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스몰 브랜드의 힘]
스몰 브랜드 성공 비결- 지평주조
매출 2억원 동네 양조장, 10년 동안 100배 성장…옛맛 복원하고 디자인 차별화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직원 3명, 연매출 2억원에 불과했던 양평군 동네 양조장이 10년 만에 막걸리 시장을 재편했다. 막걸리 양조장이 사양 사업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사업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28세의 아들이 가업을 이어 받아 10년 만에 매출이 100배 넘게 성장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자리 잡은 지평주조 이야기다.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는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1925년 1대 사장 고 이종환 씨가 설립한 지평주조를 1960년 할아버지(김교십 씨)가 인수한 후 아버지(김동교 전 대표)가 이어 받았다. 김 대표는 부임 이후 손맛에만 의존하던 생산 방식을 벗어던지고 균등한 맛과 품질에 집중했다. 특히 막걸리 발효 과정에서의 ‘온도 관리’가 관건이었다. 김 대표는 막걸리 양조장과 달리 맥주 회사는 주류의 고른 품질을 위해 설비가 발달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옛 주조 방식을 구현한 최신 설비를 도입해 모든 막걸리가 균일한 맛을 낼 수 있게 했다.

김 대표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곧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며 “막걸리 제조의 모든 과정을 정량화·수치화하며 데이터를 분석해 품질을 위한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매출 2억원 동네 양조장, 10년 동안 100배 성장…옛맛 복원하고 디자인 차별화
◆막걸리=아재 술 공식 깬 스토리텔링

지평주조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지평주조는 막걸리가 ‘아재 술’이라는 공식을 깨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주류 시장에 수제 맥주가 휩쓸고 간 지난 몇 년, 맥주 시장의 트렌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이었다. ‘제주’, ‘강서’, ‘강남’, ‘해운대’ 등 브랜드 대신 특정 지역명을 딴 맥주가 인기를 끌었다. 맥주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색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로컬 비즈니스’가 마케팅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막걸리는 오래전부터 로컬 비즈니스를 이어 왔다. 행정구역별로 대표 막걸리 하나 정도는 있었다.

지평주조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막걸리 양조장이라는 스토리를 내세웠다. 지평주조는 세계적인 맥주 회사 ‘기네스’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도시 브랜드를 대표한다. 기네스의 역사와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더블린 관광 명소 1호로 꼽힌다. 지평주조 역시 일제강점기를 버티고 지금까지 이어 온 양조장을 복원하는 중이다. 복원이 완료되면 전시관과 체험관 등으로 활용하며 지평막걸리의 콘텐츠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오랜 감성을 지켜 온 제품 라벨 역시 차별화 전략으로 통했다. 지평주조는 2015년 전략을 수정해 브랜드의 오랜 역사를 라벨에 담았다. 지평양조장의 옛 현판 글씨체를 그대로 살려 세로쓰기에 왼쪽으로 행갈이한 예스러운 글씨체가 젊은 소비자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갔다. 김 대표는 “지평 양조장만의 역사적인 요소들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뉴트로’로 해석돼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힙한’ 감성을 자극하는 포인트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제품 전략 역시 시장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지평막걸리는 업계에서 저도주 트렌드의 선도 주자로 꼽힌다. 지평주조는 2015년 지평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과감하게 막걸리업계 최초로 알코올 도수를 6도에서 5도로 낮췄다. 품질을 위해 공정을 표준화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알코올 도수가 5도일 때 가장 ‘지평다운 맛과 향’이 난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를 제품에 반영했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당시 ‘부드럽고 순한 맛’이 유행하며 젊은 세대와 여성 고객에게 통했다.

지평주조는 2017년부터 전국 유통망 확대에 나섰다. 이후 매출이 고공행진했다.
김 대표는 “제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평주조만의 고유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며 “이것이 지평막걸리가 꾸준하게 성장해 온 이유”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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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2억원 동네 양조장 10년 동안 100배 성장... 옛맛 복원하고 디자인 차별화
-"누구나 사는 빅 브랜드 만족 못하는 사람들... 차별화된 가치로 승부해야죠"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1호(2020.10.31 ~ 2020.11.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