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 성공 신화에 스며드는 착각과 유혹…까칠한 반성으로 이겨내야
‘자만과 허영’…전략을 망치는 마음속의 괴물 [박찬희의 경영전략]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전략은 기업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경영자에게 남다른 권한과 보상을 주는 것은 이런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자도 사람인지라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있고 이사회와 같은 조언과 감독 장치들을 둔다.


경영자 스스로도 널리 물어보고 다시 살펴보며 신중한 결정을 한다. 그런데 성공의 기억들에 세상의 기대가(때로는 환상이) 더해져 신화가 되면 경영자는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이 돼 가고 그의 마음속에 자만과 허영이라는 괴물이 자란다. 까칠한 반성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 경영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아집에 빠지고 그의 독단적 전략은 회사와 이해관계인들을 수렁으로 몰고 간다.
‘자만과 허영’…전략을 망치는 마음속의 괴물 [박찬희의 경영전략]
성공 스토리에서 싹트는 자만심


성공은 경영자와 구성원에게 자신감을 준다.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 편하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고 과감한 시도도 가능하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변명할 궁리부터 하면 몸과 마음이 굳어 되는 일이 없다. 전쟁터의 장군이나 프로 스포츠의 감독들이 승리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기세를 이어 가려고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성공을 거치면서 자만심이 싹트기도 한다. 무일푼으로 행상에서 시작해 유통업과 부동산으로 크게 성공한 A 회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용기와 도전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도시 개발을 내다보고 과감하게 유통 거점을 확보하고 기존의 유통 대기업들의 물량 공세를 버텨낸 그의 통찰력과 뚝심은 분명 남다른 점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그의 성공 신화가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유통의 지형도를 바꾸고 방역에 대한 우려로 생활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 모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실 A 회장의 성공에는 1980년대 말 신도시 개발과 저금리 호황이라는 배경과 함께 부동산을 싸게 매입할 수 있었던 ‘운(運)’도 작용했다. 한 번의 대박으로 돈과 힘이 생기고 가속이 붙어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성공 신화’로 알려진 복합 상가 개발을 동반한 마트 입점, 신선식품을 기반으로 중저가 의류와 생활용품을 덧붙인 매장 구성 등은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내용이다. A 회장의 용기와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한때의 행운에 힘입은 성과를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신묘한 경영 능력’의 결과로 믿고 집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약해서 달라진 세상을 마주하기보다 익숙해진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스마트폰 사용도 익숙하지 않은 A 회장에게 아마존의 유통 전략이나 유튜브의 쇼핑 링크는 머나먼 세상의 일이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를 통해 개발 정보를 얻어내 토지를 매입하던 방식은 국회·언론·시민사회가 이익 단체가 맞물려 정책을 뒤바꿔 버리는 판에서 무력할 뿐이다. 하지만 A 회장 앞에서 달라진 세상을 설명하기엔 아직 가지 않은 길에는 자신이 없고 자칫 성공 신화를 부정하고 회장님의 무지함을 지적하는 불경죄를 저지르게 된다.


가장 효과적인 답은 A 회장이 스스로 과거의 성공이 계속된다는 착각을 버리고 달라지는 세상을 겸허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서 살려 갈 점과 버릴 것을 가려내고 부족한 점을 찾아 배워 가려면 까칠한 자기반성이 먼저 필요하다. 기존의 일들을 맡기고 새로 작은 사업을 해 보는 것도 좋다. 과거에 얽매여 회사를 망치고 신화마저 망가진다면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허영이 파고들면 사업이 망가진다


경영 전략에서는 몇 개의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의 원가 우위(cost leadership) 전략을 차별화(differentiation) 전략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공부한다. 지당한 얘기지만 현실에서 원가 우위 전략은 매우 어렵다. ‘폼 나게 돈 쓰고 싶은’ 원초적 욕망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원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좁은 사무실을 쓰고 경차를 타야 한다. 광고비나 접대비도 마른 수건 짜듯이 써야 한다. 협력 업체에도 같은 고통을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 자체가 폼이 안 나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아 서럽다.


사업 가치는 현금 흐름의 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돈 많이 남는 쓰레기 재활용 사업보다 남는 것 없는 패션 사업이 훨씬 대접받는 것이 현실이다. 택시 회사 하면서 사채를 굴려 돈 번 사장님이 남의 눈 신경 쓰느라 제조업체를 인수했다가 돈 날리는 일도 제법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우아함은 회사가 아닌 개인 생활에서나 찾으면 되겠지만 허영의 덫은 곳곳에 있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다 바이오 벤처를 세워 성공한 C 사장은 쏟아지는 찬사와 인터뷰, 특강 요청에 정신이 없다. 만나는 교수들마다 C 사장의 남다른 판단과 리더십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부추기고 기자들은 그의 빤한 얘기를 나라가 본받을 새로운 성공 신화라며 띄운다. TV 메인 뉴스에서나 보던 거창한 인물들과 행사장에 앉아 있다 보니 얼마 전까지 같이 밤을 새우던 직원들이 초라해 보이고 그들의 의견은 ‘세상 물정 몰라 하는 얘기’로 들리기 시작한다. 집안 식구들이나 고향 친구들의 소박한 걱정을 들으면 ‘나를 뭘로 보고 이러나’ 짜증이 난다.


현실의 사업은 괴롭고 피곤한 일이 대부분이지만 거창한 사람들과의 우아한 일들은 재미있고 자랑스럽다. 정치와 미디어는 더욱 짜릿한 판을 만들어 준다. 시사 잡지 표지에 팔짱 끼고 사진 찍으면 위기가 시작되고 정부기구 여러 개 끼다가 영화 제작까지 나서면 곧 망한다는 속설도 있듯이 허영심을 달래는 판은 너무나 많다.


세상의 찬사에 취해 주변을 무시하는 순간 경영자는 허공에 붕 떠 밑바닥 현실을 모르는 바보가 된다. 그럴듯한 말로 찬양하는 사람들은 사실 성공의 과실에 영합하고 있을 뿐 사업이 망가져도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찬사에 취해 같이 망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무시한다면 앞뒤 분간이 흐려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마음의 빈틈은 소리 없이 자라고 유혹은 순식간에 파고든다.

까칠한 자기반성의 동반자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좋은 얘기만 들으려고 하면 현실을 왜곡해 받아들이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세상은 다른 제품을 원하는데 자기 것이 최고라며 부정하고 열심히 했는데 잘 안된다고 오기로 계속해 더 크게 망하기도 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까칠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멈출 수 있지만 몹시도 괴롭고 피곤하다. 불행히도 사람의 마음은 약해 이를 피하게 되고 이런 왜곡은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를 보는 집단 의사 결정의 체계를 만들고 까칠한 반대를 하는 ‘악마의 대변인’을, 나아가 이들로 구성된 ‘레드 팀’을 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경영자 스스로 치열하고 겸허하게 잘못을 살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구글의 첨단 정보기술(IT)도 사용자의 일상에 연결돼 있고 구글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규제는 대중의 막연한 감성에 뿌리를 둔다. 동네 아저씨가 된 어린 시절 친구들은 까칠한 반성의 동반자다. 그들의 꾸밈없는 불평과 조언에서 전략의 포인트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때 고급의 전략 판단도 빛을 더한다.


성공의 기억을 마법의 절대 반지로 착각하고 그럴듯한 사람들과 열등감과 허영심을 달래는 경영자는 반드시 망한다. 비판적 토론과 사색이 버거워 거짓과 이권이 촘촘하게 깔린 보고서를 외우는 꽉 막힌 경영자는 남들도 망하게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