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자국 우선주의에 코로나19 겹쳐…한국 만의 리더 리스크 관리 필요
‘리더’가 없는 시대…사라진 글로벌 거버넌스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 =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보난자(Bonanza)’ TV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아직도 테마 음악이 흥얼거려질 정도로 열심히 시청했던 기억이 남는다.

‘보난자’는 미국 NBC의 대인기 프로였는데 1959~1973년에 걸쳐 롱런했다. 극 중에 등장하는 서부시대 배경의 3형제와 아버지는 온갖 악에 맞서는 정의의 화신과 같았고 그대로 미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많은 미국인들이 ‘보난자’를 시청하던 중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별 메시지가 전해졌고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소위 닉슨 쇼크다. 미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전면 금지한다는 폭탄선언이었다. 힘 센 자의 갑질과 다를 바 없었다.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는 정의의 ‘보난자’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주의 한적한 마을 브레튼우즈에 전 세계 44개국의 금융 정책 대표들이 모였다. 전후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위한 협정을 도모했는데 세계대전 와중에 유일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주도로 미국의 입맛에 맞게 일방적으로 진행된 회의였다.

영국 대표로 참석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스 케인스도 소장 학자이자 재무부 관료인 해리 화이트 미국 대표에게 완패했다. 결국 금 1온스와 미 달러 35달러의 태환을 기초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시작된다. 이 밖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시스템이 전부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브레튼우즈 체제하의 고정환율제도는 1971년 8월 닉슨 쇼크 때까지 유지됐고 그 후 심한 혼란을 거쳐 1973년부터 변동환율제도가 시작된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이 다급하게 금 태환을 정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초토화됐던 유럽과 일본 경제가 전후에 급속히 부흥하면서 1960년대에 미국은 무역수지·재정수지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다. 직격탄은 월남전 참전에 따른 출혈이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미 달러를 전쟁에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요원했다. 결국 막대한 적자에 따라 엄청난 양의 금이 유출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의 금·달러 태환은 지속 불가능하게 됐고 닉슨 대통령의 긴급 조치가 전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큰형 미국의 일방적이고 급작스러운 조치에 동맹국 동생들의 낭패와 배신감은 엄청났고 비즈니스 세계는 ‘멘붕’에 빠졌다. 정의롭고 신사적인 ‘보난자’ 주인공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시간은 흘러 2016년 미국. 데자뷔가 벌어졌다. 첨단 금융 파워로 잘나가던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일거에 무너지면서 소위 ‘있던 자들’ 미국인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오로지 미국만을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위한 지난 4년간 세계 정치 경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참된 리더가 없는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사태까지 벌어져 글로벌 거버넌스는 실종 상태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는 분명하다. 자기 조직의 안녕만을 따지는 속 좁은 보스가 엉터리 리더가 돼선 안 될 일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주요국들의 상황을 보면 참된 리더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만큼 앞으로의 10년도 비관적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 그것도 분단돼 있고 유례없이 거칠고 핵으로 무장한 북한 정권과 공생 중인 대한민국의 앞날은 지뢰밭이다. 리더 리스크 관리가 국내외적으로 더없이 중요한데 남의 나라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우리만이라도 참된 리더가 필요하다. 건강하고 지혜롭고 정의로우며 이웃과 소통하는 그런 리더 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