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어학 실력으로 서비스 질 달라져”…다른 자격 수당도 업무에 따라 포함 가능
통상임금으로 인정된 항공사 승무원의 ‘어학수당’
국제선 승무원들이 외국어 시험을 치른 후 그 등급에 따라 받는 ‘어학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통상임금은 회사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인 급여를 뜻한다. 즉 수당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지급됐고 같은 조건의 노동자에게 모두 지급됐고 노동에 대한 업적·성과 등과 상관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영어·일본어·중국어 공인 어학 자격시험 취득 점수와 구술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캐빈어학수당’을 줬다.


어학 자격 1급 소지자에게는 3만원, 2급 소지자에게는 2만원, 3급 소지자에게는 1만원씩을 매월 지급하는 식이다.



원고인 이 모 씨 등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승무원들은 어학 수당과 함께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선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지만 어학 수당은 다르다고 판단했다. 2심에선 1심의 판단을 대부분 유지하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아시아나항공의 부담이 크게 늘어 ‘신의 성실의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신의 성실의 원칙은 서로 상대의 이익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회사에 너무 부담을 주면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져 회사 측에나 노동자 측에나 좋지 않으니 서로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2심과 달리 어학 수당 역시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신의칙’ 강조한 2심



아시아나항공은 이 씨 등 승무원들과 맺은 근로 계약에서 기본급·자격수당·항공기술수당·교통보조비·직무수당·근속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했다. 월 소정 노동시간은 226시간으로 시간급 통상임금을 계산했고 이후 이에 따른 휴일수당과 연장수당·야간수당 등을 지급했다.



원고인 A 씨 등은 기존 포함된 수당 외 상여금과 캐빈어학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하며 시간급 통상임금을 계산하기 위한 월 소정 노동시간은 단체협약 등에서 정한 209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가 실시하는 휴일 대체 제도는 단체협약에 근거가 없고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위법한 것이므로 휴일 수당을 지급하는 게 맞는다며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해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1심에선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어학 수당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임금을 ‘사용자가 노동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했다.


또 통상임금은 그 임금이 소정 노동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금품 중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캐빈어학수당은 그 수당을 노동자에게 줄지 말지 그리고 주더라도 얼마를 줄지가 개별 노동자들의 승급 시기와 치러지는 시험 성적에 따라 달라졌다”며 “고정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려워 통상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상여금에 대해서는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액이 확정돼 있어 노동자에게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일정한 노동시간을 채운 모든 노동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며 노동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 노동을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예정돼 있는 고정적인 임금”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원심 판결 뒤집어



2심에선 상여금이나 캐빈어학수당에 대한 1심 판결을 대부분 유지하면서도 ‘신의칙’을 강조했다. 회사의 경영난을 감안하더라도 서로 양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하지 못한 이익을 추구하면 사용자에게 지나친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된다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이는 결국 노동자 측에게까지 그 피해가 가게 되고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긴 하되 이는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아시아나항공의 항변이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상여금은 기본급에 근속수당을 합한 연 600%에 달하는 금액”이라며 “통상임금에 넣어 계산하면 노사 합의로 정해 놓은 액수를 훌쩍 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실질 임금 인상률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통상임금 액수가 40% 이상 증가한다”며 “노동자들이 추가 법정 수당을 받으면 임금 인상률은 노사가 상호 양해한 임금 인상률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법원은 1·2심에서 동일하게 판결했던 어학 수당 부분을 뒤집었다. 원심과 달리 어학 수당도 통상임금에 집어넣어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외국어 어학 자격 등급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외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외국인 고객 응대와 같은 노동의 질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며 “정기적·계속적으로 지급된 캐빈어학수당이 오로지 동기부여와 격려 차원에서만 지급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어학 수당을 준 것이 승무원들의 노동 가치 평가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성질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들어오는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것도 포함된다”며 “자격 수당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지급할 때 자격 유무가 노동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돋보기] 한국GM·쌍용차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적용된 ‘신의칙’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사건에서 등장했던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은 7월 9일 한국GM과 쌍용차 소송에서도 등장했다.


신의칙은 통상임금을 둘러싼 분쟁에서 노동자가 요구하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아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 있거나 기업의 존속에 위기를 초래할 때 지급 의무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을 말한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국GM의 노동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7월 9일 확정지었다.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을 포함해 법정 수당 부족분을 지급해 달라는 노동자의 주장은 신의칙에 위반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이 사건 원고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정기 상여금과 하계 휴가비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회사에 그 차액을 지급해 달라고도 주장했다. 원고 5명의 청구액 합계는 약 1억5600만원이었다.



원심은 신의칙을 적용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정기 상여금이 연 700%나 되는데 이를 포함해 법정 수당을 추가로 달라는 것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며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회사의 부채비율이 다른 회사에 비해 상당히 높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 회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는 매년 지출하는 연구·개발비가 약 6000억원에 달하는데 법정 수당을 추가 지급하는데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쓰면 연구·개발이 중단될 수도 있다”며 “원고들의 청구는 신의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은 신의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 1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도 신의칙을 적용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들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계산한 뒤 법정 수당의 차액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청구액 합계는 약 5억1200만원이었다.



원심은 “피고 회사에 상여금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 수당과 퇴직금 등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라고 하면 피고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의 법정 수당과 퇴직금 청구는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역시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그대로 수용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7호(2020.07.27 ~ 2020.08.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