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국에 긴급 사태를 선포한 지난 4월 1만여 곳에 달하는 일본 이자카야(비어홀 포함)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91.4% 줄었다. 일반 시민들의 외출을 제한하고 이자카야의 휴업을 유도한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충격적인 수치에 자료를 집계하는 일본푸드서비스협회는 ‘괴멸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5월 매출 역시 90% 급감했다. 긴급 사태가 해제된 6월 들어 이자카야들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매출은 2019년 6월의 39.9%에 불과했다.
◆한 달 만에 440개 이자카야 사라져
이자카야를 찾은 손님은 3월 40.1% 급감한 것을 시작으로 4월 마이너스 89.5%, 5월 마이너스 88.4%, 6월 마이너스 58.7%로 거의 증발하다시피 했다. 그날그날의 매출로 운전 자금을 충당하는 이자카야가 버텨내기에는 무리였다.
2018년 말 기준 전국의 이자카야는 1만189개였다. 올해 4월 전국의 이자카야는 단숨에 4.3%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440여 개의 이자카야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7월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자 도쿄도는 8월 3일부터 31일까지 이자카야의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단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밤 10시부터 막차 시간까지는 매출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골든타임’이다. 이에 따라 8월 이후 문을 닫는 이자카야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몸집이 큰 이자카야 체인들이 먼저 점포 수를 줄이고 나섰다.
이자카야 체인 아마타로와 와타미는 각각 전체 점포의 10%가 넘는 196곳과 65곳의 문을 닫기로 했다. 와타나베 미키 와타미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 점포의 30%에 달하는 150곳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경기가 나쁘면 이자카야 수는 줄었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자카야는 코로나19 사태로 업종 자체가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소비자들의 생활 양식이 크게 바뀌면서 눈치 빠른 이자카야 체인들부터 서둘러 이자카야업계를 떠나고 있다.
이자카야 체인 쓰카다농장 235개점을 운영하는 에이피컴퍼니는 지난 6월 도쿄 시부야에 쓰카다식당이라는 별도의 점포를 열었다. 쓰카다식당의 주력은 점심 영업이다. 산지 직송 시골 닭으로 요리한 ‘치킨난반’ 등 8개의 정식 메뉴를 제공한다.
오후 4시부터 술과 안주도 팔지만 이자카야가 아니라 정식집이라고 강조하기 위해 간판도 쓰카다농장에서 쓰카다식당으로 바꿔 달았다. 에이피컴퍼니는 아예 업종을 이자카야에서 점심 영업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으로 바꿀 계획이다. 10년에 걸쳐 매년 5~10개씩의 쓰카다농장을 쓰카다식당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자카야 체인 쇼야 616개점을 운영하는 다이쇼그룹도 전체의 60%에 달하는 영업점에서 점심 영업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의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는 심야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쇼야가 점심 영업에 나선 것은 ‘퇴근길 한잔’ 수요가 사라진 반면 낮 시간대의 회복 속도가 그나마 빨라서다.
모바일 결제 정보 회사 포스타스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점심시간대(오전 11~오후 2시) 고객 수는 전년 같은 기간의 67%까지 회복됐지만 저녁시간대(오후 5~10시)는 52%에 그쳤다.
이자카야 체인 긴노쿠라를 운영하는 산코마케팅푸드는 점심시간 동안 영업점을 업무 공간으로 임대한다. 재택근무 수요가 늘어나자 낮 시간대 업종을 이자카야에서 공유 오피스로 한시 전환한 셈이다. 가게의 대부분이 개별실 구조라는 특성을 활용한 마케팅이다. ‘공유 오피스 긴노쿠라’ 이용객들은 외부 음식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매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와타미는 닭튀김 전문점 가라아게노텐사이(닭튀김의 천재라는 의미)를 시작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길목에 자리 잡은 이자카야와 달리 가라아게노텐사이는 지역 상점가에 자리하고 있다. 주부와 학생으로까지 소비자층을 넓히기 위한 입지다. 7월부터 배달 서비스도 시작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배달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약 300만 엔(약 3379만원)인 월간 손익분기점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이자카야 체인들이 업계 탈출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자카야 시장이 사라진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다. 요네야마 히사 다이쇼그룹 사장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직장 회식이 사라질 것”이라며 “고객들의 기호도 ‘단숨에 취하겠다’는 것보다 ‘제대로 술맛을 음미하자’로 바뀌고 있어 이자카야 업태를 졸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자카야는 기본적으로 박리다매형이다. 매출이 20%만 줄어도 적자가 난다. 변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사에 직결되는 문제다. 아마타로 운영사 코로와이드의 노지리 고헤이 사장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애프터 파이브(after5 : 퇴근시간 이후)’의 생활 양식이 변했다”며 “이자카야의 매출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산(第三) 맥주의 판매량이 2004년 시판 이후 처음으로 맥주를 뒤집은 것은 소비자들의 생활 양식과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신(新) 장르’라고도 불리는 다이산은 맥주의 주원료인 홉을 전혀 쓰지 않고 맥주 맛을 내는 알코올음료다. 올 상반기 알코올음료 시장에서 다이산의 비율은 49%로 8%포인트 상승해 38%로 같은 기간 8%포인트 하락한 맥주를 뛰어넘었다. 다이산업계 1위 상품인 혼기린은 16개월 연속 판매량이 증가했다.
외출 제한과 대규모 휴업으로 이자카야에 주로 납품하는 업소용 맥주 판매가 격감하면서 맥주 맛 알코올음료에 원조가 1위 자리를 빼앗기는 이변이 일어났다. 아사히·기린·삿포로·산토리 등 대형 맥주 4개사의 4~5월 업소용 맥주 매출은 80~90% 줄었다.
한 맥주회사 임원은 “업소용 맥주의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주세 제도는 맥주에 들어가는 홉의 양에 비례해 세금을 거둔다. 홉을 쓰지 않는 다이산은 가격도 싸다. 350mL짜리 맥주 1캔의 소비자 가격이 218엔(약 2455원) 전후인 반면 같은 양의 다이산은 127엔 전후로 캔당 90엔(약 1014원)의 차이가 난다. 코로나19로 경기가 급속이 냉각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집술’과 ‘혼술’이 늘면서 1000원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 회사인 JCB소비나우에 따르면 긴급 사태가 선언된 4월 1~15일 이자카야의 신용카드 사용 규모는 75% 감소한 반면 주류 판매점의 사용 규모는 34% 늘었다. 아사히와 기린 등 양대 맥주회사들도 다이산 신제품을 집중 투입하고 TV 광고를 대폭 늘리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의 주세법이 개정되는 10월부터 다이산의 가격은 캔당 10엔 정도 오른다. 맥주와 다이산의 주세가 같아지는 2026년 10월이면 가격 메리트는 더욱 줄어든다. 그러자 알코올 도수가 맥주보다 높고 값은 캔당 119엔에 불과한 주하이(일본 소주에 탄산음료를 섞은 술)로 수요가 몰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류업계에서는 2026년께 주하이의 판매량이 2019년보다 40% 증가해 맥주계 음료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9호(2020.08.08 ~ 2020.08.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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