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머리 맞대고 문제에 접근할수록 해결 가능성 높아져…
리더의 공감과 지원도 반드시 필요
‘놀라운 토요일’이 보여주는 집단지성의 힘 [경영 전략]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하루가 다르게 없어지고 새롭게 생기는 게 요즘 방송이다. 이런 상황에서 2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예능의 ‘황금 시간대’인 주말 저녁을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이하 놀토)’에 대한 얘기다.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간단하다. 노래를 듣고 출연자들이 정확한 가사를 맞히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꾸준하게 인기를 끌며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해 결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기

속도가 너무 빨라 알아듣기 힘든 랩이나 가수의 얼버무린 발음 때문에 정확히 들리지 않는 가사를 맞힐 수 있는 비결은 출연자들의 ‘집단지성’이다. 출연자 중 누구도 정확한 가사를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들은 만큼’은 쓴다. 얼토당토않은 단어라도 다른 사람에게 ‘힌트’가 된다는 믿음 덕분이다. 그 단어가 ‘초성 힌트’가 되기도 하고 비슷한 발음을 유추해 그럴 듯한 단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출연자 중 진행자 역할을 하는 최고참 개그맨 신동엽이라고 해서, 또 게스트로 유명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은 없다. 가수 혜리가 놀라운 추리력으로 정답을 많이 이끌어 냈다고 해서 그 의견에 항상 쏠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누구든 참여하고 동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기에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조직 내 ‘회의’에서 나타난다면 어떨까. 회의를 주체하는 가장 ‘높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어처구니없는 제안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또는 ‘그분’의 생각과 정반대의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회의장 분위기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속된 말로 표현하면 ‘얼음’이 될 확률이 높다. 많은 조직에서 회의는 ‘정답 찾아 가기’의 모습일 때가 많다. 물론 이런 모습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조직 내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들고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기에 무작정 ‘다 얘기해 보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를 분석해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고 전략을 다듬어 실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만큼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업의 어느 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예견해 ‘마스크 생산’을 예측할 수 있으며 여기에 따른 ‘비대면’ 산업의 확장을 전략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을까.


결국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가끔은 ‘놀토’처럼 어느 정도 ‘리더가 힘을 뺀’ 회의도 필요하다. 한 명의 힘이 아닌 모두의 힘으로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이렇게만 얘기하면 너무 무책임하다. 집단지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끔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제도’와 ‘리더십’ 측면에서 하나씩 알아보자.


먼저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보상이 필요하다. ‘놀토’에서의 보상은 ‘음식’이다. 전국의 전통 시장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 그곳의 대표 음식을 스튜디오에 갖고 온다.


스튜디오에 풍기는 음식 냄새에 출연자들은 군침을 흘리며 노래 맞히기에 집중한다. 이렇게 눈앞에 목표점이 있을 때, 특히 그것이 명확하고 생생하게 그려질 때 사람들은 더 몰입한다. 이때 개인이 아닌 ‘전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보상을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놀토’에서 정답의 개수에 비례해 음식을 나눠 주지 않는다.


기여를 많이 했든 그렇지 않든 같이 나누고 함께 먹는다. 이렇게 경쟁이 아닌 협력을 유도하려면 ‘공동 보상’을 설계하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서 현실적 고민이 생길 수 있다. 조직에선 ‘개개인’을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평가자의 역할도 ‘집단’에 맡기는 것이다. 리더 혼자 구성원 개개인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동료들끼리 기여도를 측정하도록 한다. ‘놀토’에서 함께 먹을 음식이 충분하지 않을 때 ‘이 문제를 맞힌 것은 ○○ 덕분이니까 먼저 먹어’라고 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때 ‘인기 투표’가 되지 않도록 정확한 사실 기반으로만 피드백하도록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공통된 양식을 만들어 평가자 개개인의 취향이 강조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개인 평가는 개별 프로젝트나 업무가 끝났을 때마다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수행한 전체 업무’로 하는 것이다. 조직의 일은 ‘수많은 업무들’의 집합으로 이뤄진다. 어떤 업무는 쉽고 어떤 업무는 난이도가 아주 높다. 그래서 구성원 개인이 참여한 업무 전체를 대상으로 난이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당연히 어려운 일에 많이 참여했고 동료 피드백에서 긍정적 의견을 많이 받은 직원에게 좋은 평가를 주면 된다.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인정과 보상을 하되 연말 시상식에서 1명을 뽑아 상을 주는 방송 대상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모아 놓기만 해서는 답이 생기지 않는다

보상과 함께 필요한 다른 하나는 리더십이다. 노래를 처음 들은 ‘놀토’의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뭐야’라는 반응을 보인다.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작진은 ‘글자 수’와 해당 소절 앞뒤 노랫말을 알려준다. 이를 토대로 추론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실패한 뒤에는 ‘띄어쓰기’, ‘70% 속도로 듣기’, ‘초성’, ‘오답 수’ 등 다양한 힌트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출연진은 필요한 상황에 맞는 힌트를 골라 정답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사실 ‘놀토’ 초기엔 이런 힌트가 많지 않았다. 그럴 때는 가사 맞히기가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며 새로운 방식의 힌트가 추가됐다. 프로그램 진행자 중 한 명인 붐의 트레이드마크를 살려 ‘붐카’라는 재미 장치를 넣어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도 유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집단지성을 끌어내기 위한 리더의 역할이다. 답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난이도에 맞는 지원을 통해 참여를 독려하는 게 필요하다.


리더의 지원은 크게 3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감정적 지지’다.


업무가 많다고 하는 직원에게 ‘나 때는 더 한 일도 많았어’라고 정신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직원이 힘들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겠다’라며 공감해 주는 것이다. 어떨 때는 ‘리더가 나의 힘듦을 알아줬다’는 것만으로도 구성원은 만족할 수 있다.


구성원들끼리 이런 문화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 역시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둘째는 실질적 지원이다. A 직원에겐 한 시간짜리 쉬운 업무가 B 직원에게는 하루 종일 걸려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이때 정보나 노하우를 서로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구성원이 업무 수행을 조금이나마 쉽게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자. 그래서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


리더는 보고 라인을 간소화해 주는 것처럼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지원 요소를 찾아 그 일을 해 줘야 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마지막 셋째는 ‘직접 하기’다. 말 그대로 구성원이 하는 일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것이다. 보다 적합한 직원에게 업무를 재분배하거나 어떤 경우엔 리더가 직접 그 일을 전적으로 맡아 책임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집단지성’은 생긴다. 하지만 그저 모아 놓기만 했다고 항상 좋은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힘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래서 그걸 동력 삼아 불확실한 현재 상황을 해쳐 나가려면 우리 조직엔 어떤 장치가 필요할지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