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밀레니얼, 재테크에 빠지다] - 잔돈 투자로 존재감 키운 2030들
-‘디지털 플랫폼’이 가장 강력한 무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에게도 ‘돈을 불릴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활짝 열린 재테크 시장의 문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쏟아져 들어오며 글로벌 자산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동학개미 군단의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층이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로빈후드’, 중국에서는 ‘청년부추’가 증시를 달구는 중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글로벌 금융 시장을 이끄는 주역이다.
‘로빈후드’ ‘청춘부추’… 글로벌 자산 시장 뒤흔든  밀레니얼의 반란

◆‘가치 지향적 투자’가 핵심적 특징


밀레니얼과 Z세대는 역사상 가장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는 재테크 방식 또한 기존 세대와 다르다.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클릭 한 번이면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또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깊은 불황의 그늘을 지나온 밀레니얼 세대에게 ‘경제적 자유’는 그만큼 절실한 문제지만 쟁취하기 어려운 도전이기도 하다.

‘투자자’로서 밀레니얼 세대가 글로벌 자산 시장에 일으키고 있는 변화 또한 이 두 가지 특징과 맞닿아 있다. 골드만삭스·블랙록과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투자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2016년 ‘투자 시장에서의 밀레니얼 효과’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에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물건의 가격’에 더욱 민감하고 ‘빚’을 지는 데 훨씬 조심스럽다. 당장 집이나 차를 ‘소유’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중시하는 특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정보기술(IT)의 발전 또한 ‘자산의 공유’를 더욱 쉽게 만들어 준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세대와 비교해 훨씬 더 ‘가치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 대상을 선택할 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ESG(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지배 구조) 투자가 빠른 속도로 활성화되고 있는 데는 밀레니얼 세대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가치 지향적 투자’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2018년 글로벌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008년 금융 위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재테크 무기가 돼 준 것은 ‘디지털 플랫폼’이다. 목돈이 없어도 소액으로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이른바 ‘짠테크’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짠테크’의 글로벌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에이콘스’는 2012년 설립됐다. 이들의 슬로건은 ‘잔돈을 쌓아 두지 말고 투자하세요’다. 스마트폰 앱에 연동된 카드로 소비자가 결제하면 1달러 미만의 잔돈을 자동으로 모으고 이를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주는 형태다. 에이콘스의 고객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5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20~30대의 밀레니얼 세대다.

중국에서 ‘잔돈 투자’를 이끌고 있는 것은 단연 세계 최대의 머니마켓펀드(MMF)인 위어바오다.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이 운영 중이다. 가입자만 3억 명에 달하는 위어바오의 인기 비결은 투자 금액에 대한 제한을 없앴다는 점이다. 2013년 위어바오 출시 당시만 해도 중국 자산 운용 시장에서 MMF는 주로 부자들과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하던 상품이었다. 하지만 ‘단돈 1원’도 투자가 가능한 위어바오는 그동안 중국 금융 시장에서 소외돼 있었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등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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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반전의 계기’ 돼


밀레니얼 세대가 글로벌 금융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선 데는 코로나19 위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찾아온 위기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흔들리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을 비롯해 기득권층이 내놓은 주식을 무섭도록 사들였고 글로벌 주식 시장은 이들로부터 ‘상승 동력’을 얻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블랙록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 가운데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5년 전과 비교해 45% 정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선봉장에 서 있는 이들이 미국의 ‘로빈후드 투자자’들이다. 로빈후드는 미국의 젊은 층이 즐겨 쓰는 증권 거래 앱이다. 미 스탠퍼드대 출신의 바이주 바트와 블라디미르 테네프가 2013년 창업했다. 이들은 당시 금융 시장의 문제점을 ‘일부 기득권층에만 허용된 시장’이라는 데서 찾았고 그 원인을 ‘건당 10달러에 달하는 수수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인의 자산과 관계없이 모두가 쉽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증권 거래 앱을 목표로 했고 거래 수수료는 물론 등록 예치금 등을 모두 없앴다. 당시 미국의 금융 시장에서 이들의 시도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로빈후드는 ‘밀레니얼 세대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기존 시장의 고정관념을 깼다. 2014년 12월 정식 서비스 론칭 한 달 만에 1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 숫자는 지난해 말 600만 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1300만 명에 달한다.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31세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대부분이 로빈후드를 통해 증권을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로빈후드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자들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로빈후드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미 주식 시장에서 상상 이상의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과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과의 한판 승부다. 지난 5월 후반 아이칸 회장은 렌터카 업체 허츠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허츠는 파산 보호를 신청해 주가가 대폭락한 뒤였다. 아이칸 회장이 허츠를 매각한 가격은 주당 평균 72센트였다. 손해 금액만 18억 달러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아이칸 회장이 ‘던진’ 이 허츠의 주식을 로빈후드들이 빠른 속도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이칸 회장이 허츠를 처분한 5월 22일부터 6월 8일 사이에만 무려 9만 명이 넘는 이들이 로빈후드 앱을 이용해 허츠의 주식을 사들였다. 허츠의 주가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략 2~3주 사이에 400% 넘게 폭등했다. 아이칸 회장의 완패다.

미국에 로빈후드가 있다면 중국엔 청년부추가 있다. 최근 중국 본토와 홍콩 주식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3월 저점 대비 20% 이상 급등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드라마틱한 강세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한 중국 금융 투자업계의 대답은 1억6000만 명에 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시장에 대거 가세하면서 주가 상승 동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들을 일컫는 청년부추는 윗부분을 잘라내도 도 자라나는 부추와 같다는 의미로 중국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중국 1등 증권 기업인 중신증권은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신규 계조 개설 건수가 전달 대비 30%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들이 1990년대생을 일컫는 ‘주링허우’들이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공격적인 투자’에 경고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에도 미국에서는 로빈후드를 통해 주식을 거래했던 한 대학생이 큰돈을 잃은 뒤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글로벌 증시를 이끄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증시의 패러다임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들의 반란이 눈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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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0호(2020.08.17 ~ 2020.08.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