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현금 자산 80% 투자…가치 저장 수단이자 투자 자산으로 ‘낙점’
나스닥 상장사가 비트코인에 올인한 까닭은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마이크로스트래티지라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이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는 시가 총액이 1조5000억원이 넘고 설립된 지 30년이 넘는 견실한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지난 8월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회사 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밝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성명을 통해 회사가 약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집했다고 밝혔다. 이후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약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추가로 매수했다고 9월 밝혔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5억 달러 남짓한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회사 돈 80%가 넘는 수준을 비트코인에 ‘올인’하다시피 한 것이다.


자산의 80% 이상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열성적인 비트코인 지지자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회사의 CEO라고 해도 개인 돈이 아닌 회사 돈을 비트코인처럼 리스크가 큰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한 내부 설득과 주요 이해관계인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일러 CEO는 비트코인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그리고 그는 어떤 근거로 비트코인 투자를 집행하는 데 회사 주요 이해관계인들을 설득한 것일까.


“단단하고 빠르고 스마트한 디지털 금”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처음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밝혔을 때 세일러 CEO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번 투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적용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비트코인이 현금을 보유하는 것 대비 믿을 수 있는 가치의 저장 수단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 가치가 상승할 잠재력이 있는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것에 동의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트코인은 기존의 다른 돈보다 단단하고 강하고 빠르고 스마트한 디지털 금입니다. 우리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기술 발전, 적용 확산, 현대 시대의 무수한 카테고리 킬러의 부상을 이끌었던 네트워크 효과와 함께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일러 CEO는 다른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100년간 보유할 만한 투자 자산이라고 말하며 그는 단기 트레이더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투자자라고 밝혔다.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있어 가치가 희소한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투자 자산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금융 투자업계에서도 설왕설래하고 있다. 2020년 6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은 고객들에게 비트코인 투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을 쥐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반면 2020년 5월 글로벌 헤지펀드를 튜더 인베스트먼트를 운영하는 폴 튜더 존스 설립자는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개인 자산이 5조원이 넘는 존스 설립자는 투자자 서한에서 비트코인이 금융 자산·현금·금 대비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하며 비트코인을 ‘훌륭한 투기’라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자신이 금융 투자업에 입문한 1970년대의 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20년 7월 피델리티는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투자 자산으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퀘어 역시 회사 자산의 1% 수준인 5000만 달러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2020년 10월 밝혔다. 스퀘어는 공식 서한을 통해 “우리는 비트코인이 미래에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화폐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참고로 스퀘어의 CEO이자 트위터의 CEO인 잭 도시는 비트코인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금융 투자업계에서 투자 자산을 평가할 때 낙관론과 비관론이 대립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미래가 불투명하고 트랙 레코드가 길지 않은 투자 자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금융 투자업계에서 누구의 판단이 맞았는지는 오로지 시간만이 알려준다.


인상적인 것은 보통 큰돈을 버는 쪽은 낙관론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 테슬라가 기업공개(IPO)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회사도, 컴퓨터 회사도 아닌 이 스타트업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슬라가 파산할 것이라는 우려는 5년 전에도 있었고 3년 전에도 있었고 1년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퀴 달린 컴퓨터로 바꿨고 오늘날 자동차 회사 중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많은 기업이 됐다. 마찬가지로 테슬라의 미래를 믿고 주식에 일찍 투자한 사람들은 갑부가 됐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이 망할 것이라는 주장은 10년에도 있었고 3년전 비트코인 광풍 때도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있다. 하지만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인프라 성숙도, 생태계 활성화 수준, 브랜드 인지도, 활성화 지갑 수 등의 측면에서 과거 대비 나은 지표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비트코인이 돈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가치가 대폭 상승할지 말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넥스트 테슬라를 투자처로 찾는 사람이라면 비트코인은 촉을 세우고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신규 자산이다.


비트코인이 준비 통화가 될 잠재력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 헤지,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 등의 목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것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그런데 열렬한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트코인이 준비 통화가 될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준비 통화는 국가별로 유사시에 대비해 보유하고 있는 외국환을 뜻하는데 달러·엔화·유로화·금 등이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수탁 기업 자포의 톰 로저 전 회장은 비트코인이 달러와 유사하게 준비 통화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페이팔 마피아 피터틸로부터 투자 받은 비트코인 채굴 기업 레이어 1은 비트코인 채굴을 국가 안보 이슈로 정의하며 비트코인이 잠재적으로 준비 통화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페이스북 소송으로 유명한 윙클보스 형제 역시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스퀘어의 사례를 들며 비트코인이 기업의 준비 자산이 되고 있고 다른 기업들뿐만 아니라 중앙은행도 이 트렌드를 따라갈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비트코인의 준비 통화를 낙관하는 것은 블록체인 기업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이자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의 작가 사이페딘 아모스는 금 본위제처럼 비트코인 본위제가 실현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리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실제로 중앙은행 외환 보유액에 비트코인을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글로벌 화폐 시스템에서 주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준비 통화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무척 급진적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낙관론에 반대하는 비관론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을 죽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누가 맞을까.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시간만이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다만 미래 지향적인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는 낙관론자가 비관론자보다 대체로 유리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세일러 CEO는 2013년 비트코인 비관론자였다. 그는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비트코인을 온라인 갬블링과 비교하며 비트코인이 고통 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은 1000달러 이하였는데 2020년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회사 돈의 80% 이상을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밝혔을 때는 이미 가격이 1만 달러가 넘은 상황이었다. 그는 미래의 잠재력을 비관한 대가로 뒤늦게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