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금융 탈중앙화 가능성 재확인…스마트 콘트랙트 보안·네트워크 인프라 중요성 더 커져
결국 터져버린 디파이의 거품,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김성호 해시드 파트너] 많은 우려를 낳았던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거품은 빠르게 꺼지는 모습이다. 김치와 핫도그 등 음식 이름을 붙여 가며 장난스럽게 시작되는 익명의 프로젝트들은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 또 명확한 내재 가치를 지니긴 했지만 지나치게 가격이 많이 오른 프로젝트들도 투기적 매수가 사라지자 많게는 90%가 넘는 수준의 높은 가격 하락을 겪고 있다. 큰 가격 하락 폭은 그만큼 거품의 크기가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암호 자산 커뮤니티 또한 투기 열풍의 종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디파이 거품이 터지는 것을 부정했고 이에 분노했으며 또 조롱하는 과정을 거친 후 이제는 담담히 수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다행히도 디파이 투기 열풍은 암호 자산에 익숙한 소수의 사용자들인 이른바 크립토 네이티브들에게서만 유행한 후 빠르게 사라져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눈에 띄는 피해를 남기지는 않은 모습이다. 암호 자산 생태계가 2017년 암호화폐 공개(ICO) 광풍을 겪고 흉터만 얻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년 넘게 지속됐던 지난 투기 열풍 때 얻은 교훈으로 이번에는 시장이 더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생태계 스스로가 자정 작용을 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암호 자산 생태계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가장 큰 소득은 탈중앙화 금융이라는 것이 제대로 동작할 수 있는지 검증했다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과 기술 대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제품을 만들기 전에 개념 검증(POC)이라는 것을 진행한다. 시장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 정말 타당성이 있는지 한 번 만들어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결국 터져버린 디파이의 거품,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비트코인 A to Z]
결국 터져버린 디파이의 거품,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비트코인 A to Z]
10조원대로 성장한 디파이 시장


작년 말까지만 해도 탈중앙화 금융 상품들에 예치된 자산 규모는 1조원 수준이었다. 1일 사용자는 수천 명 수준이었다. 이번 여름에 디파이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수많은 실험적인 금융 상품들이 등장했다. 자산 규모는 10조원 이상이 됐고 사용자 수는 수만 명 이상으로 성장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암호 자산 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지갑인 메타마스크는 2019년 12월 25만 명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통해 월간 활성 사용자 수 100만 명을 달성했다. 탈중앙화 거래소의 하나인 유니스왑은 2020년 들어 폭발적으로 거래량이 늘었고 현재는 미국 최대의 중앙화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베이스의 하루 거래량을 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아직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거래할 수 있는 자산의 종류가 한정적이지만 고도화된 합성 자산들이 등장하면 대안 금융 플랫폼으로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즉 탈중앙화 금융은 성공적으로 개념 검증을 해낸 것이다.


물론 이번 실험은 한계점도 보여줬다. 올해 초 있었던 일련의 해킹 사태 이후 보안 전문 기업을 활용한 보안 감사의 중요성이 굉장히 강조됐다. 실제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보안 감사를 철저히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개중에 보안 감사를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론칭한 곳도 있었다. 실제로 코드 오류로 자금을 탈취당하거나 자금이 동결되는 문제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두 개 이상의 업체에서 보안 감사를 받았지만 미리 찾아내지 못한 취약점 때문에 해킹이 발생하기도 했다.


외부 보안 감사조차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는 보안 검증은 절대 끝나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안 감사 업체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주도의 버그바운티 등 최대한 여러 경로로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 또 단순히 개발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보안 검증을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그 소스코드가 대부분 온라인상에 공개돼 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코드를 직접 검증할 수도 있다. 또 자금이 탈취당하는 것에 대비해 보험에 들 수도 있다. 넥서스 뮤추얼과 같은 보험 플랫폼에 일정 비용을 내고 보험에 가입하거나 해킹이 일어날 수 있는 플랫폼의 토큰에 대해 선물 매도 계약을 하는 것 또한 방법이다.


거래 자산 종류의 한계나 해킹 리스크도 있지만 디파이 시장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네트워크 확장성이었다. 현재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기술적 한계로 초당 최대 15개 정도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거래 처리 요청이 들어오면 거래 수수료가 높은 순서대로 처리한다. 디파이와 수익 농사(yield farming)가 유행하면서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거래 처리 요청 건수가 폭증했다. 그 결과 이더리움의 평균 거래 수수료는 작년 평상시의 200배 이상으로 치솟았고 높은 거래 수수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거래들은 수십 시간을 기다려도 처리되지 못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기술적으로 조금만 더 준비돼 있었더라도 더 다양하고 많은 실험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더리움 생태계는 이를 인지하고 롤업(roll-up)이라는 기술 도입을 주요 과제 삼아 발전하고 있고 1~2년 내에 이더리움의 네트워크 처리 용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속화되는 탈중앙화 조직(DAO) 도입


디파이 프로토콜들이 토큰을 발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탈중앙화 조직(DAO)의 도입이다. 탈중앙화 조직은 프로젝트의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주체이고 발생하는 수익을 사용하거나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토큰 한 개는 탈중앙화 조직의 투표권 하나로 작용한다. 현재 이더리움 네트워크에는 수십 개의 디파이 프로젝트들이 있고 개념적으로 유사하거나 아예 명시적으로 포크(복제)한 프로젝트들도 존재한다.

이렇게 비슷한 프로젝트들의 미래가 달라지는 지점은 무엇일까. 바로 프로젝트의 뒤에서 담론을 만들고 의사 결정을 하는 커뮤니티와 탈중앙화 조직이다. 지금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초기 토큰 분배량과 커뮤니티 분배량을 결정한다. 이것이 당장은 수익 농사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방식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커뮤니티와 탈중앙화 조직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지, 어떤 사람들이 투표권을 얼마나 가지고 투표를 하는지,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과정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따라 프로젝트의 명운이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그다음엔 어떤 일들이 있을까. 앞서 말한 생태계의 교훈과 변화들은 어떤 식으로든 암호 자산 생태계의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생태계가 면역력을 키워 앞으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효과적인 도구를 발명하고 도입하는 프로젝트들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들은 멸종할 것이다. 특히 완결성 있는 탈중앙화 조직으로 발전하는 프로젝트들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또 튼튼한 현금 흐름을 가진 프로젝트들과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들의 명암은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투기는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파이 또한 일반 대중은 이해하지 못하는 현학적인 말들로 ICO와는 또 다른 투기적인 흐름을 만들어 냈다. 블록체인과 암호 자산 그리고 금융에는 여전히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체 불가 토큰(NFT)라든가 롤업, 플라즈마, 스테이트 채널, 인터체인, 동형 암호화, 탈중앙화 저장소, 샤딩 등 어떤 기술 키워드든지 투기 조장에 활용될 수 있다. 검열 없는 자유로운 생태계에서는 투기 조장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투기적인 흐름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거나 멀리하기보다 투기적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 속에 싹트는 중요한 가능성들을 지켜볼 때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