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⑮ 석유 산업]


미국 시가총액 1위 엑슨모빌은 92년 만에 다우지수에서 ‘퇴출’ 굴욕
美 정유 산업의 위기, 내년 170개 이상 업체 ‘줄도산’ 우려 [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한경비즈니스 칼럼=최중혁 칼럼니스트] “석기 시대는 세상에 돌이 없어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 시대도 오일이 고갈되기 전에 끝날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설을 주도했던 아메드 자키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전 석유장관이 했던 말이다.


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의 모든 주가 이동을 제한받았을 때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는데 갤런당 1달러(리터당 약 300원)를 밑도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엔 도로에서 차를 찾아보기 어려울 때라 두 달 만에 주유소를 찾았을 정도로 차를 운행할 일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기름 값은 예년의 70% 수준인 갤런당 2달러를 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예기치 못한 타격을 받아 산업 재편이 일어나는 산업이 있는가 하면 바이러스 사태와 무관하게 원래부터 서서히 어려움을 겪다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그 쇠락에 가속도가 붙어 재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는 산업이 있다. 석유 산업은 후자에 해당한다.
美 정유 산업의 위기, 내년 170개 이상 업체 ‘줄도산’ 우려 [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코로나19로 석유업계 직격탄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석유 수요가 급감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이동이 제한되자 자동차와 항공기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 석유 소비량 중 약 60%는 자동차·항공·선박 등 운송 수단에 사용된다. 지난 4월 21일엔 국제 유가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37.63달러)를 기록했다. 저장 창고가 모자랄 정도로 재고가 쌓였지만 원유 실물을 받아줄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원유 저장 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지난해 하루 2만9000달러 수준이었던 초대형 유조선(VLCC)의 6개월 임대 가격이 10만 달러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기존보다 사정이 낫다. 연방 교통안전청(TSA)에 따르면 10월 18일 미국 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항공기 승객 수가 지난 3월 17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103만 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 같은 날과 비교해 60%나 감소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 증가량 전망치를 하루 9170만 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850만 배럴이 줄어드는 것으로, 지난 8월 제시한 전망치 40만 배럴이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고 항공 등 운송 산업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OPEC도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부진이 내년까지 이어져 내년 원유 수요 전망치를 9686만 배럴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를 지속적으로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공급이 획기적으로 줄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감산을 이행한 국가만 점유율을 잃게 되고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이 이미 역사적으로 수차례 경험했다. 여기에 셰일(shale) 오일 덕분에 기술적·경제적으로 시추가 가능한 가채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2640억 배럴 추정)인 미국은 정부에서 석유 생산을 관할하지 않고 각 개별 기업의 결정에 따라 시추하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어려워지는 것은 미국의 셰일 오일 업체들이다. 국가마다 인건비 차이 등 석유 생산 가격 경쟁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 원가는 배럴당 10달러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 셰일 업체들은 올해 유가를 배럴당 55~65달러로 예상하고 예산을 책정했고 에너지 정보 업체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미국 셰일 업체의 올해 배럴당 원유 생산 단가는 53달러 수준이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유가는 배럴당 40달러(10월 21일 기준)로 올해 저점보다 반등했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손해가 예상되는 수준이다.


미국 셰일업계의 대표 기업인 체사피크에너지는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지난 6월 28일 텍사스 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업체들도 있다. 미국 셰일 생산 업체 데본에너지와 WPX에너지는 9월 28일 합병을 공식화하면서 몸집 불리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로 결정했다. 합병으로 두 회사는 기업 가치 기준으로 미국 셰일업계 내 8위가 됐다. 앞서 오일 메이저 중 하나인 셰브런은 지난 7월 중소 셰일 업체 노블에너지를 50억 달러에 인수했다. 원유 컨설팅 업체인 리스타드에너지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수준이 유지되면 연내 73개가 넘는 업체가 파산할 것이고 내년엔 170개 이상의 업체가 추가로 파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석유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될까?

2007년만 하더라도 미국 시가총액 1위였던 엑슨모빌은 30개 우량주로 구성된 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에서 지난 8월 말 퇴출됐다. 1911년 스탠더드오일에서 분사된 34개 회사 중 뉴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과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로 시작해 차후 합병한 이 회사는 1928년 엑슨의 다우지수 편입 이후 92년 만에 다우지수에서 빠졌다. 현재 석유업계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서 에너지 섹터의 비율은 2008년 13.34%에 달했지만 올해는 2.46%(8월 24일 기준)밖에 안 된다.


엑슨모빌은 유가 급락의 영향으로 36년여 만에 처음으로 두 개 분기(2020년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슨모빌은 주주들과의 약속인 8% 배당을 지키기 위해 올해 비용 지출을 30% 줄이고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엑슨모빌은 호주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내년 말까지 유럽에서 1600명을 줄일 계획이다. 미국 최대 석유 회사 엑슨모빌이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업황 때문만은 아니다. 글로벌 에너지업계의 흐름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다.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다른 석유 메이저들이 투자 계획을 축소하는 가운데 공격적인 투자 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지난 10월 초 블룸버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내부적으로 202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현재보다 17% 이상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리스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량보다 더 많은 양이다. 셰브론·코로코 필립스 등 또 다른 미국 오일 메이저들도 특별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셰일 혁명으로 지난 10년간 석유 생산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난 미국 업체로선 태양광·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오일 메이저인 영국의 페트롤리엄(BP)은 최근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0)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고 영국-네덜란드 합작 다국적 회사 로열더치쉘도 석유 관련 사업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브렌트유가 생산되는 영국 북해의 생산량이 약 20여 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은 2025년까지 모든 화력 발전소의 문을 닫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을 멈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엑슨모빌은 최근 미국 증시에서 에너지 섹터 시가총액 1위 자리를 태양열·풍력을 주력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 신재생에너지 업체 넥스테라에너지에 빼앗겼다.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식 시장에서도 석유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에 베팅한다고 볼 수 있다. 10월 21일 종가 기준 엑슨모빌의 시가총액은 1402억 달러, 넥스테라에너지는 1458억 달러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에 우위를 지키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업계에 힘을 계속 실어주겠지만 현직에 있을 때도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하면서도 신재생에너지로의 흐름 전환을 막지 못했다. 1986년 미 의회 최초로 기후 변화 법안을 도입한 조 바이든 미국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의 에너지 산업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의 최강자 테슬라는 2020년 3분기에 분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며 9.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허머 전기차를 필두로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전기차를 계속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석유 소비가 늘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美 정유 산업의 위기, 내년 170개 이상 업체 ‘줄도산’ 우려 [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ericjunghyuk.choi@gmail.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