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형사 사건 처벌도 보험금 받을 수 있을까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폭행 사고를 저지르고 처벌 받았을 때 그에 따른 손실을 보상해 주는 보험이 있나요.”


“카지노에 가 보면 블랙잭 보험이 있던데 도박 채무도 보험 처리가 됩니까.”


강의 중 배상 책임 리스크 얘기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다. 필자 주위의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배상과 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모른다.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자신은 그에게 법적 배상(賠償) 책임을 지고 동일한 물건을 마련해 주거나 그에 해당되는 돈을 줘야 한다. 보험사가 약관에 따라 보험 계약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보상(補償)으로 위법 행위에 대한 보험사의 법적 책임에 따른 것이 아니다.


OJ 심슨 사건으로 본 민·형사 판결 기준

살인·강도·강간·방화 등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배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검사가 범인에게 죄를 묻는 것이 형사(刑事)다. 개인 간의 계약 위반, 사기, 명예 훼손, 과실, 상속 분쟁 등으로 다툼이 생기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상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게 민사(民事)다.


1994년 6월 미국의 흑인 ‘셀럽’ OJ 심슨이 살인죄로 기소된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이자 영화배우, 방송인으로 떼돈을 벌고 백인 금발 미녀와 결혼해 흑인 사회의 우상이었던 심슨이 자기 부인과 그녀의 개인 테니스 코치이자 남자 친구를 무자비하게 죽였다는 쇼킹한 뉴스였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진행된 형사 소송의 결과는 배심원단의 1995년 무죄 평결이었다. 범행 도구로 여겨지는 장갑과 혈흔 등 많은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에서 유죄로 인정되기 위한 ‘거의 완벽한 증거(beyond reasonable doubt)’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배심원단의 판단이었다. 초호화급 변호인단을 꾸려 무죄를 만들었다는 유전무죄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하지만 동일한 살인 사건을 대상으로 한 1997년의 ‘억울한 죽음(wrongful death)’ 민사 소송에서 심슨은 유죄 평결을 받고 33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 책임을 물게 된다. 피해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 중 지속적이고 극심한 학대와 괴롭힘이 있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소위 억울한 죽음 주장인데 이는 민사다. 민사는 형사와 달리 유죄 평결을 위한 입증 기준이 훨씬 낮아 ‘우월한 증거(preponderance of evidence)’ 기준을 쓴다. 이렇게 동일한 케이스에 대해 법적 시비가 붙는 경우 형사와 민사가 공히 걸릴 수 있고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형사에 따른 피해는 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배하는 중차대한 범죄 행위에 따른 책임을 보험이라는 사회제도가 대신 질 수는 없다. 도박과 같은 사행성 행위에 따른 손실도 보험 보상이 안 된다. 도박이나 주식 투자를 하면서 일부러 또는 부주의하게 행동해 손실을 키운 다음 보험으로 피해를 만회하겠다는 것은 대표적인 모럴 해저드 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참고로 카지노의 블랙잭 보험은 보험이란 타이틀을 차용한 것뿐이지 진정한 보험은 아니다. 보험의 핵심 요소는 리스크 전가와 리스크 풀링(pooling) 등 두 가지인데 풀링 기능이 없는 블랙잭 보험은 보험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증권 시장의 포트폴리오 보험도 보험이 아니다.


결국 배상 책임 보험은 민사를 대상으로 한다. 계약 위반 또는 과실과 같은 불법 행위의 민사에 따른 배상 책임이 보험의 보상 대상이다. 하지만 대형 손실 가능성이 큰 징벌적 배상은 보험 처리가 어려운데 미국 보험 계약에선 면책 대상이거나 보상 제한을 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1호(2020.10.31 ~ 2020.11.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