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VC 생태계 쥐락펴락…주가 한 달 새 반 토막 났지만 위기 과장됐다는 분석도
소프트뱅크는 과연 ‘위기’일까…손정의 회장이 비전펀드에 올인하는 이유 [글로벌 현장]
[도쿄(일본) = 정영효 특파원]“언젠가 매출을 두부 세듯 ‘1조, 2조’ 하고 세고 싶다.” 1981년 귤 박스를 쌓아 만든 테이블 앞에서 24세의 젊은 기업가는 두 명뿐인 종업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어로 두부를 셀 때 쓰는 단위 1정(丁)과 숫자 1조(兆)의 발음이 ‘초’로 같은 점을 빗댄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39년 후 이 경영인은 실제로 회사의 매출을 두부 10모에 해당하는 ‘10조’까지 늘렸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18 회계연도 말 매출 9조6022억 엔(약 108조원)에 달한다. 첫눈에 가능성을 알아보고 20억 엔을 투자한 중국 알리바바닷컴의 주식 가치는 현재 16조 엔으로 8000배 불어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소프트뱅크의 이야기다.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일본 증시 시가총액 2위(8월 25일 기준 13조1010억 엔)인 소프트뱅크그룹의 영향력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 1400여 개의 자회사와 8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이 회사는 쿠팡을 비롯해 한국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도 활발하게 투자한다. 2017년에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인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를 10조 엔 규모로 출범시켜 글로벌 VC 생태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천당에서 지옥 오간 소프트뱅크

기회를 포착하면 주저 없이 위험을 떠안는 투자 스타일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올해 소프트뱅크그룹의 실적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지난 1분기 일본 기업 사상 최악의 분기 적자(1조4381억 엔)를 내더니 2분기에는 창업 이후 최대 규모인 1조2557억 엔의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8월 5일부터 요미우리신문은 전 세계 투자업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소프트뱅크그룹을 7회에 걸쳐 심층 분석했다. 손 회장이 “머리의 97%를 펀드 투자에 쓰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SVF는 한편으로 그의 명성을 허무는 존재이이기도 하다. 지난해 SVF에서 1조9000억 엔의 손실이 나자 감을 중시하는 ‘손정의식 투자법’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SVF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20여 년 전 3000만 달러(약 356억원)가 부족해 아마존닷컴에 투자하지 못한 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때 자금이 좀 더 있었더라면 지금쯤…’ 같은 변명은 이제 하고 싶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창업 30주년을 맞은 2010년 발표한 ‘신 30년 비전’에서 손 회장은 “30년 이내에 5000개의 계열사 집단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SVF는 그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결정체다. 1981년 ‘일본소프트뱅크’라는 이름으로 창업했을 당시 주력 사업은 개인용 컴퓨터(PC) 소프트웨어 유통업이었다. 머지않아 찾아올 정보화 사회에서 ‘소프트웨어의 은행’이 되겠다는 결의를 담아 붙인 이름이었다.

1990년 ‘일본’을 떼어내고 ‘소프트뱅크’로 사명을 바꿨다. 회사 로고인 두 줄의 은색 실선은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카모토 료마가 이끈 해원대의 깃발에서 본떴다. 결론을 도출할 때 쓰는 수학 기호인 ‘=’의 의미도 있다. 인류가 풀어 나가야 할 과제의 해답을 이끌어 내겠다는 뜻이다.

1996년 야후 일본법인(현 Z홀딩스)을 설립해 일본 최대 포털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시작했고 2006년 영국 보다폰의 일본법인을 인수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손 회장은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24시간 이내에 추가 가격 인하를 발표하겠다”며 양대 이통사인 NTT도코모와 KDDI에 선전 포고했다. 경쟁사의 요금제 개정에 대응해 즉각 가격을 인하한 것만 10회가 넘는다.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자와 직접 담판해 2008년 아이폰의 일본 독점 판매권을 따내기도 했다.
◆아킬레스건은 지나친 ‘손정의 의존도’

사상 최악의 적자가 현실로 다가온 지난 3월 29일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1개월 새 반 토막 나며 2600엔대까지 떨어졌다. 막대한 부채 규모 때문에 소프트뱅크그룹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때문이었다.

자식 같이 키워 온 회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한 손 회장은 핵심 임원회의에서 상장 폐지까지 논의했다. 손 회장의 오른팔인 가토 요시미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부채 비율 대신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한 투자 기업 지분 가치에서 부채를 뺀 ‘주주 가치’를 주목해 달라고 호소한다. 현재 소프트뱅크그룹의 보유 주식 가치는 30조2000억 엔, 여기에서 부채 5조8000억 엔을 뺀 24조4000억 엔이 소프트뱅크그룹의 기업 가치라는 주장이다. 위기가 오면 언제든 보유 주식을 팔 수 있으니 부채 비율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의 SVF 출자 금액은 3조 엔으로 전체 투자 주식의 1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SVF의 위험성도 과장됐다는 게 가토 CFO의 주장이다. 실제 소프트뱅크그룹은 보유 주식을 팔아 1년 내 4조5000억 엔의 현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지 5개월 만인 8월 3일 4조3000억 엔의 현금을 이미 확보했다. 전문가들도 소프트뱅크그룹의 재무 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뱅크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이 굳건하지 못하다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인 페이페이는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업 외에 유일하게 공을 들이는 사업이다. 회원 수 3000만 명 이상, 이용 가능 점포 수 230만 개 이상을 확보한 페이페이는 출범 2년 만에 일본 1위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를 굳혔다. 손 회장은 페이페이를 쇼핑부터 금융 서비스까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앱)에 담은 슈퍼 앱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계열 금융회사의 사명을 ‘페이페이’로 통일시키고 내년 3월에는 일본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메신저인 라인과 통합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소프트뱅크그룹은 통합 야후-라인에 1000억 엔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을 계획이지만 글로벌 경쟁사 아마존닷컴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다나카 미치아키 릿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소매점과 은행 서비스가 견고한 일본에서는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 자체가 낮다”고 지적했다. 매년 5000억~1조 엔을 벌어들이며 그룹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이동통신 자회사 소프트뱅크도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3대 이통사에 대해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손 회장에 대한 의존도다. 손 회장이 열아홉 살 때 만든 ‘인생 50년 계획’엔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자금을 모으며 40대에 승부를 걸어 50대에 사업을 완성한 후 60대에 승계한다고 돼 있다. 지난 8월 11일 63세가 된 손 회장은 올해 주주 총회에서 70대에도 계속 회사를 이끌 의사가 있다고 내비쳤다.

2014년 후계자 후보로 영입된 구글 출신의 니케시 아로라는 2년 만에 300억 엔이 넘는 퇴직금을 챙겨 회사를 떠났다.최근 들어서는 야나기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10년 이상 소프트뱅크그룹의 사외이사를 맡아 왔던 경영인들이 회사를 떠났다. 손 회장에게 강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올해 주주 총회에서 사외이사를 4명으로 두 배 늘렸지만 ‘손 회장 없는 소프트뱅크’에 대한 안팎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hug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