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협상 태도는 성격만큼이나 제각각…자신감과 겸손함, 침착함과 경계심 동시에 가져야
협상을 피하는 사람, 협상을 즐기는 사람… ‘태도’가 협상 성과를 좌우한다
[한경비즈니스 칼럼 = 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협상에 임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까. 협상 태도는 개인의 성격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적극적이면서 자신감 있게 협상에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와 부딪치는 것을 싫어하거나 극도로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도에 따라 협상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 대학병원 응급실 외과의사 A의 사례다. 그는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생사가 오가는 환자 앞에서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소신대로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응급실을 벗어나는 순간 이런 태도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방과 협상해야 할 때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상대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인다. 최근 A는 들어가기 어렵다고 소문난 임상 연수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두 달 휴가가 필요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을 생각해 보면 장기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 아닌가. 말이라도 꺼내 보자는 생각에 인사팀을 찾았다. 하지만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협상을 지레 포기한 것이다.


◆노련한 협상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를 돌아서게 만든 것은 인사팀의 반대가 아니다. 웬만하면 부딪치지 않으려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도 싫고 상대가 자신을 밀어붙이는 상황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손해를 감수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성격으로 인해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이 협상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조직의 일이라면 어떨까. 자칫 더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놓칠 수 있다. 물론 조직의 협상이라면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몸에 밴 태도가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이와 대조적인 사례를 보자. 모 법무법인 B 변호사의 얘기다. 그는 유명 프로골프 선수를 대신해 골프 장비 회사와 광고료 협상에 나섰다. 당시 골프 장비 회사는 연간 매출의 5%를 러닝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계속해 판매가 부진해지자 회사 측은 이를 중단하고 싶어 했다. 반면 선수 측은 계속 광고 모델을 이어 가고 싶어 했다. 협상 자리에는 회사 대표이사와 마케팅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협상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로열티 금액을 두고 밀고 당기던 중 회사의 대표이사가 발끈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대표이사인 나보다 열 배나 많은 수입을 그 사람이 가져간다는 말입니까.” 회의실 안은 침묵이 흘렀다. B 변호사가 물러설지 아니면 맞대응할지 긴장 속에 서로의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B 변호사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대표님, 생각해 보세요. 우리 프로 선수가 대표님보다 드라이브 샷은 더 잘 치지 않습니까.”


재치 넘치는 농담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팽팽하던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그들은 다시 협상을 시작했고 로열티를 재조정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노련한 협상가는 반대에 부딪쳤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농담이나 태도를 보이며 협상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협상을 주도한다.


두 사례의 차이점을 발견했는가. A 의사는 인사팀의 몇 마디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고 B 변호사는 대표이사의 강한 반발을 재치 있는 농담으로 반전시켰다.


◆겸손한 태도는 상대를 움직인다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협상을 게임하듯 즐기는가 하면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협상을 아주 좋아하지도, 극도로 싫어하지도 않는다. 살아가면서 또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본다.


협상에 임하면 당연히 유리한 고지에 서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매번 상대를 고를 수도 없고 상대의 태도를 자신이 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외부 환경이나 상황 변화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 다만 통제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감정과 태도다. 재미있는 것은 협상의 중압감은 보통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사실이고 희망적인 것은 연습을 통해 이를 충분히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로스쿨협상연구소의 마이클 윌러 교수는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Negotiation)’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적인 태도를 동시에 가질 것을 제안한다.


첫째, 침착함과 경계다. 협상 열기가 고조될수록 사람들은 흥분하게 된다. 상대의 고집스러움과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누구나 열 받기 쉽다.


이때 맞대응하다 보면 협상을 그르칠 수 있다.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선언하고 긴 호흡으로 협상을 내다봐야 한다. 달성해야 하는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시야를 넓게 본다면 침착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착함만으로 부족하다. 상황 변화를 신속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그래야만 협상이 원했던 방향에서 엇나가고 있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다.


둘째, 인내심과 주도성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상대와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는 협상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때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덥석 상대에게 제안하면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상대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내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으니 주도권을 가지고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 주도권을 상실한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 상대가 협상을 이리저리 끌고 갈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재치와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켜라.


셋째, 현실성과 창의력이다. 뛰어난 협상가는 대부분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직시한다. 그리고 현실을 누르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마인드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가격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격 이외의 조건을 올리거나 다른 조건들을 나누고 그 가치를 서로 교환하는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 대한 서로의 기대치가 다르다면 상황 조건부 거래를 시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자신감과 겸손함이다. 자신감은 주어진 여건에서 협상을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 자료 그리고 결렬 시 대안까지 준비하면 자신감이 배가된다. 반면 겸손함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거니와 통제할 수도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는 데서 나온다. 상대의 처지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겸손한 태도는 오히려 상대로 하여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5호(2020.09.19 ~ 2020.09.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