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판례 읽기]


둘째 자신 신고까지 과징금 등 감면…충분한 증거 확보한 뒤라면 ‘조사 협조자’ 해당 안 돼
담합 가담했다가 ‘뒷북’ 자진 신고… 대법 “감면 신청 대상 안 돼” [법알못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 칼럼=안효주 한국경제 기자 joo@hankyung.com] 담합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불공정 행위다. 기업들이 가격을 합의해 결정하거나 물량을 정해 파는 것을 가리킨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담합 건수는 76건, 지난 5년 동안 적발된 건수는 총 454건이다. 이 가운데 입찰 담합이 348건으로 가장 많았다. 당국이 적발한 담합 사건 네 개 가운데 세 개는 ‘입찰’이었을 정도로 관련 입찰 담합과 관련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담합 행위는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적발과 제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정위는 ‘감면 신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감면은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자진해 그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 첫째 자진 신고자는 과징금과 시정 조치를 완전 면제받고 둘째 신고자는 과징금 50% 감경과 시정 조치 일부 감경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자진 신고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적발 건수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입찰 담합에 참여한 업체가 자진해 담합 내역 등 증거를 제출하더라도 공정위가 이미 담합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이후라면 감면을 신청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과징금 감면 신청 받아줘라”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과징금 감면 신청 거부 처분을 취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1월 18일 밝혔다.


기계 설비 공사 업체인 A는 2008년 10월부터 2014년 5월까지 77곳의 건설사가 발주한 시공 797건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다른 업체들과 낙찰 예정 회사를 미리 정하고 투찰 가격을 합의했다. 2014년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가자 A를 비롯한 몇몇 업체들이 공동 행위를 멈췄지만 경쟁 입찰로 공사 이익이 줄자 이들은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다시 담합에 참여했다.


A는 공정위가 2014년 5월 담합 관련 현장 조사를 시작하자 이를 인정하는 증거를 공정위에 제출하며 감면 신청을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A가 감면을 신청하기 전에 공정위는 제보와 자료 제출,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이미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며 A의 감면 신청을 기각했다. 그 대신 공정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해 과징금 23억5900만원을 20억6300만원으로 감경했다.


하지만 A는 공정위의 감면 신청 기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행정 소송을 냈다. 과징금이나 경고 처분 등 공정위의 제재는 법원의 1심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고법에서 첫 재판이 진행됐다.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공정위가 A에 대해 과징금 감면 신청을 거부한 것을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A가 ‘1순위 조사 협조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2순위 조사 협조자’에 해당하는지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순위 조사 협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아직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2순위 협조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이와 일부 다르다. 재판부는 “1순위 조사 협조자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나머지 감면 요건에 대해 살펴보고 2순위 협조자에 해당하는지 보는 게 맞다”며 신청을 기각한 공정위의 처분을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뒤바뀐 대법원 판단…“감면 신청 안 돼”

그러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바뀌었다. A가 담합 증거를 공정위에 제공했더라도 감면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 재판부는 “A는 공정위가 외부자의 제보를 받아 충분히 증거를 확보한 다음의 일이었다”며 “이에 따르면 A는 법령상 ‘조사 협조자’ 감면 제도에 따른 감면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공정위가 이미 부당한 공동 행위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순위와 무관하게 조사 협조자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공정위가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이 1순위 조사 협조자의 증거 제공에 의한 것일 때는 1순위 조사 협조자가 성립하는 외에 2순위 조사 협조자도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동 행위 외부자의 ‘제보’에 의해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이후라면 공동 행위 참여자가 증거를 제공했더라도 법령상 ‘조사 협조자’ 감면 제도에 따른 감면을 받을 수 없고 시행령에 따라 ‘조사 협력’에 따른 재량 감경만 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령이 1순위와 2순위 조사 협조자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는 조사 협조자들 중 ‘최초로 증거를 제공한 자’뿐만 아니라 ‘둘째로 증거를 제공한 자’까지 감면을 허용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이라며 “원심은 조사 협조자 감면 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원고인 A의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담합 가담했다가 ‘뒷북’ 자진 신고… 대법 “감면 신청 대상 안 돼” [법알못 판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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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제한’ 효과 없다면…“담합 아니야” 무혐의 처분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조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담합 혐의가 없다고 판정받는 경우도 많다.


공정위 전원회의가 2018년 인천국제공항공사와 4개 면세점 사업자 간 담합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이들의 행위가 경쟁을 제한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호텔롯데·롯데디에프글로벌·호텔신라·한국관광공사 등 인천국제공항 내 4개 면세점 사업자는 2011년 한 사업자 매장에 입점한 브랜드를 다른 사업자 매장에 유치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런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사건은 2011년 9월 신라면세점이 세계 최초로 명품 업체 루이비통 매장을 공항 면세점에 여는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며 시작됐다. 신라면세점 측이 루이비통에 큰 수수료 혜택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샤넬과 구찌가 매장을 철수하겠다며 반발했다. 결국 구찌는 낮은 수수료율을 제시한 롯데로 옮겼고 샤넬은 철수했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인천공항공사와 나머지 면세점 사업자가 브랜드들의 ‘면세점 갈아타기’를 막으려는 확약서를 작성했다.


공정위 사무처는 이러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에서 제한하는 부당한 공동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전원회의의 판단은 달랐다. 합의에 부합하는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고 합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경쟁 제한성은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봤다.


확약서의 문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인천공항에서 철수한 브랜드를 면세 사업 기간 내에 재입점시키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확약서 작성 후 상당수 브랜드가 2개 이상 면세점에 중복해 입점했고 특정 브랜드가 면세 사업 기간에 다른 면세점으로 이전하거나 다른 면세점에 추가 입점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해당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전원회의는 판단했다. 확약서에 따라 소비자 판매 가격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경쟁 제한 효과가 없었다는 점도 무혐의 결정에 고려됐다.


다만 전원회의는 향후 예방을 위해 구속력이 없는 ‘주의 촉구’ 결정을 내렸다. 경쟁 관계에 있는 면세점과 관리·감독권이 있는 인천공항공사가 사업 활동을 제한하는 사항을 확약서로 만드는 행위는 담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면세점 갈아타기’와 관련한 면세점 사업자들의 이러한 대응이 ‘시장 분할 합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고 해도 경쟁 질서에 영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평가하기는 어려운 사안이었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4호(2020.11.23 ~ 2020.11.29) 기사입니다.]