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는 2014년 비용을 이유로 배터리 자체 생산을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다임러는 8월 16일 다시 자체 자동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2024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다임러 배터리 사업은 외부에서 셀을 공급받아 이를 토대로 배터리 팩과 모듈을 조립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으로부터 셀을 공급받고 있다.
다임러의 자체 배터리 공장은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진델핑엔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 구축될 예정이다. 기존에 S클래스·E클래스·마이바흐를 생산하던 곳이다. 다임러 노조는 그동안 진델핑엔 공장의 S클래스의 시트 생산 시설을 아웃소싱으로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위기로 인력 감축이 예고되자 노사 협의를 통해 S클래스 시트 아웃소싱을 중단하는 대신 기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다임러의 에르군 뤼말리 감사회 위원 및 직원 대표는 “진델핑겐 공장에 배터리 생산 시설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기업, 정부 지원 업고 배터리 생산
다임러뿐만이 아니다. 이미 폭스바겐은 2019년 9월 6일 스웨덴의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에 지분 50%를 출자해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합작사를 설립했다. 노스볼트와 합작해 건설될 폭스바겐의 자체 배터리 공장은 독일 잘츠기터에 완성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폭스바겐은 약 4억5000만 유로를 투자했고 지난 5월 시범용 배터리를 생산했다. 이후 2024년 초부터 리튬이온 배터리를 본격적으로 생산, 연간 16GWh를 달성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포르쉐는 8월 12일 에너지 밀도가 높은 고성능 배터리를 소량 생산하는 전략으로 배터리 생산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포르쉐는 독일 프라운호퍼 실리콘 기술연구소의 자회사인 커스텀셀과 독일 튀빙엔에 배터리셀 합작 공장을 건설한다. 양 사는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 법인 셀포스그룹을 설립하고 신규 배터리 공장에서 포르쉐의 전기 스포츠카용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배터리 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아시아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배터리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탈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는 8월 17일 폭스바겐·BMW와 협력하고 있는 스웨덴 노스볼트 공장에 5억2500만 달러가 조달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자동차 산업의 부흥과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터리 셀 조달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파리기후협약 목표 달성을 위해 매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감소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고 있는 독일로서는 이와 같은 산업 투자가 환경 정책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밖에 독일 연방 교육연구부도 지난 7월 초 2차전지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기 위해 4개 클러스터를 신규로 지정하고 1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인더스트리 4.0’ 방법론을 적용한 혁신적이고 유동적인 생산 설비의 도입과 인공지능(AI), 가상 생산 시스템 등 디지털화를 통해 전지 셀 생산 방식을 최적화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하는 지능형 전지 셀 생산 클러스터, 전지 생애 주기(life cycle) 설계, 효율적인 재활용 기술 개발과 전지 셀 생산 과정에서 회수된 물질의 통합 활용 등을 통해 전체 과정에서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재활용·친환경 전지 클러스터, 전지 상태와 거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지의 2차 활용을 위한 적정 시기와 용도를 파악하는 전지 사용법 정의 클러스터, 전지 성능과 사용 기간 연장에 따른 안전성 제고를 위해 품질 보증을 위한 분석 방법론, 전략과 표준화 방안 연구를 통한 분석과 품질 보증 클러스터가 선정됐다.
뮌헨공대·아헨공대·브라운슈바이크공대 등 독일 명문 공대를 비롯해 칼스루에기술연구소와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이 R&D 사업에 참여한다.
독일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배터리 R&D 지원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EU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름잡는 아시아 기업들을 견제해 정책적으로 상당히 공격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채택 이후 EU와 유럽 각국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강화에 나서고 2015년 폭스바겐 디젤 사태 등에 따라 전기자동차 판매 확대가 배기가스 규제 만족을 위한 필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유럽 각국 또한 전기자동차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고 전기자동차 구매 보조금 지원과 신차 등록세 감면 혜택 제공, 무료 충전 및 주차 등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고 전기차 수요가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게 된다.
◆유럽산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4% 그쳐
전기자동차 시장 조사 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19년 유럽에서 판매된 전기자동차(PEV)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56만4206대다. 전기자동차 판매가 증가함에 따라 유럽 전기자동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전기자동차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배터리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었다.
유럽공과대(EIT)에 따르면 유럽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2500억 유로로 성장하고 약 3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다.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기자동차에 핵심 부가 가치를 차지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반면 유럽산은 4%에 불과하다는 것이 배터리 후발 주자인 EU에는 큰 원동력이 됐다.
EU 집행위원회는 전기차 배터리 원재료 확보에서 핵심 소재 R&D, 제조와 사용 및 재활용까지 자급 생태계 구축을 위해 2017년 유럽배터리연합을 출범시키며 구체적 실행 계획과 함께 이행 점검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0년에도 지속돼 배터리 관련 프로젝트에 상당한 지원을 예고했다.
EU는 호라이즌 2020, 유럽투자은행(EIB), 유럽지역발전기금(ERDF) 등을 통해 배터리 셀 투자 프로젝트에 2020년에만 1억3200만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핀란드·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스웨덴이 참가하는 ‘범유럽 에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기차 배터리 R&D 프로젝트’에 32억 유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원재료 가공, 화학물질 추출, 셀 디자인, 모듈 개발과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의 통합, 재활용 등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가치 사슬 내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R&D에 지원된다. 생산 공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해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폐기물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BMW와 BASF 등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이 중심이 돼 총 17개 기업이 참여하고 유럽 내 70여 개의 기업과 연구소가 협업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추가로 50억 유로의 민간 자금도 투입될 예정이고 2031년을 프로젝트 완료 시기로 잡고 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향후 수년 내 배터리 시장을 두고 아시아와 유럽 기업 간 한판 승부가 예상되는 이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1호(2020.08.22 ~ 2020.08.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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