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궁합’ 잘 맞는 가상현실과 블록체인…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 가능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상현실, 블록체인 산업에 힘 싣다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가상현실(VR) 기술이 예상보다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VR은 컴퓨팅 기술을 이용해 실제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 것을 의미한다. VR에서는 시각·청각·촉각 등 여러 감각 장치들을 통해 현실 세계의 감각을 모사한다. 때로는 다양한 인터페이스 장치를 이용해 사용자가 가상으로 구성된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286만 명의 팬 거느린 가상현실 스타

대표적인 VR 장치는 게임사인 밸브나 페이스북에 인수된 오큘러스가 제작하는 VR 헤드셋이 있다. 이들은 머리에 뒤집어쓰는 디스플레이 장치(헤드셋)와 그에 연결된 스피커로 사용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또 공통적으로 컨트롤러나 헤드셋에 달려 있는 카메라 장치를 통해 사용자 머리와 손의 움직임을 읽어낸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마치 VR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고 VR 속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출시 초기에는 가격이 150만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최신 기기를 45만원이면 살 수 있다. 성능 또한 많이 발전해 8K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기기도 나왔고 컨트롤러 없이 손의 움직임을 읽어 내는 핸드 트래킹이나 눈의 움직임을 읽어 VR에 반영해 주는 아이 트래킹 기술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과 가격 하락에 힘입어 시장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VR 기기 사용자가 전 세계적으로 1억7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VR 게이밍 매출은 2020년에만 24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VR을 체험하는 데 이런 고가의 보조 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도 모르게 VR을 체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릴 미퀼라는 286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다. 그는 올해 100억원이 넘는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현실 세계에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브러드가 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합성한 캐릭터다. 릴 미퀼라의 성공에 힘입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라핀 등 이러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딥스튜디오라는 스타트업이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릴 미퀼라와 같은 가상 아이돌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 인플루언서는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어졌으면서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댓글 기능 등으로 소통을 비롯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VR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버추얼 유튜버’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버추얼 유튜버는 그래픽 기술로 만든 애니메이션풍의 캐릭터가 실제 사람 대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보통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 대사를 연기하는 전문 배우가 있고 VR 기술을 제공하는 일종의 연예 기획사가 이들을 채용해 채널을 운영한다. 버추얼 유튜버 중 가장 유명한 키즈나 아이는 현재 유튜브에서 286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키즈나 아이와 같은 버추얼 유튜버가 일본에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방탄소년단(BTS)이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한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가상 공연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가상 캐릭터와 게임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경제 활동의 경계를 머무른다는 관점에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메타버스는 지금까지 단순 유흥 목적으로 사용되던 VR을 넘어 그 속에서 사회·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세계 최고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인 엔비디아는 지난 연례행사 기조연설에서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VR의 보급은 블록체인에 굉장히 큰 기회 요소가 될 수 있다. VR 속에서는 현실과 다른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는 수요가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부캐(게임 내에서 가지고 있는 여러 캐릭터 중 주로 키우는 본 캐릭터와 대조되는 개념의 부 캐릭터의 준말)’를 만들고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사는 늘어날 것이다. 현실에서의 부캐는 한국 여자 가수 이효리 씨가 또 다른 한국 여자 가수 린다G나 천옥이라는 다른 캐릭터가 되는 정도다.


하지만 VR에서는 국적·출신·성별·직업·외모 등 모든 것이 다른 부캐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VR 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빈도나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부캐를 통해 누리는 삶의 비중이 점차 커지게 되면 VR 내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경제 규모가 점차 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암호화폐는 내 본캐의 신원과 연동돼 있지 않은 굉장히 훌륭한 금융 도구가 된다. 반드시 테러 자금 모집이나 마약 거래와 같은 불법적인 행위를 할 때만 익명성과 가명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익명성과 가명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70대 백인 남성이 VR에서 20세 아시아 여성으로 활동한다고 그것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통념을 감안하면 이러한 활동들이 현실의 정체성과 연관돼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적인 금융사들보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 자산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커진 ‘부캐’의 가치

지나친 가명성이 범죄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현재의 퍼블릭 블록체인들은 다크웹 실크로드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범죄 자금 은닉 목적으로는 최적화된 도구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 이더리움에서 많이 쓰이는 사생활 보호 도구인 토네이도 캐시는 기본적으로 자금 출처와 흐름에 대한 익명화를 제공하지만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자신과 관련된 거래 기록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생활 보호 목적의 익명성·가명성 부여가 반드시 범죄 예방, 탈세 방지와 충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블록체인의 장점은 단순히 가명성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VR의 캐릭터와 자산을 블록체인을 통해 생성하고 관리하면 더욱 흥미로운 일들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현재 블록체인 탈중앙화 금융에서는 모든 금융 콘셉트가 담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현실 경제의 금융 시스템이 상당 부분 ‘신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의 블록체인 계정은 자산을 담는 그릇일 뿐이기 때문에 신용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계정으로 신용 대출을 했다고 하면 채무자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때 이를 강제로 추심할 수 있는 집행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당 블록체인 계정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원 인증을 요구하면 탈중앙화 금융으로서의 차별적 장점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VR의 정체성이 블록체인 계정과 연동된다면 어떻게 될까. 스마트 콘트랙트의 강제 집행력과 맞물려 새로운 형태의 신용 금융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계정과 연동된 VR 부캐가 신용 대출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스마트 콘트랙트를 활용해 돈을 갚지 않을 때 ‘부캐’의 신용도를 낮춘다든가 돈을 갚을 때까지 활동을 못하게 감옥에 넣는다든가 나아가 부캐의 소유권을 아예 빼앗아 오는 등의 일이 가능해진다. 현재도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계정들이 거래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VR의 부캐 계정은 활동량·인맥·명성에 따라 작지 않은 가치를 가질 것은 자명하다. 이 때문에 이를 일종의 ‘담보’로 잡는 새로운 성격의 신용 대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VR에서 활동하는 가상 아이돌에 대한 소유권이 토큰화돼 있다고 가정하면 이 아이돌이 내일 무엇을 할지,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곡을 타이틀 곡으로 할지 등에 대해 주주(토큰 보유자)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도 있다. 또 아이돌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배당권도 가질 수 있다. 직접 오너십을 가진 팬심은 지금의 아이돌 비즈니스와는 또 다른 파급력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이기 때문에 이러한 예측들은 틀릴 수 있다. VR이 아무리 대대적으로 보급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 자산이 활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R의 보편화가 블록체인을 비롯한 탈중앙화 기술의 도입을 어떤 식으로든 가속화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블록체인을 관심 있게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존재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