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이전투구 자리 가서 뭘 하겠나…서울, 매력있는 도시 만들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참으라 말해”

“뉴딜, 굉장히 위험한 발상…미래 안보이고 돈만 쏟아부어”
“세종~여의도 하이퍼 루프 만들면 10분안에 갈 수 있어…이게 뉴딜”
“강남에 35층 규제하고 압구정에 왜 100층 아파트 못짓게 하나”
“지방에 서울 짝퉁 만들지 말고 농촌 살리려면 1가구 2주택 권장하자”
“386, 미래 고민 않고 아직 80년대식 논리 갖고 자리 지키려 해”
“기업, 죽기 살기 하는데 정치, 과거 한풀이…진정한 진보정당 없어”
염재호 “서울시장 출마 안 해 … 나가면 이용만 당하는 거지”

[홍영식 대기자]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고민했지만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선수로 직접 뛰는 것보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서울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SH미래도시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신도시를 지어 사람들을 밀어낼 게 아니라 공동화된 서울 도심에 50층, 10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게 고밀도 개발을 허용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년 뒤 주 4일 근무 시대에 대비하고 농촌을 살리기 위한 1가구 2주택 권장, 여의도~세종을 잇는 하이퍼 루프 건설 등 구상도 내놓았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 대해선 미래를 위한 투자는 보이지 않고 돈만 쏟아붓겠다는 것으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합니까.
“전혀 없어요. 정치 능력도 안 되고 자신도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어 서울시장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군대에 끌려가는 심정일 것입니다. 책 읽고 아이디어 내고 얘기하는 게 훨씬 낫지…. 한국 정치를 보면 자다가도 화가 날 때가 있지만 절제해야죠. 축구 해설하던 사람이 5-0으로 진다고 해서 뛰어나가면 뼈가 부러져요. 뛰던 사람이 뛰어야지….”

▶칼럼에 ‘포퓰리즘 국가주의 유혹을 견제하기 위한 지식인과 전문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오늘이다’라고 쓴 대목이 있습니다. 현실 정치 참여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에서 권하기도 해 그런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해 봤는데 아닌 것 같아요. 나가면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만약 한다면 이념적인 정치가 아니라 생활 정치를 해 서울을 변모시킬 것 같아요. 서울이 굉장히 독특한 도시인데 다들 그 특성을 잘 모릅니다. 서울을 매력 있는 세계 톱 5 도시 안에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자만이고 참으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하죠.”

▶서울시장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봅니까.
“우선 대선에 안 나간다고 해야 합니다. 정당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고 이념의 정치가 아닌 생활의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고려대) 총장 선거 때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총장직을 이용해 정치하려고 한다고 비판했죠. 그다음 스텝을 위해 그 직을 맡는 순간 그 사람은 그 직에서 망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 직에 최선을 다해 150% 노력하다 보면 그다음 기회가 오는 거지, 선배들을 보니 무슨 목적을 갖고 그 직을 맡으면 계산하면서 움직이니까 제대로 해내지 못하더라고요. 서울시장 출마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임기가 1년짜리입니다. 또 여야 모두 대선 전초전이라고 하면서 시장 후보를 내세우는데 이게 의미가 있을까요. 정말 서울의 미래 비전을 갖고 하려는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나간다고 하더라도 이용당하는 거지…. 저쪽에서는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어요. 정치가 나라를 위해 도움이 안 되고 있다고 여러 번 주장했는데 너무나 많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요. 이전투구하는 자리에 가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저것 내 약점을 캐려고 할 텐데, 65년 동안 살았는데 털면 먼지 안 나겠습니까.”

▶칼럼에 ‘우리 정치가 과거의 덫에 빠졌다. 아토피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서로 자극만 한다는 의미죠. 한국엔 진보가 없어요. 좌파·우파 모두 보수만 있습니다. 진보는 미래로 나가야 하는데 한국은 진정한 진보 정당이 없습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둘 다 과거를 먹고삽니다. 우파 쪽은 ‘산업화·박정희·이승만’이 중요하다며 과거를 이어 가려고 하죠. 더불어민주당은 옛 운동권 역사를 갖고 먹고사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친일·독재 얘기를 해요. 재벌이 없어진 지 오래됐는데 아직 재벌 얘기를 하죠. 과거 경험을 갖고 사람들을 자꾸 자극시킵니다. ‘386세대’는 아직도 1980년대 논리를 가지고 살고 있어요.”


▶과거에 잘못이 있으면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여권의 논리입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미래 세대한테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만 하면 미래를 어떻게 세울 수 있나요. 재작년 9급공무원 5000명을 뽑는데 약 20만 명이 도전했습니다. 이들이 노량진 학원가에서 몇 년씩 공부하죠. 운동권 출신들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거기로 옮겨 가요. 올해 공무원 더 뽑아 주겠다고 해서 사교육 시장에 더 몰리게 만들고…. 공인중개사를 왜 매년 2만 명 뽑죠. 부동산 정보기술(IT) 거래 시스템을 개발해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공인중개사들의 반발 때문이에요. ‘소프트 랜딩’해야 하는데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한다고…. 자기들 자리를 위해 정치하는 거지. 386 국회의원들에게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우리도 먹고 살아야죠’라고 하더라고요.”
염재호 “서울시장 출마 안 해 … 나가면 이용만 당하는 거지”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약력 : 1955년 서울 출생. 신일고·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장·기획예산처장·국제교육원장·기획실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기관평가위원장. 한일미래포럼 대표.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기획재정부 공공기관경영평가단장. 고려대 총장. SK(주) 이사회 의장(현). SH미래도시포럼 대표(현).

▶여권에서는 미래를 위해 뉴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딜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정부가 하는 것은 급조된 뉴딜 아닙니까. 뭘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테네시강 유역개발사업(TVA)은 전기가 부족한 남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농업에도 혜택을 줬죠. 또 많은 자원이 공사에 투자되니 경기 부양 효과도 있었죠. 지금 우리의 뉴딜이 그런 철학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같이 미래 지향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뉴딜한다고 해야죠. 머스크가 젊은이들한테 각광받는 이유는 테슬라의 자동차가 결함이 많은 데도 화성에 간다고 하고 하이퍼 루프를 만든다고 하는 등 미래를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반진공 상태의 튜브를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 속도보다 빠른 시속 1200km로 달릴 수 있는 기차를 만든다고 했죠. 세종에 국회를 이전하자고 하는데 앞으로 10년 목표로 해서 하이퍼 루프를 여의도에서 세종까지 건설하면 10분이면 갈 수 있어요. 전국이 1시간, 30분 이내로 갈 수 있습니다. 시험적으로 여의도~세종을 하이퍼 루프로 연결해 보자는 미래 지향적 아이디어를 내놓고 뉴딜한다고 해야지…. 고용을 창출한다고 돈을 막 풀어 쓰는 것을 뉴딜이란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효과가 어떤지 고민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적자 재정을 운용하는 것을 뉴딜이라고 한다면 10년 지나 뉴딜을 왜 했는지 모를 지경이 될 겁니다. 10년, 20년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아이템을 잡았는지 모르겠어요. 미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해 안타깝습니다.”


▶여야 모두 무당층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국민들이 훨씬 더 스마트합니다. 지금 야당에 표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죠. 1980년대 일본에서도 무당층이 정치적으로 약진했어요. 그 사람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생활 정치입니다. 생활 쪽을 파고드니 당시 여성 당 대표도 나왔죠. 우리는 피부에 맞는 정치를 안 하고 있어요. 이념을 갖고 싸우고…. 검찰 개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검찰에 가 본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요. 검찰 개혁해야 한다고 몰고 가면서 온 나라 에너지가 그 쪽에 쏠리는데 정말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 수 있지만 이거 하나에 온 나라가 목매답니다. 이 사람들이 왜 저러나 싶어요. 기업은 죽기 살기로 하고 있어요. 살아남아야 하니까. 방탄소년단(BTS)을 보세요. 문화 쪽도 죽기 살기로 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 정치는 우물 안에서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한풀이하고 있어요. 21대 국회 들어와서도 국회가 한 일이 거의 없어요. 국회에서 만드는 법안 중 이해관계법·규제법만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SH미래도시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데 서울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본은 도쿄역 주변을 엄청 개발합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유(U)자형 개발을 했어요. 신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을 외곽으로 쫓아냈죠. 도심이 뻥 뚫려 완전히 공동화됐습니다. 명동도 밤 10시면 깜깜해져요. 명동에 4~5층 건물이 즐비합니다. 왜 명동도 뉴욕 맨해튼처럼 100층짜리 건물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정말 구시대적 발상이에요. 이제는 ‘워크(일)·라이프(삶)’가 분리돼선 안 되고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울 도심에 투자해야 합니다. 강남 재건축을 하는데 왜 정부가 35층까지 규제합니까. ‘35층 룰’은 하느님이 내려준 법입니까. 압구정동에 100층짜리 아파트를 왜 못 짓게 합니까. 지하를 공원화하면 돼요. 지하 1~2층은 주차장으로 만들고 7~8층까지 파서 물류센터와 로봇이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통로, 가구별로 로커를 만들면 택배 운전사들이 혹사당할 일이 없어요. 뉴딜을 하려면 그런 것을 해야죠. 다른 나라에서는 안 하지만 한국에서는 도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 한 채에 30억원 하니 젊은이들이 평생 돈을 모아도 아파트를 못 사게 됐습니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용산역까지 철로 위에 30층, 50층 아파트를 올리면 1만 가구는 지을 수 있습니다. 호텔 이상으로 즐길 수 있게 지으면 젊은이들이 거기에서 살지 누가 외곽으로 가겠습니까. 꼭대기는 바, 한 층은 24시간 어린이집, 한 층은 병원, 한 층은 스마트 워크스테이션, 어떤 층은 지인들을 불러 케이터링 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직장도 5~10분 내로 갈 수 있게 해야 서울이 비전이 있죠. 왜 자꾸 신도시를 만들어 밀어내려고 합니까. 태릉 골프장 같이 좋은 지역에 1만 가구를 짓는다고 하는데 교통난은 생각 안 합니까.”

▶도시 확장은 수평만이 아니라 수직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뉴욕이 직물로 컸는데 직물 공장이 수직으로 올라갔죠. 층마다 단추 공장, 와이셔츠 공장이 집적해 있으니 도시 경쟁력이 엄청 커졌습니다. 우리도 규제를 풀어 고밀도 개발하게 해줘야 합니다. 테헤란로 도로변에는 30~40층이 있지만 그 뒤엔 4~5층 연립주택이 즐비합니다. 거기에 왜 30층 아파트를 짓지 못하게 합니까. 그런 식으로 공급이 늘어나면 30억원 가던 아파트가 10억원이 될 텐데…. 세금만 걷으려고 하니 젊은이들은 꿈이 없고 나이든 사람은 헉헉댑니다. 정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만 정부가 하고 압구정동 아파트가 100억원이 되든 200억원이 되든 시장에 내버려 두면 됩니다. 음모론적으로 보면 당국자들이 파워를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배 아파 참지 못하면서 시장이 더 잘하는 것을 못하게 하느냐는 거죠. 시장에서 돈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을 왜 막느냐는 겁니다. 규제를 없애고 시장 메커니즘에 맡기면 됩니다.”


▶행정수도와 공공 기관 지방 이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서울의 짝퉁을 시골에 만들면 안 됩니다. 역발상 제안을 하자면 1가구 2주택을 권장합니다. 국민의힘에서 세종에 있는 공직자들이 서울에도 집이 있다고 해서 공격하는 것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가구 2주택을 토해낸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지역구 있는 의원들이 1가구 2주택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주4일제 근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27년 동안 경기도 가평 설악면에 사는데 지금도 금요일 밤이 되면 젊은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놀러갑니다. KTX로 1시간이면 웬만한 데는 갈 수 있어요. 전원주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농촌도 살리고 일에 찌든 것을 해소할 수도 있죠. 서울엔 작은 아파트에 살아도 돼요. 돈 많은 사람들은 강남에 30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지라고 하고 지방에 1억~2억원으로 멋있게 집을 지어 살게 하자는 겁니다. 1가구 2주택에 세금을 엄청 매기니 지방 집값은 초토화됐어요.”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