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反조현범 연합 구축한 조현식·조희경 남매
-후계 결정 뒤집으려 아버지 정신 건강에 문제 제기
-경영권 둘러싼 ‘남매의 난’ 본격화
‘재벌가 분쟁 전문’ 로펌 선임한 한국타이어 장남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재계 순위 43위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오너 2세들의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하면서 ‘남매의 난’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국내 최대 타이어 업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30.67%)·한국아트라스비엑스(31.13%)·한국네트웍스(40%)·한국카앤라이프(100%) 등을 자회사로 둔 지주사다.

장남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이 각각 지주사와 타이어 사업(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을 맡아 형제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조 회장이 지난 6월 보유하고 있던 전체 지분을 차남인 조 사장에게 넘기며 조 사장을 후계자로 공식 선언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재벌가 분쟁 전문’ 로펌 선임한 한국타이어 장남

◆ 차남 조현범 사장, 父 지분 인수해 최대 주주로


조 회장은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형태로 자신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2194만2693주), 2400억원 상당을 차남인 조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에 따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차남 승계가 확정되면서 3세들이 이어 오던 ‘형제 경영’ 체제가 깨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3남매가 연대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조 부회장(19.32%)과 누나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0.83%) 등 세 명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30.97%에 불과해 조 사장(42.9%)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판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10.82%의 지분을 보유한 조희원 씨는 “본인은 누구 한 명의 편이 아니다”며 6월 30일 회사에 공식 방침을 전달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인물은 장녀 조희경 이사장이었다. 조 이사장이 7월 30일 “(아버지가)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결정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서울가정법원에 성년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7월 31일 성명문을 통해 “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내 건강에는 이상이 없고 15년 전부터 조 사장에게 이미 실질적인 경영을 맡겨 왔으며 전부터 최대 주주로 찍어 뒀다”고 반박했다. 조 회장의 성명문 발표 이후 남매간 경영권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조 이사장에 이어 8월 25일 조 부회장이 조 회장의 성년 후견 심판 절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오너 3세 간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다.

◆ 장남 조현식 부회장, 누나의 반격에 동참

조 부회장은 이번 경영권 분쟁 관련 대응을 위해 재벌가 재산·상속 관련 분쟁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원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그는 법무법인 원을 통해 “아버지 조양래 회장에 대한 건강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조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한 논란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룹과 주주, 임직원의 이익을 위해서도 법적 절차 내에서 전문가 의견에 따라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진행 중인 성년 후견 심판 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성년 후견은 질병·장애·고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를 혼자 처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본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다. 성년 후견 심판 청구는 본인·배우자·4촌 이내의 친족·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청구할 수 있다.

조 이사장의 성년 후견 심판 청구에 따라 조 회장은 향후 법원에 출석해 재판부 심문을 받고 의사의 감정을 통해 정신 상태를 확인받아야 한다. 법원은 조 회장을 직접 심문한 결과와 전문 감정인(의사)의 진단, 기존 진료 기록 등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성년 후견 제도는 장애·질병·고령으로 인한 의사 무능력자를 보호하는 취지의 제도지만 재계에서는 가족 간 재산 분할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데 핵심 무기로 자주 등장한다.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고(故) 신격호 전 명예회장의 정신 건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2015년 12월 신 전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 신정숙 씨가 법원에 오빠의 성년 후견 지정을 요청하며 주목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조 이사장이 청구한 성년 후견 개시 심판 청구에 받아들여져도 기존에 조 회장이 조 사장에게 지분을 양도한 결정 자체를 번복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향후 상속 등 재산 처리에 대한 의사 결정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변수는 조 사장의 재판 결과다. 조 사장은 지난해 말 협력 업체에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2심 재판을 앞두고 6월 23일 대표이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향후 경영 활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경영진은 회사 경영이 불가능하므로 재판 결과로 인해 조 사장의 그룹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다.


[돋보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태로 본 ‘골육상잔’의 재계 경영권 분쟁사
‘재벌가 분쟁 전문’ 로펌 선임한 한국타이어 장남
재계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친족 간 재산·상속 관련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남매의 난’을 비롯해 삼성·두산·효성·현대·롯데 등에서도 ‘형제의 난’이 벌어진 바 있다.

근래 일어난 재벌가 경영권 분쟁 이슈로는 한진그룹의 ‘남매의 난’이 대표적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타계 이후 경영권을 물려받은 조원태 회장에게 대항해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KCGI·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만들어 한 차례 충돌했지만 조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된 상태다.

특히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이번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법률 대리인을 한진그룹 ‘남매의 난’에서 조현아 전 대한한공 부사장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원을 선임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일각에서 조 부회장이 성년 후견 개시 심판 청구뿐만 아니라 법원의 결정 이후 벌어질 경영권 분쟁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조 부회장이 선임한 법무법인 원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중견 로펌으로, 재벌가 이혼·상속·경영권 분쟁에 전문성이 강한 곳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이혼 소송, 삼성가 상속 사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사건 등을 맡았고 다수의 사건에서 승소했다. 또 성년 후견 분야에서도 유명하다. 롯데그룹 신 전 명예회장의 한정 후견인으로 지정됐던 사단법인 선은 법무법인 원이 공익 사업을 위해 2013년 별도로 설립한 법인이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3호(2020.09.07 ~ 2020.09.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