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판례 읽기]


공사대금 못 받자 유치권 신고서 제출…대상 호실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
반전 거듭한 유치권 소송… 대법 “방 호수별로 판단하라” [법알못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 칼럼=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건물에 유치권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방 호수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건물이 경매에 통째로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유치권을 심리할 때는 호수별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예금보험공사가 건설업자 A 씨 등을 상대로 낸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예금보험공사는 해솔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으로서 해솔저축은행의 파산 절차를 관리했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6월 해솔저축은행은 A사에 돈을 빌려주면서 A사 소유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그러던 중 2012년 8월 A사는 대출금을 다 갚지 못했고 해솔저축은행은 앞서 근저당권을 설정했던 건물에 대해 임의 경매를 신청했다. 같은 달 법원은 임의 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건설업자 이 모 씨는 경매로 넘어간 건물의 4·5층 공사비와 증축 공사비 등 총합 5억2000만원을, 또 다른 건설업자 이 모 씨는 2·3층 공사비 3억50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2013년 유치권을 주장했다. 이들은 2013년 12월 법원에 유치권 신고서를 제출했는데 법원에 제출한 신고서에는 유치권 행사 대상인 호실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다.


1심 “경매 시작 당시 지배 부재”

이 사건 판결은 1심을 2심이 뒤집고 2심을 다시 3심이 뒤집는 형태로 이어졌다. 우선 1심은 예금보험공사의 손을 들어주며 이 모 씨 등에게 유치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유치권의 성립 요건에 대해 설명했다. 재판부는 “민법 제320조에서 규정하는 ‘점유’는 물건이 사회 통념상 그 사람의 사실적 지배에 속한다고 보이는 객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며 “이때 사실적 지배는 물건을 물리적·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제한되는 게 아니라 시간적·공간적 관계, 타인 지배의 배제 가능성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씨 등이 건물에 유치권 공지문을 붙인 사실까지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2012년 6월까지 건물에 ‘자신들은 공사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유치권을 행사하게 됐다’는 공고문을 게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매 시작 당시까지 유치권을 계속 행사했다는 증거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경매 집행관이 작성한 부동산 현황조사서에도 경매 절차가 시작된 이후 공지문을 통해 유치권 행사를 알렸다는 내용은 없었다. 경매 집행관이 건물을 방문했을 때는 문이 잠겨 있어 점유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호실도 다수였다. 재판부는 “경매 절차 집행관이 2012년 8월과 9월 부동산 현황을 조사한 결과 피고들이 각 층을 자신의 사실적 지배하에 두고 관리했다고 볼 수 없다”며 “폐문 부재로 점유 관계를 알 수 없는 방도 다수였고 이러한 사실들만으로 피고들이 압류 등기 전부터 현재까지 부동산을 점유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2심 “현황조사서 신뢰 불가”

반면 2심은 이를 뒤집고 이 모 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가 주요 근거로 들었던 부동산 현황조사서가 일부 사실과 달라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피고들은 부동산 증축 공사를 진행했고 이에 따라 공사 대금 채권을 갖고 있으며 해당 부동산을 계속 점유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부동산 4·5층 등을 인도하지 않고 주출입구 부분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부착했고 공사 완료 후 열쇠를 소지한 채 직원으로 하여금 층별로 관리하게 했다”며 “부동산 현황보고서에 일부 호실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작성된 점 등을 보면 해당 보고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예금보험공사)는 피고들이 무분별하게 공사를 감행하면서 추후 유치권만으로 공사 대금을 확보하려고 한 것으로 보아 저당권자인 원고 등에게 해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당시 피고들에게 해의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으며 원고는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해 유치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주문을 낭독했다.


3심 “호수별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 환송 취지는 원심이 유치권 행사 대상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 전체를 기각해 버린 점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건설 업자들이 유치권 신고서를 낼 때 점유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고 건물 일부에 대해서만 유치권을 주장한 만큼 유치권 행사 대상을 호수별로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 중 점유하는 부분이나 유치권의 범위를 특정하는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부동산 전체에 대해 피고들이 적법한 유치권자라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으니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송 후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부동산의 등기부와 현황이 일부 불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들이 점유하는 부분 등을 추가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유치권 둘러싼 유치권 존재 확인, 명도 소송

유치권과 관련된 분쟁은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건물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민법 제 3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치권은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 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 증권에 관해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 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유치권에서 비롯되는 소송은 크게 유치권 존재 확인 소송,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 그리고 명도 소송이 있다. 유치권 존재 혹은 부존재 확인 소송은 앞선 이 모 씨 사례처럼 유치권 행사의 부당성, 공사 대금 존재 유무 등을 놓고 다투는 소송이다. 유치권 성립 요건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타인 소유의 물건 또는 유가 증권이어야 하고 △적법한 방법으로 점유해야 하며 △채권 변제기에 있어야 하고 △유치권 관련 배제 특약이 없어야 하며 △채권과 목적물 사이 견련성(유치권을 유치 대상이 된 물건 그 자체에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명도 소송은 매수인이 부동산 대금을 지급했음에도 채무자나 소유자 또는 점유자 등이 해당 부동산에서 나가지 않을 때, 즉 계속해 점유하고 있을 때 매수인이 해당 부동산을 넘겨 달라는 소송을 의미한다. 전국 법원에 접수된 건물 명도 철거 사건 접수 건수는 1심 기준 △2015년 3만4568건 △2016년 3만5767건 △2017년 3만5566건 △2018년 3만9400건 △2019년 3만8237건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