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과도한 약속이나 공약은 피하고 ‘위로의 언어’로 구성원과 대화해야
다가온 뉴 노멀 시대, ‘연결과 집중의 리더십’ 필요하다 [한준기의 경영전략]
[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만약 당신이 남다른 열정과 높은 몰입도로 열심히 일해 왔다면 과거의 기억 저편에는 분명 한두 가지 정도 멋지게 완수한 프로젝트의 잔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밤새워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분량의 수많은 ‘사건 일지’가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최고의 프로젝트로 꼽아야 할지, 최악으로 기록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하게 만든다.

당시 필자가 일하던 회사는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빠져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시장점유율이 곤두박질했다. 덩달아 임직원들의 자신감이나 활력도 사라졌다. 혹시나 했는데 마침내 최고경영자(CEO)마저 경질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베테랑 CEO가 얼마 후 부임했다. 그는 한동안 특별한 어젠다를 논하지 않았다. 위임과 방임의 분위기를 견지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관찰과 파악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사업 개편 그리고 엄청난 ‘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는 무성한 소문만이 불확실성을 가중시켰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프로젝트’를 착수한 시점은 그 무렵이었다. 회사 상황을 그저 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임원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조직 안팎에서는 그들의 이력서가 이미 시장의 헤드헌터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팀장들마저 불확실한 시대에 정해진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지침을 내려야 하느냐며 투덜거렸다. 이런 분위기가 팀원들한테도 미쳤으니 회사는 마치 휴가 시즌에 개점휴업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다.

당시 필자는 약 45일에 걸쳐 높은 성과와 애사심을 겸비한 핵심 인재 30여 명에 대한 일대일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면담은 일과 후 ‘소주 한잔’으로 불가피하게 위장했다.

조직의 리더십 원칙, 문화, 일하는 방식, 비즈니스 방향 등에 대한 ‘무삭제’본의 격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힌 보고서를 CEO에게 전했고 문자 그대로 일파만파의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어려움 없다’ 보고 되풀이되면 위험한 시기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리더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때라고 한숨을 내쉰다. 습관적으로 ‘뉴 노멀’이라는 용어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쓰는 것 같다.

구성원들도 그렇지만 리더들은 얼마나 머리가 복잡하겠는가. 너무나 막연해 보여서일까, 아니면 너무 특별한 것을 기획하고 기대해서일까 이따금 집중력도 잃고 기본기도 놓친다. 이쯤 되면 ‘잘리지 않을 정도만 일하고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만 월급 주는’ ‘웃픈’ 현실이 연출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다.

이럴 때 리더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무관심이다. 위기일수록 리더는 조직의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조직의 온도는 어떤지, 구성원들의 몰입도 수준은 어쩐지, 이상한 징후는 없는지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뉴 노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리더들은 먼저 ‘연결과 집중의 조정자’가 돼야 한다.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조직 내에 심리적·물리적 이탈자가 없는지 체크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특별히 지원해줄 사안이 없다’, ‘무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보고를 계속 되풀이한다면 어쩌면 이때가 가장 위험한 경고등이 켜진 시기인지도 모른다.

리더 본연의 역할을 유기하는 리더십 배임 행위는 다른 그룹으로 도미노 현상처럼 퍼질 수 있고 때로는 엄청난 부메랑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의도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필자의 그 잊지 못할 프로젝트도 신임 CEO와 주주들에게는 ‘최고의 프로젝트’로, 리더들에게는 ‘최악의 프로젝트’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 보고서는 임원 전원을 해임시키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로드맵을 추진해야만 하는 아주 좋은 명분과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뉴 노멀’ 시대에 필요한 다른 중요한 원칙은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자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멋진 일을 덧셈하는 것 못지않게 잘못된 관행의 독소를 뺄셈하는 것이 상황에 따라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사소한 징후들을 꾸준히 체크해야


첫째, ‘가짜 뉴스’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하거나 위기의 시대에는 당연히 ‘카더라’ 통신이나 ‘가짜 뉴스’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다고 이해해 주는 것은 위험하다. 필요하다면 공식적·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분명히 정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유포자를 찾아 통제하는 것이다.

유포자를 찾은 뒤 그 동기까지 밝혀낼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어쩌면 유포자를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리더가 그렇게 액션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

둘째, ‘전쟁의 언어(language of war)’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리더십 연구의 전문가 잔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 인시아드대 교수의 말을 빌리면 요즘 조직의 많은 리더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지금 우리는 전시상황이다’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긴장감과 공포감을 줘 정신 차려 일을 똑바로 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리더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효율성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단계를 넘어서기를 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위로의 언어(language of care)’로 구성원들과 대화하자. ‘우리 함께하자’, ‘당신 옆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라는 말이 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과도한 약속이나 공약은 피해야 한다. 답답한 마음에 구성원들의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과도한 약속이나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직원들은 다 기록하고 녹음하고 그 약속이 이뤄질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히든 어젠다(hidden agenda)’를 갖고 하는 진정성 없는 소통을 범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보수적인 태도가 결과론적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변화와 위기관리에 관한 주제는 아니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상어와 함께 수영하되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법(Swim with the sharks without being eaten alive)’이란 책에서 자수성가한 비즈니스 전문가가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소한 것들이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전부를 의미한다.”

어쩌면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느껴질 지금 이야기가 우리 조직의 전부를 지켜줄지 누가 알겠는가. 사소한 징후를 외면하는 것은 리더의 역할을 내려놓은 것과 같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0호(2020.08.17 ~ 2020.08.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