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판례 읽기]


‘범죄집단’ 적용되면 단순 사기죄 넘어 가중처벌…대법 “회사처럼 조직 갖추고 이익 공유”
팀장·팀원 역할 나눠 활개 치던 중고차 사기단… 대법 “범죄집단” 판결 된서리 [법알못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 칼럼=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대표·팀장·팀원 등으로 역할을 나눠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중고차를 팔았다면 형법상 ‘범죄 집단’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 집단에 해당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이유는 선고 때 받게 되는 형량 자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에 따르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사기단이 범죄 집단으로 인정된다면 그 사기단에서 활동한 사람은 단순 사기죄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


대법원은 앞선 1, 2심을 뒤집고 피고인 오 모 씨가 활동한 중고차 사기단이 이러한 범죄 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오 모 씨 일당은 어떻게 차를 팔았나

오 씨는 2016~2017년 인천의 한 중고차 판매 사기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사기단은 20~30명 정도로 구성돼 있었는데 대표·팀장·팀원(출동조·전화상담원) 등으로 역할을 나눠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업계에서 ‘뜯플(뜯고 플레이)’, ‘쌩플(쌩 플레이)’이라고 불리는 수법을 활용해 중고 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미끼 차량을 보여준 뒤 계약을 체결한 다음 계약할 당시에 말하지 않았던 추가 납부 금액이 있어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 차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뒤늦게 말해 계약을 포기시킨 뒤 가격이 더 비싼 차량을 구입하도록 하는 수법이다.


예컨대 오 씨 일당은 인터넷 사이트에 ‘2015년식 투싼 차량을 450만원에 판매한다’는 거짓 광고를 올렸다. 이후 이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급하게 처분하는 차량’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인천의 중고차 매매 단지로 피해자를 유인한 다음 이 사실을 팀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면 팀장은 출동조였던 오 씨 등을 피해자와 접선시켰다. 실제로 오 씨는 2017년 2월 중고차 매매 단지에서 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의 포르테 차량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광고 차량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피해자에게 “사실 이 차는 촬영용 차량이어서 주행 중 시동이 꺼진다”고 거짓말을 했고 피해자가 계약 취소를 요구하자 “이미 포르테 차량이 처분돼 계약 취소가 안 된다, 다른 차량을 구입하라”고 거짓말을 했다.


또 오 씨는 2017년 10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나 차량 매수를 알선하면서 이 차량 매매 금액은 3600만원이고 매매 알선 수수료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차량을 판 사람은 2730만원에 매도하는 것이었고 차액 870만원은 오 씨가 매매 알선 수수료로 취득한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오 씨는 이를 사전에 피해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오 씨는 범죄 단체 가입 혐의 외에도 사기·횡령·위조사문서행사·절도 등의 혐의를 받았다. 범죄 단체 가입 혐의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은 조직된 범죄 단체에 가입해 범죄 단체 구성원들과 순차적으로 공모해 범죄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 씨 측은 “피고인은 단순히 중고차 매매 업체에 취업했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범죄 단체에 가입한다는 인식 내지 의사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1, 2심은 범죄 단체 가입 혐의에 대해서는 오 씨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1심 재판부는 형법 114조에서 정하고 있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란 특정 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공동 목적 아래 구성한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거나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를 갖추고 있는 단체를 뜻한다고 정의했다.


이어 “피고인(오 씨)은 중고차를 파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법적인 요소가 동원된다는 점을 인식하긴 했지만 그 정도를 넘어 피고인이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가입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무실은 대표·팀장·팀원(출동조·전화상담원)으로 직책이나 역할이 분담돼 있기는 했지만 각 구성원들은 상호간의 친분 관계를 바탕으로 개별적 팀으로 활동했을 뿐 조직원들의 지위에 따른 지휘 또는 명령과 복종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대부분 다른 중고차 매매 상사에서 판매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상호간의 소개로 위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됐다”며 “대표와 팀장은 실비적 성격을 지닌 광고비·상사입금비 등을 주고받는 거래 관계로 보일 뿐 팀장급의 공동 피고인들이 대표들의 중간 책임자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역시 범죄 단체 가입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해당 사무실 가입 자격에 제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입 루트도 개인적인 소개, 인터넷 구인 광고 등으로 다양하다”며 “정식 등록 업체에도 존재하는 지각비 제도 외에 특별히 출퇴근을 제재하는 수단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 및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각 팀들이 대표 역할을 한 사람들 사이에 정형적 항목에 관한 정산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 외에 별다른 유기적 연관성 또는 결집력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 원심 깨고 “범죄집단 맞아”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1, 2심을 모두 뒤집고 범죄 단체 가입 혐의를 유죄 취지로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사무실에는 평균 5~6개의 팀이 있었고 회사 조직과 유사하게 대표와 팀장 등으로 직책이나 역할이 분담돼 있었다”며 “상담원이 허위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손님에게 거짓말로 유인하는 역할을, 출동조는 손님들에게 허위 중고 차량을 보여주며 계약을 유도하는 역할을, 팀장은 소속 직원을 채용하고 출동조를 배정하는 역할을, 대표는 매매 계약에 필요한 자료와 할부금융·광고 등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팀장·팀원들은 사무실 업무와 관련해 텔레그램 대화방을 개설해 정보를 공유했고 팀장들은 수수료와 중고 차량 매매에 따른 이익 중 출동조에게 20~30%를, 상담원에게 5~10%를 나눠 줬다”며 “이 사건 사무실은 특정 다수인이 사기 범행을 수행한다는 공동 목적으로 구성원들이 정해진 역할 분담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형법 제 114조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돋보기

2개월 만에 또다시 ‘범죄집단’ 판단한 법원

대법원은 지난 8월 범죄 집단에 관한 법리를 처음 정리한 판결을 내놓았다. 이때도 외부 사무실을 두고 직책 등을 정해 사기 범행을 저지른 중고차 사기 판매 일당에게 범죄 집단 혐의를 적용했다.
중고차 판매 사무실의 대표였던 전 모 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인천 지역에서 조직적인 중고차 사기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220여 명에 달했는데 전 씨 일당은 이 같은 방법으로 약 11억8000만원의 범죄 수익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수법은 오 모 씨 사건과 유사했다. 당시에도 전 씨에게 범죄 단체 조직·가입·활동 혐의가 적용될지 여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1, 2심은 오 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범죄 단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처음으로 범죄 집단에 관한 법리를 설명해 내보였다. 대법원은 범죄 집단의 정의에 대해 “범죄 단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판결은 형법이 2013년 4월 5일 개정된 이후 ‘범죄 집단’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peux@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