등 수십여 개 기업의 회사채를 사들였고 6월 29일부터는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신용기구(PMCCF)’를 통해 발행 시장에서 개별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다. SMCCF의 매입 한도는 2500억 달러(약 300조원), PMCCF는 5000억 달러(약 600조원)다.
◆월가 “경기 회복되면 인플레이션 고개 들 것”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6월 30일 의회 증언에서 “앞으로의 경로는 필요한 만큼 구제를 제공하고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방 정부의 정책 행동에 달렸다”면서 “어떤 형태의 부양책도 너무 일찍 거둬들여선 안 된다”고 당부할 정도로 부양책에 적극적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도 “7월에 추가 부양책을 위해 초당적으로 일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추가 구제책은 특히 팬데믹(세계적 유행)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특정 업종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낸다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달러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재정 적자 급증, 저축률 감소 등에 따라 달러가 조만간 주요 통화 대비 35% 정도 절하될 수 있다”며 “이는 조만간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는 당장 달러가 무너지고 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으로 보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 Fed는 인플레이션이 2022년에나 1.7%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인플레연동국채(TIPS)의 수익률을 기반으로 한 인플레이션도 향후 30년간 1.5%, 향후 5년간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시장이 인플레 확률을 낮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고 Fed가 첫 QE에 나섰을 때도 인플레 우려가 불거졌었다. 일부 투자자들이 인플레에 베팅했지만 올해까지도 그런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QE 1~3을 넘어서는 천문학적 돈이 풀리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일본과 신흥국들도 연일 금리를 낮추고 QE를 실시하고 있다. 각국의 정치권은 이런 중앙은행들의 ‘머니 프린팅’에 중독됐다. 정치권은 더 많은 통화를 요구하고 있고 중앙은행도 더 이상 이런 요구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이다. 짐바브웨가 그랬고 베네수엘라가 그렇다.
미국의 총통화(M₂)는 지난 3월 15조 달러에서 7월 초 18조 달러대로 확대됐다. 아직은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돈이 돌지 않아 유통 속도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면 돈의 유통 속도는 빨라지기 마련이다.

월가에서는 1~2년 내로 경기가 회복되면서 인플레가 고개를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밥 프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리플레이션에 베팅하고 있다”면서 금과 TIPS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 Fed가 금리를 높이는 등 긴축에 나서 인플레를 잡아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 2014년 이후 Fed가 양적 긴축(QT)을 통해 1조 달러 정도의 자산을 회수하는 데도 금융 시장이 흔들리는 등 온갖 혼란이 발생했다.

일부에선 각국 정부가 결국 인플레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위기에 쌓인 천문학적인 빚을 갚으려면 뿌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경기 하강을 부르거나 유권자들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빚을 정상적으로 다 갚은 정부는 거의 없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막대한 규모의 전쟁 부채를 갚기 어려워지자 물가 상승에도 Fed를 압박해 6년간 기준금리를 물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인플레로 인해 실질 채무 부담이 저절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를 금융 리프레션(financial repression)이라고 부른다.

월가 관계자는 “다만 금과 TIPS 투자는 투자업계의 주류는 아니다”며 “헤지 차원에서 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지 짧은 기간에 큰 수익을 남기기 위해 투자할 만한 자산은 아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4호(2020.07.04 ~ 2020.07.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