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노동 개혁 꺼낸 이유는
“‘독선적’이라는 중진 비판 달래려는 카드” vs “오래된 지론”
“기업규제법 통과되고 노동법 무위로 돌아가면 당내 반발 나올듯”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9월 2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기업 투명성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며 “앞으로 노동 개혁을 얘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10월 5일 비대위 회의에서 “‘공정 경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감독그룹법 등 기업 규제 3법)’뿐만 아니라 노사 관계, 노동관계법 등을 함께 개편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고 말했다. 그의 제안 직후 더불어민주당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고 국민의힘은 노동법을 기업 규제 3법과 연계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노동 개혁 카드를 들고나온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노동 개혁은 그의 오래된 지론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주장이다.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노동 개혁의 방향은 기업별 노조 체제 개선과 고용 유연화 등 크게 두 가지다.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 노동 관련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 개혁을 꺼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기업 투명성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법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는데 경제 단체들이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 사람들에게 국회의원 180석 가까이 차지했으면 나라 장래를 위해 그 법을 고치라고 얘기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전 총리는 정권을 잃을 각오를 하고 노동 개혁에 나섰다. 우리 당에서도 솔직히 노동 문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태클’ 할 능력이 없다. 앞으로 내가 이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현 정부의 노동 정책에서 무엇이 제일 문제라고 보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해고의 경직성, 노동 시간 등 전부가 현실에 맞지 않다.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양극화를 해결할 길이 없다. 노조 스스로 앞장서야 한다. 같은 노동자면서도 임금 격차가 심하다. 한국에선 직장 노조를 택하고 있는데 직장 노조에 가입된 사람은 정규직이다. 노사 협의에서 정규직 노조는 자기네들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결정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조금밖에 가져갈 수 없다. 이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서는 양극화 해소는 불가능하다.”
◆노총,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할 일 없어 정치투쟁 골몰
그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 에서도 노동 개혁 의지가 잘 나타난다. ‘탐욕이 만든 결과물, 기업노조’라는 부제가 달린 제 9장 ‘노동조합은 절대선인가’에서 “1970년대까지 한국의 노조는 산업 노조 체계로 돼 있었다. 그러나 1981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오늘과 같은 기업 노조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그러한 잘못된 선택이 여러 문제를 만들었다”고 했다.
기업별 노조 체제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기업 노조는 안정적인 회사, 규모가 큰 회사 등에서 조직률이 높다. 반대로 규모가 작은 회사,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조직률이 낮다. 결국 노조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들어진다.” “기업 노조가 주축이 되면 산업별 노조는 무용지물이 된다. 노총은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보니 정치적 투쟁 이슈를 찾는 데만 골몰하게 된다. 노총이 두 개 있다 보니 정치적인 선명성 경쟁을 하느라 과격해지는 중이다. 정치권은 계속 노총에 휘둘린다. 만악의 근원은 기업 노조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노동 개혁을 꺼낸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은 “(공정거래법 등 기업 규제 3법 추진에 찬성한) 김 위원장이 ‘좌파들 법을 우리가 왜 해줘야 하느냐’는 당 내부 반발을 달래기 위해 노동법도 함께 처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꺼낸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불만들이 적지 않다. 김 위원장 취임 초엔 그에게 거부감이 있더라도 드러내기 쉽지 않았다. ‘4·15 총선’ 패배 직후 어수선한 당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혁신’을 무기로 당을 비교적 빨리 장악해 나갔다.
하지만 김 위원장 주도로 이뤄진 당 색상 변경과 그의 기업 규제 3법 찬성을 계기로 파열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허니문’이 끝나는 형국이다.불만의 핵심은 김 의원장의 일방적 의사 결정 방식과 이념 지향점이다.당내 의견 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첫 머리에 배치하고 당 색상도 빨간색·파란색·노란색의 3색 혼용을 밀어붙였다. 경제계에 큰 파급력을 미치는 기업 규제 3법도 불쑥 꺼내 당내 큰 반발을 샀다.
4선의 김기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업 규제 3법에 대해 “이 법안들이 그대로 통과되면 정부 권력이 기업에 마음대로 개입해 경영까지도 권력자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의 무한정의 권한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통과돼선 안 되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선 “그분은 아무런 의견 수렴 없이 일을 많이 한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독선적 리더십에 불만 누적…金 vs 중진 허니문 끝나”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취임 5개월이 지났으나 여당의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 지지율이 정체돼 있고 당 정체성에서 어긋나는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들이 누적돼 있다”고 했다.중진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전체 56%를 차지하는 초선 의원들을 띄워 그들을 우군으로 삼아 자신들을 견제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김 위원장이 노동법을 꺼낸 것은 이런 중진의 불만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카드라는 주장에 대해 김 위원장 측은 부인한다.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회고록을 보면 알 수 있듯 노동법을 갑자기 들고나온 것이 아니다”며 “총선 참패 뒤 흐트러진 당을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았다면 앞으론 정책적 이슈들에 집중할 것이고 노동 개혁은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박형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은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은 정치를 매우 잘 안다”고 한 뒤 “독일의 하르츠 개혁 같이 진보 정권 때 노동 개혁을 추진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제안한 노동 개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김 위원장의 제안 하루 만에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메시지가 노동자에게 매우 가혹하게 들릴 것”이라며 반대했다. 기업 규제 3법과 노동법 연계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선 곤혹스러운 표정도 있다. 고용 유연성 강화를 통한 ‘철밥통 노조 기득권’을 깨 청년 취업에 숨통을 틔워 주자는 주장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 기업 규제 3법만 처리하고 노동법은 외면하면 지난 7월 임시국회 때 부동산 관련 3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을 때와 같이 거여(巨與)의 독주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심어 줄 수 있다.
노동법 처리를 둘러싼 김 위원장과 민주당의 힘겨루기 결과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규제 3법만 처리되고 노동법은 무위로 돌아간다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 공천 문제까지 겹쳐 김 위원장과 그에게 반감이 있는 중진 의원들 간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무성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당 변화를 위해 독선적으로?해왔지만, 앞으로는 어렵다”며 “본격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으니 당내 세력들이 가만 보고 있지만 않을 거다. 민주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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