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폰지 사기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유 [차은영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찰스 폰지는 1903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할 때 그 은행의 예금 이자가 월등하게 높은 이유가 투자 수익이 아니라 신규 가입자의 예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목격했다. 결국 그 은행은 파산했고 은행장은 돈을 갖고 도피해 버렸다.


이 경험은 폰지가 본격적으로 폰지 게임을 계획하는 계기가 됐다. 1920년께 폰지는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한 국가라면 어디서든 우표로 교환할 수 있는 국제 회신 쿠폰의 가격이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재판매를 통해 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게 된다.


이 사업 아이템으로 투자자를 유치하려고 했지만 원활하게 되지 않자 파격적으로 45일 이내에 50%, 90일 이내에 100%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증서를 발행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우표와 현금의 교환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차익 거래가 실현될 수 없는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폰지 사무실에는 현금이 넘쳐나게 된다. 2000만 달러를 모은 폰지의 사기극은 8개월 만에 끝났다.


1934년 미국 의회는 폰지 게임 같은 금융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거래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2008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메이도프 사건이 터지게 된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가 세계 각국에 걸쳐 수십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그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한 사건으로, 그 피해액이 650억 달러에 달한다.


유명 인사들과 권력층을 내세워 다단계식 금융 사기가 20년 동안 유지된 것이다. 1999년 의혹이 제기됐지만 증권거래위원회에 무시당했고 2005년과 2007년에도 증거를 제출했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아마도 금융 위기로 인해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를 요구하는 사태가 없었다면 이 폰지 사기극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됐을지도 모른다.


작년 말 기준 약 1조6000억원의 피해액을 발생시킨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옵티머스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불거졌다.


2017년 12월부터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 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해 연 3%의 수익을 보장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광고했지만 부실한 사모 사채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고 펀드 자금의 80%에 해당하는 4000억원이 3년 새 돈세탁을 통해 증발해 버렸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는 소위 펀드 돌려 막기 방식으로 수익률을 조작하는 폰지 게임의 변형이다. 권력층의 비호 없이는 엄청난 규모의 피해액과 대기업을 비롯한 굵직한 상장사 수십 곳의 투자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폰지 사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정보의 독점과 시장의 개방성 결여 때문이다. 시장이 오픈되고 정보가 공유되고 감독 기관이 폐쇄적이지 않다면 사기극은 유지되기 어렵다.


결국 전직 검찰·관료·정치권 인사들이 사기 행각 과정에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그들만이 더 유용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서 비롯된다.


옛 말에 사기 치는 사람도 사기꾼이지만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사기꾼이라는 말이 있다. 단기간에 엄청난 고수익이 가능할 리 없는 데도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투자했다고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허황되기 그지없다. 폰지 게임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