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시가총액 37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 경신…투자 속도 높이는 기관투자가
비트코인, ‘캐즘’의 벽을 깨고 대중에게로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김백겸 해시드 선임심사역] 지난 한 달은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기간 중 하나였다. 암호화폐의 ‘대장주’로 불리는 비트코인은 11월 18일 현재 기준 1만8000달러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며 약 3년 전인 2017년 12월의 전고점에 근접하고 있고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사상 최고인 3290억 달러(약 370조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격은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가격을 배제하더라도 지난 한 달 동안의 암호 자산 관련 업계의 발전 또한 흥미로웠다. 필자의 이전 칼럼에서도 다뤘던 내용인 ‘기관’의 진입이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3년 전 JP모간의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불렀지만 지금 JP모간은 비트코인과 금을 비교하는 심층 연구 리포트를 통해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가격이 두 배 또는 세 배까지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올해 초 JP모간은 미국의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고 추가적인 협업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내 대형 기관들의 비트코인 선물 포지션은 암호화폐에 대한 기관의 참여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최근 한 달 사이 5개 이상의 오픈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기관의 수가 약 20% 증가했다.


뉴욕에 있는 암호화폐 전문 자산 운용 기관인 그레이스케일의 자산 운용액(AUM)은 11월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넘어섰다. 올해 초 기준으로는 약 22억 달러에 불과한 기록이었다.


미국 씨티뱅크는 비트코인을 두고 ‘21세기의 디지털 골드’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비트코인의 디지털화된 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있었지만 장기적인 트렌드를 볼 때 1970년대의 골드러시와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비트코인, ‘캐즘’의 벽을 깨고 대중에게로 [비트코인 A to Z]


제프리 무어가 말한 ‘캐즘 이론’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 중 하나가 된 페이팔은 올해 말까지 2억 명 이상의 미국 사용자 모두에게 암호화폐 투자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전 세계 암호화폐 사용자가 약 1억 명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룻밤 사이에 암호화폐 투자자 수를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페이팔은 또한 2021년 1분기 중에 2600만 개 이상의 미국 가맹점에서 암호화폐 결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송금 서비스이자 주식 투자 애플리케이션(앱)인 스퀘어 캐시앱은 이번 분기 비트코인 매출이 90% 증가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도의 증가는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가 저술한 책 ‘캐즘 마케팅(원제 Crossing the Chasm)’에서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이 대중에게 채택되는 과정에 대한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무어의 ‘캐즘 이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91년에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기술 혁신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무어의 캐즘 이론에서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그룹은 ‘혁신자-얼리 어답터-초기 대중-후기 대중-늦깎이’의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바꾼 혁명적인 기술과 패러다임은 모두 이 프레임워크를 따랐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고 이를 학계(혁신자)가 먼저 다뤘다. 그러다 소수의 ‘얼리 어답터’들이 자료 공유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용했고 시간이 흘러 e메일, 전자 상거래, 검색 포털 등이 개발되며 순식간에 ‘초기 대중’에게 산불처럼 퍼졌다. 이후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과 소셜 미디어, 비디오 스트리밍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 더욱 다양한 계층인 ‘후기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약 5%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늦깎이’로 분류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대표 주자 페이스북은 처음에 하버드대 대학생들끼리만 사용하는 서비스였다(혁신자). 이 서비스가 다른 대학생들에게로 퍼졌고(얼리 어답터), 시간이 흐른 후 뉴스 피드 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고(초기 대중) 시간이 흘러 연령과 국가를 막론한 서비스로 발돋움하게 됐다(후기 대중).


이러한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다름 아닌 ‘얼리 어답터’와 ‘초기 대중’ 사이의 큰 간극을 의미하는 ‘캐즘’이다. 본래 지질학 용어인 캐즘은 지층이 이동하면서 생기는 커다란 단절을 뜻하는 말이다. 무어의 이론에서는 신기술이 처음 제시되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발생하는 큰 간극을 의미한다. 혁신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소수의 얼리 어답터(조기 수용자)들이 기술을 받아들인 이후 대중이 이를 수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극심한 간극이 바로 ‘캐즘’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캐즘’의 벽을 깨고 대중에게로 [비트코인 A to Z]
앞으로도 수많은 부침 거듭할 암호화폐

‘캐즘’은 ‘얼리 어답터’와 ‘초기 대중’ 사이에 자리한다. 기본적으로 얼리 어답터의 요구와 초기 대중의 기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간극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얼리 어답터 집단은 새로운 기술을 처음 사용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를 위해 기꺼이 기능적 결함이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집단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러한 결함을 용납하지 못한다. 새로운 서비스는 반드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본인에게 익숙한 방법을 제공해야만 한다. 가상현실(VR)을 위시한 VR 기술 또한 이러한 틈을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넘고 있는 신기술의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인 암호 자산 또한 이 ‘캐즘’을 넘어서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 혁신이 캐즘을 뛰어넘고 대중에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효과적인 마케팅, 대중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몇몇 혁신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소수의 얼리 어답터들이 이러한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캐즘을 건너가는 지난한 과정은 결코 하룻밤 사이에 진행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에게 암호화폐 결제를 제공하고자 하는 페이팔이나 암호 자산을 공식적인 자산으로 취급하려고 하는 JP모간과 같은 대기업을 필두로 우리는 이 산업에 기관이 진입하고 암호 자산의 총가치가 빠르게 증가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전 세계의 주요 은행이 암호화폐 커스터디(보관) 서비스를 시작하고 많은 관련 중개 업체들이 생겨날 것이다. 소매 결제나 외국 간 송금에서 암호 자산이 사용되는 일 또한 자연스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들의 니즈가 커짐에 따라 대기업들도 퍼블릭 블록체인 상에 주요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암호 자산의 여정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수많은 부침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이 오르고 조정되는 것의 반복 또한 건전한 시장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어느덧 암호화폐는 주류가 돼 가고 있고 우리가 ‘얼리 어답터’로 참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4호(2020.11.23 ~ 2020.11.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